교회 공동체
교회 공동체.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서로 알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좀 더 친밀감이 형성되면, 그제서야 서로 마음 속에 있는 얘기를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상식일 수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깊은 얘기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이 교회 공동체라면 말이 달라진다. 적어도 나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존재다. 나를 움직여왔던 콘트롤 타워에서 물러나 원래의 주인인 하나님께 그 자리를 내어드린 존재다. 물론 죄의 흔적이 남아 여전히 자꾸만 내가 나를 지휘통제하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본질상 그리스도인은 죄로 인한 문제로부터 해방받아 의롭다함을 입은 존재다. 다시 말해, 거듭난 존재다. Second Chance를 은혜로 부여받아 새롭게 삶을 다시 시작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숨겨왔던 죄된 비밀들은 이미 드러나버렸고, 그 어둡고 더러운 죄가 예수의 보혈로 씻겨지고, 우린 돌아섰다. 그러므로 진실로 예수로 인해 다시 시작한 인생이라면 우린 더 이상 숨길 비밀이 없다. 나의 왕국이 산산히 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세계는 우리가 배운 교리와는 현저히 다르다. 그것도 너무나도 다르다. 그와 동시에 똑같다. 교회 안이나 밖이나, 거듭났다고 칭해진 사람들이나 아직 그런 과정을 겪지 못한 사람들이나 똑같다. 모두 숨긴다. 모두 몸을 사린다. 방어적이다. 자신의 왕국을 지키는 데 모두 혈안이 되어있다. 지켜야 할 자기 왕국을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고백 공동체의 단점도 있겠지만, 난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적절하게 우리가 속한 교회 공동체에 이를 적용한다면 분명 더욱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웃을 믿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연습을 하지 않고서 어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나타낼 수가 있겠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뭔가를 숨기는 까닭은 응당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거짓을 행해야겠다고 맘먹고 숨기는 게 아니라, 거짓의 문화 속에서 길들여진 결과로, 원치 않지만 거짓을 행한다. 자기가 거짓을 행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저 남들이 다 하니까 자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의 이름은 어쩌면 윤리나 법이 아닌 관행일지도 모른다. 묻어가는 사회. 우린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이 사회에서는 이름 없는 존재가 된다. 어느새 안전을 보장받는 길이 익명을 보장받는 것과 같아져 버린 것이다.
난 교회 공동체 안에서라면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적어도 교회 밖에서보다는 현저히 적어야 한다고 믿는다. 날더러 순진하다거나 이상적이라고 말해도 좋다. 교회 안에서는 적어도 교회 밖에서완 달리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할 줄 알고, 숨기는 행위보다는 자신의 치부일지라도 드러내고 함께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 때문에 거짓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교회 공동체의 고유한 결속력은 사라지게 된다. 교회는 그저 취미생활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전락하고 만다.
드러내고 나누고는 싶지만, 만약 그것들을 경청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뼈 아픈 말이 아닐 수 없다. 교인들도 이미 교회 안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거나 희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교회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 잊어버렸으며 안다고 해도 가슴으로 전달되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매달 정해진 행사들을 성실하게 진행하는 집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 행사의 목적은 이론적으로 메뉴얼에 적혀 있을 뿐이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배제와 혐오 역시 거짓을 기반으로 한다. 관행적인 선입견이 작용한다. 판단하고 정죄하고 차별한다. 그리고 숨긴다. 본질을 숨기고 관행 뒤에 숨는다.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암묵적 묵인 속으로 들어가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상상이나 가는가? 이런 곳이 교회 공동체라니.
교회 다니는 우리들조차도 이러한 괴리와 모순을 체감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교회 와서도 친목 도모나 하고 앉아있은 모습이, 행사 하나 치르고 또 다음 행사를 준비하는 기쁨조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난 마냥 아쉽다. 이건 교회가 아니다. 그러나 난 여전히 희망을 버리진 않고 있다. 나만이라도 노력하는 것이다.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서로 나누고 돕고 진실된 관계 형성에 앞장서는 것이다. 자신의 수치를 넘어서지 못할 정도의 복음이 무슨 힘을 행사하겠는가. 노방 전도 나나서 뭇 사람들에게 전도지 주는 그런 경박한 수치 극복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넘어서는 그것, 손익을 계산하지 않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이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 서로 터놓지 못하면서 어찌 전도를 한답시고 머리를 맞대고 있겠는가. 복음 전파나 교회 공동체 생활은 수학 문제 푸는 게 아니다. 실제 오감을 총동원하여 살아내는 것이다. 멀리 볼 것 없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시작하자. 실패해도 괜찮다. 또 하면 된다. 지속이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