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독서모임 - 향유
OC 독서모임 - 향유.
캘리포니아로 오게 된 건 순전히 보스 때문이었다. 난 보스와 인디애나 의과대학에서 1년 반 정도 함께 일했는데, 어느 날 보스가 랩미팅 시간에 덜컥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City of Hope 라는 곳에서 좋은 오퍼를 받았다며 나도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나는 커다란 인생의 낮은 점을 갓 통과한 상태였고, 보스를 따라가는 것 외엔 솔직히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그 오퍼를 받아들였다. 덕분에 지금 이렇게 캘리포니아 엘에이 근교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내 아내가 가진 미국에 대한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둘 다 아무런 배경이 없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먼 친척조차 없을 뿐더러, 미국에서 어릴 적에 살아봤다거나, 아는 지인이 있어서 우릴 반겨준다거나, 아니면 든든한 학교 선배가 있어서 우릴 도와준다거나 하는 소위 말해 끈이라고 하는 것이 전무했다. 혈연, 학연, 지연 등등의 '발판'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미국 생활이 외롭고 힘에 겨운 건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거기다 우린 가난한 부모님 밑에서 공부 하나 좀 잘해서 가방 끈이 좀 긴 것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기에, 경제 사정도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야 했다. 내가 2011년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처음 포닥 오퍼를 받았을 때의 연봉은 정확히 34K 달러였다. 거기에다 아파트 렌트비가 한 달에 900 달러였고, 2살 반짜리 아들 녀석도 있었으며, 그땐 아내가 일을 하지 않았던 시기라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순전히 성공하려고 온 목적만이 가득했기에 그런 것은 내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몇 년만 버티면 한국으로 금의환향할 거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식한 짓이었다.
오하이오, 인디애나, 그리고 캘리포니아, 이렇게 세 개의 주를 7년 동안 살아내는 사람은 주위에서 보기 힘들다. 이제 좀 정착하는 듯하면 또 떠나야 했고, 그러다 보니 안정감보다는 불안감이 더 컸다. 그것도 아무런 배경이 없는 머나먼 이국 땅인 미국에서 말이다.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7년 중 3년은 아내까지 떨어져 살았으니, 우리 가족이 겪었던 7년 간의 경험은 평범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에 와서 만난 만남의 축복 중 OC 독서모임이 있다. OC는 오렌지 카운티의 약자인데, 그 시작이 오렌지 카운티이기 때문이다. 작년 4월 즈음, 권연경 교수님이 엘에이에서 안식년을 보내시며 OC 독서모임이라는 곳에서 '로마서 13장 다시 읽기' 라는 책으로 북토크를 하신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용감하게 그 모임에 연락을 해서 참석해도 된다는 답변을 듣고 정말 기뻤었다. 김동문 선교사님을 비롯하여 김병주, 정경, 임택규, 정광필, 권태형, 박현강, 최소연, 송영진 (존칭 생략)이 모임의 주축이었는데, 다들 내공이 장난이 아니었다. 인생의 낮은 점을 지나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 조용히 빛나는 내공 앞에서 나는 오로지 배움의 입장이 취해졌었다. 이런 분들을 각각 많은 시간에 걸쳐서 만나게 된 것이 아니라, 한 번에, 그것도 세트로 만나게 되어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이런 땡큐가 어디 있냐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가끔 함께 밥도 먹는 형님들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며 나의 만남의 축복을 자랑 한 번 해볼까 한다.
김동문 (Dong Moon Kim) 선교사님은 실제로 중동에서 10년이 넘게 거주하셨으며, 그들의 일상에 녹아 든 문화를 직접 경험하신 분이다. 성경의 주무대가 되는 중동 지역을 그때 그곳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성경을 읽을 때 자칫 혼동하기 쉽거나 오해하기 쉬운 부분들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우신다. 또한 중동은 이슬람 문화가 가득한데 우리 기독교인들이 함부로 판단해버려 쉽게 혐오, 배제, 차별하는 이슬람에 대한 바른 이해도 도우시는 아주 귀한 분이시다. 실제로 만나보면 아주 소탈하고 겸손하신 분이어서 개인적으로 참 존경하는 분이다. 짬뽕을 좋아하시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아, 아닌가... ㅋㅋ).
정경 (Paul Kyung Jung) 집사님은 여러 방면에서 내공이 출중하신 분인데, 특히 철학과 사상 부분에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계시다. 한 마디로 후덜덜이다. 신학 지식도 내가 만나본 숱한 목회자보다도 많이 가지고 계신 것 같다. 수학과 과학으로 일관되었던 이삼십대를 보낸 나와는 어쩌면 정반대에 계신 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지식적인 부분도 이 분에게는 악세사리이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이 분의 겸손하신 리더십은 내 안의 교만을 무찌르며 무릎 꿇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지식적인 풍성함이 성품으로 묻어나오는 (혹시 성육신? ㅋㅋ) 내가 경험한 몇 안 되는 귀한 분이다.
임택규 (Taeck Kyu Yim) 집사님은 '아론의 송아지'의 저자이기도 하신데 (이 말은 많은 뜻을 내포한다.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창조과학의 허점을 낱낱이 밝히기에 부족함 없는 지식과 실력을 겸비하셨다), 정경 집사님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인문학 지식을 갖고 계시다. 두 분이 처음 얼바인 온누리 교회에서 만나신 일화를 들어보면 정말 재밌다. 임 집사님이 새신자로 교회에 나가셨을 때 일반적인 새신자가 아니었기에 특별 전담반이셨던 정경 집사님이 일대일 양육을 맡게 되었는데, 첫 만남부터 서로의 인문학적 내공에 놀라셨다는 얘기다. 새신자이셨던 임 집사님이 정 집사님과의 일대일 첫만남에서 판넨베르크 조직신학책을 들고 나타나셨다는 일화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ㅋㅋ 사실 임 집사님 덕분에 이 독서모임을 알게 되었기에 정말 감사드린다.
김병주 (ByungJoo Kim) 집사님은 소설 분야에서 탁월한 지식과 경험을 보유하고 계시다. 자녀 교육과 가족을 대하는 모습과 교회 공동체를 대하는 모습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시는 멋진 하나님백성이자 아버지이시다. 다른 인문학적 지식은 덤이다.
정광필 (KP Chung) 집사님은 삼국지의 장비나 관우를 생각나게 하는 강하고 우람한 체격인데,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부드럽고도 날카로운 인문학적인 내공이 엄청나시다. 독서량은 아마 독서모임 멤버 중 최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외에 시사, 정치, 사회, 신학, 부동산(?) 분야에서 박학다식하심이 묻어난다. 앞의 세 분과는 달리 나이도 나보다 1살 밖에 많지 않은데, 내공이 세 분과 견줄만한 걸 보면 10년 뒤의 모습이 기대된다.
권태형 (Tae Hyung Kwon) 집사님은 일상 속에서 오늘을 그날처럼 살아가려고 실제로 노력하시고 실천하시는 분이시다. 공학을 전공하셨고 전공을 살리신 기업에서 근무하시고 계시지만, 뜻이 있어 풀러 신학교에서 엠디비를 마치신 목사님이시기도 하다. 예수전도단 출신이시기도 하시기 때문에 신비적인 영역과 이성적인 영역을 골고루 겸비하신 귀한 분이시다. 드러내기 쉽지 않은 본인의 우울증을 나눠주시는 겸손하고도 낮은 마음을 가지신 분이다.
그리고 나보다도 늦게 이 모임에 조인하신 철학 덕후 내공 짱, 후덜덜의 목사님이 계시니 바로 김택영 (Taekyeong Kim) 목사님이다. 나이는 나보다 적으시지만, 철학적 지식으로 말한다면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최고이신데, 그 모든 지식들이 유명 대학 철학과에서 배우신 것도 아니고, 어떤 철학 선생을 통해 배우신 것도 아닌, 오로지 독학으로 습득하셨다. 그것도 카자흐스탄 선교지에서 말이다. 뭐 더 이상 말 안해도 후덜덜이심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난 개인적으론 데카르트, 칸트, 니체, 하이데거, 데리다를 넘어 현존하는 지젝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분이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철학을 통한 신학 하기의 모델을 보여주시며 하나님나라를 꿈꾸시는 귀한 분이시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만남이 있지만 이렇게 서로 겸손히 나누고 배울 수 있는 만남이 있다는 것은 축복 중 축복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다들 영웅 캐릭터가 아니라 옆집 형님 같은 성품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난 그들을 더욱 존경한다. 내가 가진 박사학위도 이들 앞에서는 부끄러운 딱지일 뿐이다. 앞으로 펼쳐질 풍성한 만남들과 즐거운 시간들을 함께 향유할 것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기쁘다. 아, 미천한 독서량과 인문학적 지식을 가진 나는 얼마나 복을 받았는가!
감사합니다 형님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