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비교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5. 12. 08:57

비교.


재능은 시기를 잘 만나야 하는 법이다. 우리 주위엔, 재능은 풍부한데 시대의 부름을 받지 못해 마치 저평가된 사람처럼 살아가는 자도 있고, 재능은 특출나지 않은데 시기를 잘 만나 이곳저곳으로 불려 다니며 거물급으로 살아가는 자도 있다. 우린 전자를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후자는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양쪽 모두 인간의 능력 밖의 어떤 것 때문에 그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쯤에서 한 번 묻고 싶다.

“당신은 주위에서 최적의 시기를 만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재능이나 시기, 한 쪽에 치우쳐 운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두 경우가 극단적이라면, 그렇지 않은, 그러니까 재능과 시기가 잘 만나 받을만한 대우를 받으며 현세를 누리는 사람이 우리 중 대부분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한 쪽에 치우친 두 극단적인 운빨의 경우조차도 사실은 우리 맘대로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끔 만든다. 알고 보면 그것들도 자기 중심적이고 비교 의식적인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린 보통 표면적인 미덕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전자의 경우로 평가할 때 교만하다고, 후자의 경우로 평가할 때 겸손하다고 말한다. 또한 전자의 경우는 예상했던 시기에 예상했던 자리에 위치하지 못한 자신을 위로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겸손을 넘어 속에 교만의 칼날이 선 거짓된 겸손의 대표적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 주위엔 암만 봐도 양 극단에 치우친 사람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것 같다. 가운데는 없는 것이다. 스스로를 평가할 때도, 남들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어떤 잣대로 위아래로 나누고, 그 잣대로 비교하며 평가를 내리는 경우를 난 이 세상 풍속이라 생각한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교만이든 겸손이든 상관없다. 비교에 기반한 자타의 평가 속에서, 그 속에 스스로 갇혀 우리들은 인생에서 허상일지도 모르는 의미나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진 않을까? 그러나 과연 인간의 몸을 입고 그런 비교 의식에서 영원히 해방 받을 수는 있는 것일까?


하나님나라는 혐오와 배제, 차별을 만들어내는 비교 의식에서 영원히 해방 받은 장소이리라 믿는다. 그 나라를 꿈꾼다. 그리고 미천하게나마 이 불완전한 현재에서 그것을 살아내려고 몸부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