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자유함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9. 19. 04:24

자유함.


87.3! 요즘은 0.1 정도의 미미한 숫자가 주는 소소한 기쁨을 맘껏 누리고 있다. 이것도 분명 일상의 행복일 것이다. 며칠 간 88.0 언저리를 맴돌다가 오늘 드디어 87대를 들어섰다. 지속적인 소식과 근육운동,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병행한 노력의 결과다. 게으르게 앉아서 높은 혈압을 낮춰달라고 기도하거나 건강하게 해달라고 비는 식의 신비주의,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체중 감량을 할 수 있는지 인터넷이나 여러 참고 문헌들을 뒤져가며 공부만 하다가 마는 지식주의 신앙이 아닌, 바른 지식과 상식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안에 들어있다고 믿으며, 모든 것을 영적으로 잘못 승화시키거나, 체화되지 않는 죽은 지식에 묶이지 않고, 작은 믿음이지만 그것을 직접 손과 발로써 살아내는 일상의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을 감사한다. 그리고 이렇게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실행력과 지속할 수 있는 끈기와 인내, 무엇보다 이런 실행을 해도 별 무리가 없는 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런 것이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방법 중 하나라고 감히 나는 믿는다.


일반인으로서 최근 2-3년 간 백 권이 넘는 신학 관련 책들을 읽어오면서 많은 깨달음과 깊은 울림에 감동하며 점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나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지식과 깨달음의 대부분은 그저 머리와 가슴, 말과 글에 머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것들의 10%라도 구체적인 일상 현장에서 적용이 되고 살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런데 의외로 두 달 전부터 시작한 체중 감량 프로젝트에서 나는 이런 체화 과정의 신비를 맛보고 있다. 전혀 영적이지 않을 것 같아 보였던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영적’인 깨달음을 구체적인 숫자가 주는 만족감과 함께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식이 없거나 깨달음이 부족해서 내 삶이 지지부진한게 아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듯, 지식과 깨달음이 우리의 몸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훌륭한 의사들도 힘든 일과와 스트레스를 못이겨 암이나 여러 질병들에 시달리는게 현실이며, 뛰어난 상담가나 전문가들도 그들이 말과 글로써 전달해주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삶에선 무분별하게 살아가는게 태반인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이는 것들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현실. 그 간극을 뛰어넘는 건 우리 몫이다.


오늘 아침 느헤미아의 법인화를 위한 모금에 동참했다. 역사적인 순간에 한 구좌라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며칠 전엔 새물결플러스의 한 달 정기구독에도 동참했었다. 미국이라 책은 사양했지만 말이다. 내가 생각하고 믿기에 중요한 기관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쁨이다.


작년에 거금 100만원 정도를 한국 계좌에 이체했었다. 나름 선교 및 구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늘 출석하는 교회에 십일조를 비롯하여 여러 헌금을 해왔었다. 그러나 작년부턴 그 헌금의 방법에 변화를 줬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재정적으로 넘쳐난다는 이유도 한 몫을 했고, 헌금을 차라리 다른 곳을 돕는 방법으로 분배하자는 생각이었다. ‘교회에 내는 헌금은 하나님께 내는 것’이라는 논리는 ‘여러 다른 곳을 돕는 적은 액수의 돈도 역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논리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교회는 돈이 남아돌아 매달 내가 볼 땐 별 필요없고 소모성인 행사들을 치러내느나 그 돈을 펑펑 써대고 있기도 한데, 난 솔직히 그런게 참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런 것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던 것이다. 난 이런 것도 모두 크게 볼 땐 삶으로 살아내는 신앙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숨통이 트인다. 이런 자유함을 어릴 때부터 알고 누려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