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하필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 21. 14:26

하필.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내리 달렸다. 혈액을 채취해야 할 마우스가 거의 마흔 마리나 되었고, 그 이후의 작업들도 두 세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보스와의 주간 미팅도 잡혀있었기에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점심까지 거르며 집중한 결과, 오후 4시에는 끝낼 수 있었다. 한숨을 돌리려던 차, 전화가 왔다. 동물실이었다. 나를 찾았다. 내가 관리하는 마우스 중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힘들어 한다고 했다. 주말에 죽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기에 미리 실험을 하는 게 좋겠다는 메시지였다. 어떤 마우스냐고 물어보니, 내가 거의 2년 간 유심히 모니터하고 있던 놈이었다. 백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마우스 중 하나였다. 순간, 잠시, 아주 잠시 기뻤다. 하지만 전화 받은 시각이 금요일 오후였고, 난 굉장히 허기진 상태였기에 곤란했다. 정말 난처했다. 단지 피곤하거나 주말을 즐기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하고 특별한 이유, 아들의 열 번째 생일이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된장찌개에 밥 말아 먹으면서 아들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하며 뽀뽀를 했더니 좋아했다. 그리고 일과 후 애프터스쿨에서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픽업해서 아들이 원하는 아이스크림 케익을 함께 고르러 가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 때문에 계획이 틀어진 것이었다. 젠장. 하필 이런 때에!


다행히 아내가 무리를 해서 조금 일찍 퇴근하여 나 대신 아들을 픽업하고 케익을 샀다. 그 시간에 난 다시 동물실에 가서 마우스를 잡았다 (다행히 원하는 표현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멈춘 후 가족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연구소를 빠져나갔다가 9시 경 돌아왔다. 지금은 자정이 넘은 지 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 아직 두 시간은 더 해야 하는데...아… 내일이 토요일이라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된다.


어쨌든 아들, 열 번째 생일을 축하해! 이제 너도 나랑 같이 두 자리 수이구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