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적 합의: 착각
암묵적 합의: 착각.
약자 연대의 장점은 서로가 받은 상처를 공감해주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면서 약자 연대는 사회의 개혁을 부르짖기도 한다. 그러나 약자 연대 역시 차기 집권을 누리는 제 2의 강자 연대일 뿐일 때가 너무도 많다. 이때 그 연대의 활동은 상대적 결핍에서 오는 열등감과 숨겨진 야망의 한맺힌 표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근본적인 개혁이 지속되지 않고 또다른 모습의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건강하지 못한 약자 연대의 특성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 한 가지를 말해보고자 한다. 이는 약자 연대가 분열되거나 좌초, 붕괴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바로 약자 연대 중 하나가 힘을 가지게 될 경우다. 다시 말해, 함께 한동안 약자였던 친구가 강자가 될 때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약자 연대였다면, 축하해 주어야 할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축하는 커녕 시기와 질투가 일어난다. 물론 약자 연대라고 해서 초월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은 아니다. 그러나 약자 연대라는 의미가 계속 약자로 머물러야 한다는 걸 기반으로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약자 연대가 없어질 정도로 약자가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약자가 차별받고 소외받는 구조를 제거하고자 약자 연대가 존재했던 게 아닌가?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약자 연대는 마치 서로가 서로를 늘 약자로만 존재해야 하며 강자들에 대항해야만 하는 존재인 것처럼 은연 중에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자 연대는 실패자 집단이 아니다. 성공하길 포기한 집단도 아니다. 물론 성공이 새로운 개혁이 아닌 자기들만의 세상을 위한 집권만을 의미한다면, 약자 중에서 힘을 얻은 그 사람을 축하해주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닐 경우, 그 약자 연대는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암묵적인 합의는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기억해야 한다. 약자 연대는 약자에 의해서 이루어졌지, 포레버 약자일 필요가 없음을. 가입 조건은 강자이든 약자이든 상관이 없이 강자와 약자 사이의 불평등을 척결하기 위한 목적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