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진정성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5. 26. 14:59

진정성.


일주일 내내 산은 짙은 회색의 구름 속에 하염없이 잠겨있다. 같은 산이지만 다른 산이다. 낯설다.


산을 쳐다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졌던 건 어쩌면 그 뒤에 항상 푸른 하늘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산을 보았던가, 하늘을 보았던가. 어쩌면 내가 바라본 건 산과 하늘이 아닌, 그들의 무였을지도 모른다. 드러난 산과 하늘 이면에 있는 그 무언가가 내 안의 어떤 것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은 느낌. 내가 산과 하늘을 쳐다볼 때, 실은 산과 하늘의 무와 나의 무와의 만남이 이루어져, 신비 가운데 관계를 형성해왔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눈에 보이는 산과 하늘은 나와의 접점으로써 서로의 무를 연결시켜주는 통로 역할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소통은 눈에 보이는 만남 이면에 존재하는 무들의 관계 형성에 있지는 않을까.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건 단수의 개념이 될 수 없다. 무의식적으로 우린 복수를 본다. 단수로 기억된 추억도 그 단수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 이는 모든 것이 단독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이치와도 같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그 단수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단수를 둘러싸고 있던 복수들의 사라짐이다. 풍성한 기억은 뾰족한 기억보다 온전하다.


존재는 오케스트라다. 존재를 기억한다는 건 드러난 현존재와 드러나지 않은 무를 함께 인지하는 것이다. 무와의 만남, 신비로의 진입. 우리가 알아가고 만나는 모든 행위들의 진정성은 그 위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