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연필.
사각거리는 느낌이 좋았다. 늦은 밤 홀로 스탠드 불빛 아래 앉아 새하얀 A4지 위에 글을 써내려가거나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갈 때 내 귀를 간지럽혔던 그 소리를 난 아직도 기억한다. 한참을 집중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처럼 생각이 방전되어버릴 즈음에는, 답답함과 졸음을 이기고자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면 선선한 바람은 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쏴” 하고 대나무숲을 관통하여 곧장 내 조그만 기숙사 방 안으로 밀고 들어와주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나면 난 다시 창문을 닫고 내 손에 쥐어진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 조용한 새벽을 향해 전진하곤 했다.
96학번인 나는 대학생 시절 인터넷이란 문화를 본격적으로 접했다.북한을 코 앞에 둔 철책에서 군복을 입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했던 나는 복학 후 달라진 대학문화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군입대 전에도 물론 인터넷이 존재했으나, 그땐 전화선을 연결하여 ‘atdt…’ 등을 입력하고 “삐익~” 하는 하이톤의 기계음을 들어야만 간신히 그 느려터진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대 후 모든 기숙사에는 랜선이 깔려 벽에 난 구멍에 연결만 하면 빠른 인터넷을 이용할 수가 있었고,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푸느라 기숙사 방마다 스타 크래프트를 한답시며 떠들썩했다. 그렇게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한 밤에는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대신 탁탁 거리는 자판기 소리가 더 많이 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내 방 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연필이나 펜으로 쓰던 일기장도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내 손으로 조립한 컴퓨터에 아파치 서버를 설치하여 서버로 연동시키며, 나모 웹에디터의 도움을 받아 만든 개인 홈페이지에 여러 가지 글을 올리기 시작했던 것도 아마 이때 즈음일 것이다.
자판에 길들여지면서 직접 손으로 글을 쓰거나 문제를 푸는 시간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자판은 두드려주기만 하면 내 감정과 상관없이 동일한 세기와 동일한 글씨체로 언제나 동일한 질의 글을 완성해 주었고, 설사 잘못 입력했다 하더라도 문방구를 찾아다니며 잘 지워지는 지우개를 찾느라 고생할 필요 없이 간단히 백스페이스 몇 번만 누르면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판기가 진입하지 못하는 한 세계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연애편지 영역이다. 이 세계에서만큼은 자판기가 만들어내고 프린터가 찍어낸 글자들은 단번에 사랑이 식어버릴 정도로 차갑고 기계적이며 형편없는 무성의함의 상징이 되었으며, 반대로 꼭꼭 눌러 쓴 손글씨는 비록 서툴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 서투름이 성의와 진심을 가장 잘 전달해주는 수단이 될만큼 사랑을 고백하거나 시를 쓸 때엔 제격이었다. 삐뚤삐뚤한 손글씨가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예찬되었으며, 여러 페이지를 넘어가는 장문의 손글씨는 그야말로 넘치는 사랑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아무리 좋은 프린터로 찍어낸 글씨라도 문방구에서 파는 꽃모양의 예쁜 편지지에 옮기기에는 그 당시만 해도 현저한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못 쓴 글씨라도 정성이 묻어나는 손글씨라면 쓰다가 편지지에 때가 조금 묻는다해도 괜찮았다. 심지어 어떤 때는 편지의 내용보다도 손글씨 힘이 더 강력했다. 어떤 이는 편지의 내용을 기억하진 못했지만, 그 편지가 손으로 쓰여졌다는 사실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만큼 손글씨는 이 세계에서 마법을 부리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낭만은 효율적이지 않다. 자판의 효율은 일의 생산성을 증대시켰지만 낭만은 앗아갔다. 물론 에세이를 쓰거나 문제를 풀 때 낭만이 필요하진 않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 지 22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에 와서 그때를 떠올려보면, 왜 나는 자판 덕분에 효율적으로 처리해낸 그 수많은 숙제들이 생각나지 않고, 내 손 끝에서 사각거리던 연필 소리가 더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걸까?
이제는 낭만의 상징이었던 연애편지나 꼬깃꼬깃 여러 모양으로 접어서 전해주던 손쪽지도 보기 힘들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자판기에 의존하여 탄생된 이메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며, 이상한 기호로 가득하고 오타 천지여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패스트푸드와도 같은 채팅방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효율은 속도를 가져왔지만, 낭만을 앗아갔기에 그만큼 만남 후 남는 여운을 음미할 시간조차 앗아가버렸다. 인스턴트 메시지는 인스턴트 푸드와 같아서 휘발성이 강한 것이다.
손글씨로 쓰여진 연애편지나 여러 번 접혀 글자까지도 번지거나 접혀버린 손쪽지가 그립다. 그것들을 책상 서랍 속에 간직한 채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어 다시 읽어보며 그 사람을 생각하던 그때가 그립다. 사각거리던 그 순간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