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사과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1. 15. 09:06
사과.
시간은 갈수록 줄어만 가는데, 읽고 싶은 책들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만 간다. 몇 년 전, 그러니까 나이 서른 후반에 와서야 인생의 낮은 점들을 거치며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그 당시엔 독서가 취미나 여가활동이라는 말은 내겐 사치였다. 나는 어쩔수 없이 책을 읽어댔고 글을 써댔다. 마치 안 그러면 죽을 것처럼. 내게 글읽기와 글쓰기는 도피처 역할을 충실히 했던 것이다. 거기엔 위로와 치유가 있었다. 나는 회복되어졌고 용기를 얻었으며 다시 소망을 가질 수 있었다. 무언가 저 너머에 있던 것들이 성큼 내 옆으로 다가와있는 느낌이었다.
중고등학생 때가 책을 즐기던 마지막 기억이니, 내 인생엔 독서가 사라진 거의 이십년의 공백이 있는 셈이다. 이삼십대에는 공부와 연구라는 그럴듯한 변명으로 독서할 시간을 스스로 제거해왔고, 할 일이 많고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를 대며 쫓기는 자들의 마음에 늘 거하지만 애써 부인하려는, 모종의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끊임없는 합리화를 해왔다. 그때 내게 있어 독서는 말 그대로 여유의 상징, 아니 시간이 남아돌 만큼 하릴없는 인간들이나 해대는 짓거리에 불과했다. 나는 그렇게 독서를 모욕하며 내게 조금 있던 인문학적 소양을 죄악시하며 말살시켜왔던 것이다. 성공과 번영이라는 것만 쟁취해내면 그런 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라고 나로 모르게 믿어왔던 것이다. 아... 시간을 조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독서에게 사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