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함
존재함.
불행해지기 싫어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편을 바라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못하다. 삶에는 언제나 그 반대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것이 비록 아주 적어 우리를 슬프고 비굴하게 만들더라도 말이다. 사실 우리들의 인생이 이미 그러하지 않은가.
또한 우리는 창조자에 의해 이미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바랄 수도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창조주가 창조를 감행했을 땐 피조물과 의논도 하지 않은 채였다. 하지만 우린 그것을 피조물이 스스로의 존재를 포기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 창조주의 일방적인 폭력이라고 말할 순 없다. 창조주가 선한 존재라면, 그리고 선하다는 의미가 자기애의 반대적 의미라면, 창조는 창조주 자신 뿐 아니라 피조물을 위해서도 좋은 행위였다고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창조세계가 아름답고 질서정연하며 놀랍다고 하지만 그 시작이 폭력이었다면 모든 것의 의미가 껍질만 남은 채 사라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난 창조되어, 그것도 천사도 갖지 못한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함을 감사한다. 존재하지 않았다면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피할 수 없는 경쟁 체제 속에 숨을 쉬어야만 하고, 특권 지배층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권위의식에 쪄들어 있는 한편, 대다수의 피지배층은 불의를 인지하고도 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첨꾼이 되어 불의를 용인하고 참아내는 편을 선택하고, 힘을 한데 모아도 모자랄 판에 그들의 공동체 결속은 꿈도 꿀수 없으며 철저히 개인화되어 언제나 자신의 신분상승을 은밀하고도 끊임없이 노리는 인간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존재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거센 폭풍 뒤 희미하게 내리비치는 가느다란 서광에서 희망과 삶의 의미를 느낄 수밖에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 아닌가. 죽을만큼 힘든 시기를 관통하고도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에 감동하고 희생하고픈 마음이 드는 존재가 바로 인간 아닌가. 무언가 저 너머에 존재할 것들을 소망하는 본능을 우린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가.
존재함의 의미는 불행의 처절함을 넉넉히 이긴다.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하기 위함도 아니다. 높고 낮은 굴곡도 90도만 틀어서 보면 그저 좌우로 오가는 모습일 뿐이며, 180도 틀어서 볼 땐 모든 성공과 실패는 역전된다. 존재함은 인생을 그저 한 각도나 한 평면으로 보는게 아니라 모든 각도에서 보는 것이며, 그 과정이 바로 철이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존재함을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