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Conflict resolution? or Justice?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 31. 02:37

Conflict resolution? or Justice?


갈등을 해결하는 궁극적 방안의 한 가지로 갈등 자체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으려는 시도가 있다. 일견에 아주 그럴듯해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바람일 뿐, 현실이라는 요소를 고려할 땐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더 사실적일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한 핏줄인 가족 안에서도 갈등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연인이나 가족이기에 앞서 궁극적으로 우린 인간이기에, 또한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자면 모두가 원죄의 흔적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과 타인을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에 본인도 모르게 익숙해진 인간이란 존재가 함께 서로 어우러질 때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갈등이 없으면 참 좋겠지만, 우리의 삶은 갈등의 연속이며, 그것을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큰 갈등을 초래하게 될 뿐이다. 갈등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오히려 어떻게 그것을 다룰 수 있는지를 우린 배워야 한다. (이런 면에서 메노나이트의 갈등전환 교육과 프로그램은 아주 설득력이 있고 배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트라우마가 될 정도의 갈등을 겪어보고 그것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아주 정상적인 욕구에 못이겨 바람직한 갈등 전환이나 해결 방안이 아닌 일방적으로 갈등 자체를 만들지 않기 위해 먼저 손을 쓰는 경우를 본다. 마음이야 이해가 가고 그 방법이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괜찮은 것 같지만, 그 과정 가운데 불의를 용납하고 그것을 세탁하거나 눈감아주는 일이 포함된다면, 그건 정말 위험한 일이라는 걸 난 말하고 싶다. 갈등 해결을 위해 불의를 허락하는 일? 평화를 위해 불의를 용납하는 일? 과연 이 사람에겐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 갈등 해결일까, 정의일까?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이 평화라는 겉모습을 유도해낼 수는 있겠지만, 정의를 세우고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진 않을까. 그런 방법으로 평화와 정의를 둘 다 이룰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론, 정의를 수호하는 일에 위배가 된다면, 자칭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이라는 수단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보다 배꼽이 클 수는 없는 것이다.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의 부정적인 단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것의 목적이 평화를 구축하는 것인지, 평화를 지키기에 급급한 것인지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었다. 난 이 둘 중 후자의 경우를 목격했던 것이다. 모두의 평화가 아닌 개인의 평화, 즉 자신의 손에 오물을 묻히고 싶지 않아 현실의 어두움과 추잡함을 등한시하는 경우였다. 평화로운 말이 흐르지만 거기엔 평화가 없었다. 진정한 평화는 평화로워보이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어찌 한낱 자신의 유익을 먼저 구하기에 바쁜 사람의 평화로운 제스쳐가 평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말이다. 평화엔 자기 희생이 수반된다는 진실을 만약 그 사람에게 알려줬다면, 듣기나 했을까? 관심과 사랑이 배제된 평화로운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위선일 뿐이다. 그런 평화로는 정의는 물론 평화 자체도 위협할 것이다.


갈등을 인정하자. 그 숙명을 이해하자. 인간의 한계도 인정하자. 그리고 배우자. 그 갈등을 어떻게 전환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지. 정의와 평화는 어쩌면 이 갈등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에 무게중심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