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악의 삼위일체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5. 15. 07:33

악의 삼위일체.


스캇 펙에 따르면, 악은 나르시시즘이 위협을 받을 때 생겨난다. 깊은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산재되어있던 지식의 파편들이 하나의 꼬챙이로 꿰어지는 쾌감을 느낀다.


나르시시즘이 죄라면, 악은 죄를 보호하고 변호하려는 기본적인 속성을 가진다. 그리고 죄가 악의 열매라면, 악이 죄를 변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어쩌면 본능이다. 자식이기 때문이다.


죄를 변호하는 악의 본능. 본능에 충실한 악은 거짓을 주요 수단으로 삼으며, 파괴를 목적으로 한다. 생명을 제거하는 것, 그래서 '나'만 산다면 모든 것을 파괴해도 된다고 믿게 하는 것. 바로 악이다.


나 역시 선의 부재가 악이라는 어거스틴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의에는 다소 부족함을 느낀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없듯, 악이 있는 곳에 선이 부재하다는 기본적인 all or none 개념은 동의하지만, 이렇게 될 때는 악의 수동성이 강조되어 선을 파괴하는 악, 그리고 죄를 변호하고 죄를 더욱 크게 만들어 스스로 증폭되는 악의 능동성을 설명하기에는 모자라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다. 죄를 보호하려는 악의 본능의 존재는 선의 부재로 설명이 가능할진 모르겠으나, 그 악의 본능이 비대해지며 더욱 파괴적으로 진화하는 것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악은 진화한다. 죄 역시 악에 의해서 진화를 거듭한다. 이런 진화의 능동적인 속성을 설명하려면 악은 선의 여집합 정도의 개념이 아닌, 어떤 독립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난 것은, 죄와 악이 이루는 이러한 '이위일체'의 조화는 모두 '나'를 거친다는 점이다. 여기에 '나'가 합쳐지면 비로소 '삼위일체'가 된다. 악은 죄와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런 힘이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스캇 펙 덕분에 악에 대해, 인간에 대해, 기독교가 말하는 죄에 대해, 그리고 구원과 믿음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다. 비록 나의 개똥철학적인 어설픈 터치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