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에서
회랑에서.
스탠포드 대학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길 양쪽으로 정렬된 팜트리의 환영을 받는다. 끝이 없을 것처럼 나있는 올곧은 길을 타고 하염없이 직진을 하다보면 유럽 양식으로 지어진 카톨릭 교회 건물을 마주할 수 있다. 교회당 입구 좌우로 길다랗게 이어진, 햇살을 가득 담고 있는 회랑을 바라보며 난 잠시 동안이었지만 감상에 젖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수도복을 입고 회랑의 어느 기둥 옆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고, 고뇌에 찬 한스가 그늘진 회랑의 어느 구석에서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뜻밖에도 난 스탠포드에서 헤세의 문학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곳이라면 한참을 감상에 젖은 채 많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다니며 많은 것들을 접한다. 인간들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의 모습들을 마주한다. 한 곳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평생을 살며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점철된 인생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렇게 여러 곳을 방문하고 그곳의 삶을 접하며 나도 모르게 굳어져 있던 마음과 생각의 문을 열고 타인을 공감하며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내겐 더 깊고 넓은 의미로 다가온다. 인생 후반전의 키워드는 탐험이라 했다. 이를 위해서 직접 타문화를 접해보는 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가족 여행은 이런 면에서도 내게 의미가 깊다. 미래의 향방을 알 수는 없으나 희미한 길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길을 보려고 아등바등대진 않을 것이다. 탐험하는 나그네에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