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거리에서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2. 11. 05:02

거리에서.


거리에 서면 지나가는 차들의 옆 모습과 몇몇 차들의 앞과 뒷 모습을 볼 수 있다. 운전을 할 때면 바로 앞에 위치한 차의 뒷 꽁무니에서 발하는 붉은 빛을 따라 벌레가 빛에 모이고 인도 받듯 그렇게 흘러간다. 마주쳐 오는 차들이 내뿜는 하얀 불빛은 위협적인 싸인이 되어 붉은 불빛을 따라 가고 있던 우리를 무의식 세계로부터 구원해 준다. 2층에서 창을 통해 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엔 차의 크기가 조금 작아지면서 조금 더 멀리 있는 차들까지도 보인다. 거리 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차가 하나하나의 독립적인 개체였다면, 2층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에게는 군집이다. 그렇다면 3층, 4층, ... 이런 식으로 더 높이 올라 모든 사람들이 개미보다 작게 보이고 차들이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의 높이에선 모든 개개의 차들은 눈에서 사라지고 전체적인 흐름만이 남는다. 거리는 붉은 빛과 하얀 빛을 내며 서로 바짝 붙어 마주쳐 흐르는 두 개의 강줄기인 것이다.


우린 살면서 무언가로부터 정신적인 압박을 받을 때가 많다. 일 년이 365일이지만, 그 중에 대부분의 날들은 (360일이라고 하자) 사실은 별 일이 생기지 않고 무한반복의 루프 안에 갇힌 채 돌아가는 일상이다. 그러나 약 5일 정도의, 전체의 약 1-2 퍼센트 정도 되는 날에 발생하는, 어떤 통제할 수 없고 불가항력적인 사건으로 인해 우린 나머지 98-99 퍼센트의 일상을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의 일상이 마냥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어찌보면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삶 전체를 이끌어 간다기보다 떠밀려 간다고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일상, 별 큰 일 없는 단조로움 속에서도 우린 무언가에 매인 것처럼 자주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선택하진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쫓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은 멀찌감치서 보게 되면 그 자체가 하나의 슬픈 춤과도 같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저 높이 서서 거리에 흐르는 붉고 하얀 두 개의 강줄기처럼.


거리에 서서 차 하나하나를 쳐다보며 거기서부터 오는 스트레스에 일일이 반응하다 보면 옹졸해지기도 쉽다. 물론 현실을 부인하고 산 속으로 숨자는 말이 아니다. 가끔씩은 거리에서부터 조금 떨어져 2층, 3층, ... 더 높은 데 올라 전체의 흐름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난 말하고 싶은 것이다. 거리에 바짝 붙어 사는 것만 하는 인생엔 철학은 없다.


사색하고 고뇌하는 건 전체를 관망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철학의 자리에서 다시 우린 땅으로 내려와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거리에서, 마주쳐오는 차들의 하얀 색 불빛에 긴장해고, 앞서 가는 차의 붉은 색 불빛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선을 맞춰 따라가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면서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 가까이도 가보며 전체를 생각하는 우린, 인간이다. 아, 이런 건강한 순환이 잘 이루어지는 심장과도 같은 삶을 살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