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함
자유함.
나이가 들어가고 마음에 여유가 조금씩 생긴다는 증거 중 하나는 미술 작품 감상이다. 한 교회에 더 이상 등록되지 않은 자유로운 신분이 되어 맞이한 첫 일요일, 나는 한 교회를 찾아 예배에 참석하고 가족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헌팅턴 라이브러리를 찾았다.
예전엔 어떤 전시관에 가면 작품들을 그냥 지나치며 전체를 훑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턴 작품을 하나하나 보며 그 안에서 내게 와닿는 느낌을 근거로 작가의 의도와 정신성을 마음대로 상상해보곤 한다. 그리고 작품 밑에 조그만 글씨로 적혀 있는 소개란을 읽으며, 알려진 작가의 의도나 배경 설명을 입력한다. 상상과 추측, 그리고 알려진 지식 습득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이 묘한 즐거움. 요즘 난 이런 시간이 참 좋다.
경력 쌓기에 인생을 가두었던 나의 이삽심대엔 과학은 있었을지언정 철학도 신학도 미학도 없었다. 모든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야 했고, 그것들은 결과적으로 피라미드를 더 높게 만드는 하나의 벽돌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내고 있었다. 그 세계는 한 발 오르면 두 세 발 뒤로 물러나 더 높아지고 견고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짝 말라 뒤틀어져 손만 대면 부서질 것 같은 낙엽처럼 나의 내면세계는 아주 은밀하게 불필요한 고통을 열매를 혼자 따먹으며 그렇게 말라갔던 것 같다. 이런 모든 현상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이 내게 있어선 독서와 예술작품 감상의 부재이기도 했다.
독서와 예술작품 감상은 우리가 과거의 지혜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귀를 닫고 눈을 닫은 자들은 언제나 곤경에 빠질 때면 자신의 상황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는 절망과 자책에 빠지기 쉽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며 강박증이나 성격장애의 갈림길로 들어선다. 끝내 자기 안에 갇히는 것이다.
아래 그림의 제목은 City of God 이다. 일부러 설명은 읽지 않았다. 아직 혼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며 느끼고 싶어서다. 현실과 신비 사이에서 고뇌하고, 정착과 떠남의 경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