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교만 vs. 혐오와 배제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5. 15. 07:33

교만 vs. 혐오와 배제.


A는 잘난 척을 해서 주위로부터 미움을 산다. 특히 B는 A의 그러한 면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A가 교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속으로 정죄했고, 가능하다면 대면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C도 A를 만났는데, B와 같은 생각이었다. C는 B와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고 D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어 같은 편이 되었다. 이로써 B, C, D, 이 세 사람은 한 집단을 이루게 되었는데, 이 집단의 시작이자 기반은 A에 대한 공통된 악감정이었다. 이 집단을 X라고 한다면, 과연 A와 X 중 당신은 어느 쪽이 더 악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인가? 오늘 난 A보단 X에 대해 짚어보려고 한다.


A는 적어도 남을 판단, 정죄, 비난하거나 따돌린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자신 밖에 몰랐다. 자신이 아는 것이 진리였고,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기에 그냥 남들과 의견이 충돌할 때면,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했을 뿐이었다. 남들의 의견은 듣고 싶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자신의 의견이 완벽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X는 A 때문에 생겨난 집단으로써 그들의 유일한 공통분모는 혐오와 배제였다. 혐오와 배제는 사랑과 수용보다 집단의 결속력의 속도나 그 끈끈함이 훨씬 강력한 법이다. 그것이 오래토록 가지 않는다는 게 흠이지만 말이다. 혐오와 배제로 뭉친 이들은 명분이 확실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성경에도 적혀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여태껏 A에 대해서 사람들이 별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기에 X는 자기네들이 A를 벌하기 위해 생겨난 집단이라 여겼다. 신의 대리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A를 볼 때마다 그들의 하나됨은 더해갔다. 서로 눈만 마주쳐도 A에 대한 미움과 분노로 형제가 된 것처럼 점점 끈끈해져갔다. A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재밌게도 X가 살아있고 움직이는 힘의 원동력이었고 원료가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A가 따돌림을 당하고, 그래서 예전처럼 잘난 척을 할 수 있는 상황을 포착하지 못하는 걸 보자 은근한 쾌감을 느꼈다. 대리 만족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A가 불쌍하게 여겨졌고, X가 너무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어지간한 일들이 모두 그렇듯, 언젠간 그러다 말겠지.. 하며 팔짱을 낀 채 방관했다. A와 X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암묵적 묵인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X는 사람들의 묵인이 자기네들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자 응원이라 여겼다. A는 파멸되거나 척결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었고, 자기네들이 심판자로 등극하게 되었음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한편 A는 사람들이 자기를 따돌리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며 교만함을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예전부터 자주 교만하다는 말을 들어왔던 터였다.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반성하고 고쳐나갔다.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X가 아닌 나머지 다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A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의 변화를 환영하며 함께 어울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X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A의 변화는 있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X의 시작과 결속력의 기반, 그리고 대리자요 심판자로서의 명분은 모두 A가 지속적으로 교만해야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X는 이제 나서서 사람들에게 A의 단점을 더욱 떠벌리며 선전했다. 여전히 적이라는 메시지를 심어주고 싶었다. A를 어떻게든 계속해서 따돌리고 싶었다.


자, 어떤가?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지 않을까 한다. 단, 인간 관계에 둔감한 사람이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다 꾸며낸 얘기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1. A와 X 중 어느 쪽이 더 악하다고 생각하는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근거는 무엇인가?


2. A의 교만이 X의 혐오와 배제를 탄생시킨 걸까? 아니면 A의 교만이 X에게 내재되어 있던 혐오와 배제를 끄집어낸 것일까?


3. A의 긍정적인 변화에 반응한 X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4. 당신은 A였던 적이 있는가? X의 일원이었던 적이 있는가? 아니면 A도 X도 아닌 암묵적 묵인으로 일관하는 군중인가?


5. 암묵적 묵인으로 일관하는 군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