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영
이단의 영.
난 이단의 영이 있는게 틀림없나보다. 며칠 전, 내가 참 좋아하고, 사실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보다도 내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기독교 단체들이 한국의 어느 기독교단으로부터 이단성 조사 리스트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며칠 전엔 내가 응원하고 후원하고 있는 기독교 출판사 새물결플러스의 대표 역시 이단성 조사 대상이 되었다는 소식도 접했다.
나이 마흔을 넘기고 나름 인생의 쓴맛도 보고나니, 이삼십대에 영과 육을 이분법으로 구분하고, 거룩함을 특권계층과 비슷하게 오해하고, 내 신념과 바람을 하나님의 뜻으로 마음대로 해석하며, 사실은 하나님이 아닌 나를 중심에 놓고 있던 나의 철없던 믿음에 조금씩이나마 거품이 빠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 중요한 과정에서의 키는 하나님과 하나님나라, 그리고 하나님나라백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면서 시작된 바른 이해였다. 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준 공동체들이 있는데, 그들이 이단성 조사 리스트에 올라와있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도 참 장난이 아닌 것 같은데, 한국 기독교가 흘러가는 꼴은 정말 가관이다. 어릴적 내가 존경해야만 했던 믿음의 선진들이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론 참 창피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그들의 믿음과 열정과 영향력이 맺은 열매가 고작 이런 거라고 생각하면 착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속았다는 생각, 거기서 빠져나오길 잘했다는 생각, 지금도 많은 후대들이 뭣도 모르고 그 안에서 세뇌당하고 있다는 생각….. 여러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허공에 떠돈다.
그런데 이런 역사에 남을 일들을 통해 점점 한국 기독교단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트통령을 찍었던, 미국 남부 위주의, 상대적으로 못 배우고 (반지성적) 상대적으로 가난한 백인들로 이루어진, 소위 바이블벨트와 동격이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거기엔 근본주의자들도 많을 뿐더러, 아마도 성경과 예수 이름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혐오와 배제, 차별을 합리화하는 인간들이 많다. 자기네들을 정통 기독교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큰 흐름에 있어서 한국 기독교는 미국 기독교의 전처를 그대로 밟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누가 정통이냐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우는 건 마치 누가 꼴통이냐를 대결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본다. 참 잘들하신다. 어르신들. 후대들에게 아주 꼴좋은 모습으로 살아있는 교육을 해대시는구나.
한편으로 왜 그들이 이런 이단성 조사를 청원했는지 생각해보면, 아마도 크게 두 가지가 아닌가 한다. 절대 그들이 학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해서 신학적인 오류 같은 걸 찾아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공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의 밥그릇이 빼앗기고 있다는 것에 대해 참아왔는데, 이제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요즘 젊은 기독교인들은 예전같지 않다. 인터넷의 발달과 전파가 아주 큰 공을 세웠다고 보여진다. 예전의 우리들과는 달리 그들은 멍청하게 앉아서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들을 곧이곧대로 듣고 믿지 않는다. 의심스러우면 구글링으로 문제를 풀면 된다. 정치사회경제문화 면에서도 큰 이슈들이 터질 때마다 극우 보수세력들이 언론매체 등을 통해서 얼마나 꼴사나운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었던가. 아이들이 그런 걸 그대로 옹호하고 잘한다고 박수치고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런 저질스러운 모습은 21세기의 아이들 눈에는 옳고 그르고를 떠나 촌스러울 뿐이다. 교인들이 언론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의심이 생기는 것이다. 목사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해결이 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버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목사들은 밥그릇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자녀들 역시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떠나는 교인은 그렇다쳐도 자기 자녀들까지 그러니 도저히 못 참는 것이다. 옆 교회 목사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비슷한 처지인 것이다. 담합해서 악의 세력을 물리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영향을 준 단체들을 이단으로 낙인찍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상상력을 펼쳐본 가상 시나리오다. 그러나 나는 절반 이상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손해가 왔고 인내심에 한계가 온 것이다. 나름 법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유대인 지도자들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여달라고 고발하듯, 그들은 교단 전체의 이름으로 자기들 교인들과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는 기독교 단체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단 판결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이미 그들이 염려하는 바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고 본다. 예수를 죽였다고 해서 기독교가 사라진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초대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알곡과 쭉정이가 가려지는 기회가 되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다. 애매한 경계에 서있던 사람들도 이번 기회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지 않을까 한다. 그들은 그 단체들을 이단으로 처리해 버려버리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겠지만, 큰 오산이다. 간극은 더 크고 깊어질 것이다. 그들은 정통을 지켜 기독교를 수호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들은 이간질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공부를 좀 해야 한다. 할아버지들이 쉰소리로 땡깡치던 시대는 끝났다. 사실 난 그들의 가치관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그들은 아마 화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마치 순교라고 하는 것처럼 여기면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관심있어하는 대상은 후대들이다. 후대들이 이러한 일들을 지나면서 깨어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