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최선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9. 21. 07:11
최선.
열심히 걸어 전철역에 도착했을 즈음, 전철은 막 역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가까스로 놓친 것이다. 십분 정도 더 기다려야만 다음 전철을 탈 수 있었기에 왠지 모르게 아침부터 손해본 듯한 기분이 들었고, 이럴 바에는 괜히 겨드랑이에 땀이 날 정도로 빨리 걸을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에 갑자기 화가 치밀기까지 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나의 성실함이 그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분노는 지극히 나 중심의 착각이었다. 전철은 시간에 맞춰 정시에 출발했던 것뿐이고, 그저 내가 역에 도착한 시간이 늦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전철을 놓친 건 내가 열심히 걸으며 최선을 다했던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결과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구체적인 상황에 상관없이 나의 노력과 최선만을 고려했던 것이었다.
살면서 이런 일이 참 많지 않나 싶다. 자신이 최선만 다하면 어느 상황에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는 일. 긍정적인 자세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그렇게 나이브하게 자신의 최선과 노력과 땀을 과도하게 신뢰하는 건 또 하나의 나르시시즘의 발현일지도 모르겠다.
최선을 다하되 최선을 신뢰하지는 말자. 최선을 다하고 나서는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결과는 어찌 됐든 겸허히 받아들이자. 그 결과에 거짓과 불의에 의한 억울함이 없다면, 결과는 나의 영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