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환멸과 환대 사이에서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0. 9. 04:56

환멸과 환대 사이에서.


환멸을 느끼면서도 왜 우린 그 자리에 머무는가?


단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강인한 의지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실 우린 싫어하는 것을 버리지도 못하고, 대신 그것을 안고 살아가는 숙명을 지닌다. 좋아하는 것만을 취할 수도 없을 뿐더러,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라곤 영원한 법이 없어서 좋고 싫음의 경계는 나이가 들수록 모호해진다.


많은 경우,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우리의 관심을 점점 벗어나게 되고, 또 그 중 몇몇은 환멸을 느낄 정도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좋아하면 취하고 싫어하면 버리는 식의 방법이 가능할까? 그러기 위해선 일단 인간이 안정적인 존재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런 방해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진공 상태여야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원하지 않아도 이런저런 것들에 얽히고 설켜서 그것들에 의해 제한과 제약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떠밀려가는 존재다.


돈이 많은 제약들을 제거해주는 힘을 갖고 있지만, 대신 그 돈은 자신을 더욱 의지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려 그 사람으로 하여금 눈 앞의 모든 제약들을 돈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거짓된 희망에 가득차게 만든다. 다들 알다시피 물론 그 끝은 파멸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여기게끔 만드는 돈의 위력은 궁극적인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


환멸을 느끼게 만드는 인간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이 현실이 슬프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끼리끼리 편을 가른 후에야 겨우 부분적으로 적용이 되는 교훈 정도로 전락했고, 환대는 그것을 베풀만한 가치가 있는지 따지고 따져서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다가 결국 한 번도 행하지 못하는 규범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창살을 여기저기에 쳐두고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여전히 환멸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환멸은 쳐내야 하는 것일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환멸의 대상은 점점 늘어가는 이 시대에 그 흐름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결국 공동체의 와해를 기반으로 한 개인으로 수렴하지 않을까?


난 오늘도 또 환멸을 느끼고야 마는 인간들의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론 그런 자들을 헤렘시키는 것이 마치 정의를 세우는 유일한 길인듯 생각하는 집단의식이 무서울 때도 있다. 환멸과 환대의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답을 얻지 못한 채 이렇게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