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산이 선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산의 굴곡과 햇빛이 만들어낸 음영은 산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 위를 덮고 있는 구름은 아주 조금씩 움직여가고 있었다.
언젠가 산을 오를 때였다. 멀리서 보던 산의 낮거나 가려진 곳, 그러니까 그림자가 진 곳 위로 난 길을 걸을 때, 갑작스런 냉기를 느낀 적이 있다. 땀도 식힐 좋은 그늘로 여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1시간을 넘게 걸어도 그 길은 양지바른 곳으로 날 인도하지 않았다. 거기에선 새소리들도 멀리서 나지막하게 들릴 뿐이었다. 사방은 온통 적막과 어둠으로 둘러싸인 것만 같았다. 순간 더럭 겁이 났다. 수백 년도 더 되도록 아주 오래 묵은 음산함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 중 하나는 산의 그늘진 곳에서 두려워 떨고있는 미천한 한 인간의 눈에서 이탈하여 이 산 전체를 바라보며 (마치 오늘 내가 멀리서 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는 한 관광객의 눈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그 관광객을 황홀경에 빠뜨린 바로 그 대상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 생각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말할 순 없다. 그 생각에 이르렀을 때에야 내가 걷고있는 길은 양지바르고 탁 트인 것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두움에 있을 땐 언제나 그렇듯, 햇살로 이어진 이 당연한 사실이 감사거리로 바뀌면서, 동시에 잠시 두려워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멀리서 볼 때 매혹적으로 보이는 것들의 실재에 대해 생각해본다. 거리감은 사물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기엔 용이할 수 있으나, 그만큼 사실적이고구체적인 것들은 놓치게 만든다. 매력이란 조금 멀리 있을 때 더 잘 느껴지는 법이며, 어쩌면 그 감상은 현실감을 포기하거나 보지 못하는 댓가일지도 모른다. 현실과 동떨어진 채 막연함에 머물기 원하는 속성은 우리 모두가 다 가지고있지 않은가.
긍정적이라 평가받는 사람들이 있다. 난 가끔 그들이 과연 구체적인 현실을 잘 알고는 있을지 궁금하다.
신앙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덮어두고 믿는 건 두려움을 마음 중심에 숨기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으며, 그건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사적인 유익 추구를 목적으로 할 때가 태반이다. 그리고 그 행위는 늘 산을 멀리서 바라보며 멋지다고 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내가 몇 년전부터 하고 있고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신앙생활은 멀리서 산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속으로 들어가, 비록 코끼리의 다리만 만지다가 생을 다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산을 오르면서 햇살과 산의 굴곡이 만들어낸 그 입체감을 직접 느끼는 것이라 믿는다.
안전하다고 여겼던 것, 모든 것이라 여겼던 것이 그저 하나의 감상이나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땐 주저하지 말고 산에 오르자. 거기엔 두려움에 떨 구간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말끔히 해소되는 구간도 역시 존재한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는 (멋드러진 시나 감상문은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산을 다 이해했다고 할 순 없다. 이런저런 일을 겪게 되겠지만 산을 늘 오르고 탐험하며 알아가는 사람들이 난 좋다. 멀리서 관망하는 사람보단 많이 알겠지만, 여전히 스스로 잘 모른다고 솔직히 격없이 말해주는 이들이 참 좋다. 산 속에 있으면 세상의 모든 높고 낮음이 사라진다. 그저 함께 가는 거다. 나누며 사랑하며 겸손히 알아가는 것이다. 다 알진 못하더라도.
**오독자를 위하여: 오해없길 바람. 보통 산을 언급하는 글들과 다른 의미로 이 글에선 산을 말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