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카드
그린카드.
오늘 드디어 그린카드가 배송됐다. 운전면허증이나 한국 주민등록증과도 별반 다르지 않게 생겼다. 그냥 연한 초록색 바탕의 카드다.
영주권이 승인된 이후 가장 먼저 든 마음은 다행히도 '감사'였다. 변호사 없이 모든 서류를 다 작성하고 신청하느라 맘 고생 몸 고생했던 때가 떠올랐고, 1년 반 동안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기다림의 응어리가 딱딱하게 변한 지도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변호사 없이 진행해 보기로 했던 1차적인 이유는 돈이 없어서였다. 변호사 선임엔 아무리 싸도 5천 달러 이상이 필요했다 (비싼 변호사는 1만 달러가 넘는다). 미국 포닥 월급이 간신히 밥 벌어 먹고 사는 수준이라, 통장 잔고엔 오백 달러 이상 찍혀본 적이 거의 없었다. 크게 한 번 다치기라도 하거나 사고가 나게 되면 도저히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경제 상황이었다. 하루하루 사고 없이 목돈 들지 않고 이국 땅에서 아무런 배경 없이 초등학교 2학년 아들 하나와 살아간다는 게 어찌 보면 기적이었던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영주권 취득을 간절히 원했다면, 아마도 주위에서 돈을 빌려서라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무모해 보이는 시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미국 대통령이 바뀌기 직전에 신청했던 터라 혼자 해결하는 건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였다. 돈 아끼려다가 시간을 버리고 그 아낀 돈까지 날려 버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렇다. 난 어쩌면 주사위를 한 번 던져보고 싶었던 거다. 다시 말해, 변호사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영주권 신청을 한 뒤, 만약 승인이 되면 미국에서 좀 더 살라는 의미로, 승인이 안 되면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캐나다나 유럽 행을 고려해 보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나에겐 뭔가 묵직하고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가시적인 이정표가 필요했었다. 인생의 후반전을 지금의 연장전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재미있게도 막상 영주권이 손에 쥐어지니 왠지 모를 해방감과 자유함, 그리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사실 H1B 비자는 일터에서 해고되면 하루 이내에 미국에서 나가야만 한다. J1 비자 때는 grace period가 그래도 한 달은 되었는데, H1B는 얄짤 없다. 아무래도 비자 지원을 해주는 보스에게 의존적인 관계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다행히 현재 내 보스는 그런 것 가지고 장난치는 분이 아니라 난 해당 사항 없지만, 협박 받는 노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들었고 실제 보기도 했었다. 외국인 신분으로 이국 땅에서 돈 버는 일, 그리 쉽지 않다. 거기다 인격적인 대우를 잘 받는다는 건 정말 복이라고 여겨야 할 정도다. 이게 현실이다.
이제 상아탑 안에 갇힌 뾰족한 피라미드 시스템에서 나가고자 한다. 언제까지 노오력하며 막연하게 피라미드 꼭대기를 꿈꾸며 허우적댈 것인가. 이제 나도 마흔이 넘었고,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할 차례다. 내년이면 박사 딱지 가진 지 10년이 된다. 대학원생 생활을 6년 했으니, 총 16년 과학자라는 직업으로 일하는 셈이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도 절감하고 있고, 나의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으며, 철도 좀 들었다. 그리고 내 손엔 영주권이 있다.
내년엔 직업적인 면에서도 조금 지경을 넓혀볼까 한다. 16년 동안 한 트랙 위에만 있었다. 한 우물 깊게 파는 일은 충분히 했다고 본다. 이젠 좀 다양한 경험을 해보며 인생의 풍성함을 누리고 싶다. 물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기 전까진 멋진 터미네이터가 될 테다.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