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떠남.
낯설음이 가져다주었던 뜻밖의 경이감조차 익숙한 일상으로 인해 조용히 사라져갈 무렵, 우리에게 필요한 건 떠남이다. 다시 돌아올 것을 전제로 한 떠남. 익숙함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선사해주었지만, 그 고마운 안정감은 그토록 아름답고 경이로웠던 순간들까지도 흑백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우린 그것들이 가진 본연의 찬란함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일상은 반복되는 쳇바퀴가 아닌 신비로운 순간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비를 놀라움과 감사함으로 다시 느끼고 받아들이고, 기꺼이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길을 떠나기로 한 선택은 현명하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그 떠남은 여태껏 우리를 못돼먹고 게으른 돼지로 만들 만큼 강력했던 안정감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인간에게 있어 안정감과 경이감은 좀처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끔은 번거롭고 지겨운 일상이 감사함과 놀라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우리도 모르게 잠시라도 떠남과 돌아옴을 경험했을 때다. 떠남은 본인이 원하거나 계획한다고 쉽게 되어지지도 않지만, 살다보면 원하거나 계획하지 않아도 어쩔수 없이 되어질 때가 있다. 우리가 다들 겪는 바다. 어쩌면 이게 우리들의 삶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떠남과 돌아옴의 반복은 우리 삶에 있어서 환기가 되며 재충전의 효과를 낸다. 만약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우린 어쩌면 고리타분해 죽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인생의 낮은 점을 지날 때 떠남을 경험하게 되고, 또 누군가는 그런 높낮이와 상관없이 어떤 새로운 깨달음으로 떠남을 경험하기도 한다. 떠남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는 것이다.
돌아옴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늘 흐르며 공간 또한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으므로 우린 똑같은 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기에 똑같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공간에 흐른 시간과 동일한 양의 시간이 떠났다가 돌아온 우리에게도 흘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일한 장소로 돌아왔다는 의미의 무게중심은 그 시간과 장소에 있지 않고 본인에게 있다. 이는 우리가 떠나고 돌아왔을 때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우리들 자신만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는 이유다. 전혀 딴 세상인데 사실은 같은 세상인 이 놀라운 경험, 바로 떠남과 돌아옴만이 가져다줄수 있는 궁극적이고 유일한 선물일 것이다.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새로운 문화에 접촉할 수도 있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있고, 기존에 알던 어떤 것의 의미를 어떤 계기로 인해 재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떠남과 돌아옴의 사이클이 가져다주는 이 효과를 누리기에 나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있는가? 지금이 혹시 용기를 내어 떠나야 할 때가 아닌가? 이미 떠났다면 다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떠남과 돌아옴 사이의 긴장에 우린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