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성
항상성.
한층 가벼워진 몸으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한다. 체중 감량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 중 하나이다.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나,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서 우린 한없이 너그러워진 경향이 있다. 그것들은 이런저런 일관적이지 않은 합리화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그것들은 건강하지 않은 모습으로 자라난다. 과도하게 늘어가는 뱃살이나 느려진 몸놀림, 그에 따라 점점 한계의 마지노선을 스스로 줄여나가는 나태함은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와 같아서 그리 노력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 열매다. 노동하지 않고도 얻어내는 불로소득은 불의로 가득찬 사회의 기득권 세력만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그건 바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투실투실해지는 우리들의 살덩어리들로도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는 둔감하고 미련하여 쉬운 열매 따먹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정당하게 땀흘려 일용할 양식을 얻어내야 한다고 갑질하는 이들을 비난하는 우리이지만, 우리의 영악함은 쉬운 열매 따먹기에 우리를 길들인다.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다수에 의해서 이는 사회에서 용납되는 구조가 암묵적으로 만들어진다. 덕분에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정신적인 해방을 받을 수는 있지만, 육체에 나타나는 이상 징후들은 피할 수 없다. 한 동안 남들도 다 그런데 뭘..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괜찮다고 게으름을 용납하고 있던 우리는 비로소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자, 이미 커져버린 괴리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놀랍게도 우린 명징한 싸인조차 무시하는 대담함을 가진 인간이다. 인생이 짧다느니, 건강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많이 먹어도 여전히 건강한, 검증되지 않거나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경우를 애써 끌어들여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한다. 우린 자기자신의 사소한 의지와 결단조차 공정하지 못하게 처리해대는 나약한 인간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체중 감량은 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 먼저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취하지 않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나의 방법은 느리다. 그것도 아주 아주 많이. 대부분의 다이어트는 평상시 먹던 양의 절반도 채 되지 못하는 양을, 그것도 고단백 저탄수화물 식단 조절과 함께 과도한 땀을 흘리는 방법이다. 그 식단 조절에 이용되는 음식 종류와 땀흘리는 방법들이 조금식 다를 뿐 맥락은 같다. 그렇게 해서 절대 체중이 감소되지 않을 수 없는 방법이다. 다이어트 방법으로 밥벌어먹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100% 성공하는 방법이어야만 자신있게 권한다.
대부분 다이어트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방법들이 100% 성공하긴 하지만, 그 방식대로 평생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점이 오는데, 그때부터 야금야금 다시 살이 찌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요요 현상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요요 현상으로 다시 늘어난 체중은 처음 다이어트 시작하기 전의 체중을 윗돈다. 몸의 밸런스가 깨졌다가 다시 깨지는 상태의 반복이 만들어낸 역효과인 것이다. 물론 다이어트 방법을 제시한 사람들은 이 요요 현상에 대해서는 책임을 일체 지지 않는다. 본인의 게으름이라고 한 마디로 치부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몇 달 간의 돈과 시간과 열정을 들여 결국 얻어내는 건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체질의 몸에 적응해야 하는 도전 뿐이다. 초기 목적 달성은 당연히 오래 전에 물 건너간 얘기다.
우리 몸은 항상성 유지를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조금 덜 먹는다고 해서 금새 살이 빠지거나, 조금 더 먹는다고 해서 금새 살이 찌지 않는 이유다. 살이 찌고 빠지고는 지속적인 반복이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 습관이다. 몸이 그 상황을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체중 조절에 가장 중요한 항상성 유지의 키 중 하나는 아마도 식욕일 것이다. 배 고프면 식욕이 늘어나고 배 부르면 식욕이 감소하는 것이 정상이다. 몸의 항상성 유지인 것이다. 그러나 배가 어느 정도 부른데도 식욕이 감소하지 않는다면, 이제 몸에는 보이지 않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항상성 유지를 위한 먹는 양의 조절 선이 변경된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린 호르몬의 조절을 받는 동물에 불과하다. 식욕이나 성욕은 호르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이 항상성 유지를 역이용하여 몸을 속이는 방법을 통해 체중을 감량할 수도 있다. 갑자기 안 하던 식단 조절이나 먹는 양 대폭 감소, 운동량 대폭 증진은 몸의 항상성을 무시한 행위다. 몸을 혼란스럽게 하여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체중과 체형을 바꾸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요요는 당연한 결과다. 몸은 어떻게 해서든 항상성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끝내 찾고야 만다.
몸을 속이려면 아주 천천히 가야만 한다. 기존의 먹는 양을 아주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식욕도 그에 따라서 조금씩 줄어들고, 늘어난 위의 크기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배 부르다고 여기는 음식의 양이 점점 줄어든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운동량은 몸을 지치게 할 뿐이다. 자기 몸을 누구에게 보여주는 보디빌더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는 한 과도한 유산소/무산소 운동은 일반인에겐 필요 없다. 그리고 체중 감소는 대부분 운동보단 먹는 것으로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 땀 많이 흘려도 먹는 양이나 식단을 조절하지 않으면 여전히 건강하지 않다.
한 가지 더, 다이어트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배변에 관계된 것이다. Input만 줄일 생각을 했지, output이 어떻게 영향 받을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먹는 양을 갑자기 줄이면 배변 횟수가 갑자기 줄어든다. 아마 변비라고 느끼는 상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루에 한 번 배변하는 사람이 다이어트 시작하고 나서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배변을 하게 되는 경험을 많이들 한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몸은 줄어든 음식 양과 늘어난 운동량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적당량이 되어야 배변 신호가 주어지는데, 적게 먹었기 때문에 그 신호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다이어트 전의 원활하던 배변 습관에 차질이 생긴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이러한 면에서도 난 급작스런 음식 양 조절과 운동량 조절은 적당하지 않다고 믿는다. 배변 습관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몸이 항상성을 잃지 않도록 해주면서 체중 조절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시 다이어트 도중 변비가 생겼다면, 한 번 곰곰히 따져봐야 할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불어났던 살의 제거는 결코 한 방에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정리해보면, (1) 음식 양 조절은 조금씩 해야 한다. 허기를 조금만 느낄 정도로. 배변 습관이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2) 운동량 역시 조금씩 늘려야 한다. 너무 힘들어 지치지 않도록.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결론은 몸을 서서히 속여야 한다는 것이다. 몸의 항상성 유지를 존중하고 이를 역이용해야 한다. 급할 것 없다. 천천히 한 번에 가는 거다. 요요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