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문제해결?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2. 8. 08:50


문제해결?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원인만을 집중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고심 끝에 그 원인 제공자로 보이는 사람을 한 두명 선정하여, 그 사람의 악함을 묵상하듯 마음에 담고 분노하고 원망하는 것에 부지런하다. 그러나 과연 이 방법이 문제를 해결하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제해결이 아니라 맛보지 않아도 될 문제의 심연을 혓바닥까지 사용해가며 싹싹 핥으며 스스로 문제 안에 갇혀버리는 건 아닐까?


인과응보의 세계에선 너무나 당연한 논리일지도 모른다. 문제가 생겼으면 분명히 거기엔 이유가 있다는 논리다. 맞다.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이유는 하나로 특정하게 규정지을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실 곰곰히 따지고 보면 너무나도 많고 복합적인 것들이 얽히고 설켜 원인의 그물망을 이루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조금만 진지하다면 어떤 특정한 것 하나를 골라 원망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해괴한 일일 때가 많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희생양을 삼는 행위는 어쨌거나 폭력이기에 자신의 상처를 타인에게 전가시키거나 복수하는 심보는 결코 문제해결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건 해결이 아니라 심화다.


원망하는 자, 늘 억울한 자, 이런 자들의 이면엔 ‘난 옳았어’ 혹은 ‘난 아무 잘못 없었는데..’하는 심리가 있다. 역시나 배제와 혐오의 논리가 그대로 살아있다. 어쩌면 선수를 빼앗겼거나 용기가 없어 먼저 공격하지 못했을 뿐, 자신이 가해자라고 생각하고 희생양 삼는 사람과 사실은 다를 게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피해자 코스프레에는 가해자의 심리가 똑같이 흐르고 있다. 당신은 피해자인가,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사람인가?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선 과거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는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철저하게 입각한 나머지 자신의 현재의 불행을 설명할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 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설명과 해결은 다른 문제다. 문제해결을 원한다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봐야 할 곳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습관이 되어버린 것들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은 생각하는대로 굴러가기보단 습관에 길들여진 채 돌아가기 때문이다. 머리와 가슴보단 손과 발이 빠르다. 머리와 가슴이 인지하지 못하는 손과 발의 움직임으로 우리 일상이 돌아간다는 건 어찌 보면 참 슬픈 일이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눌리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힘을 내자. 원인을 싸잡아매는 합리화의 논리를 연구하는 시간에 현재 나의 삶을 관찰하고 나도 모르게 돌아가고 있는 습관적인 움직임을 포착해보자. 거대담론만 떠들어대는 인간들치고 일상을 소중하게 가꾸는 이 별로 보지 못했다.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거대한 힘을 기르거나 모으고 싶은가? 그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다시 생각해보자. 바꿀 수 있는 것과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들을 돌아보자. 해결은 그것들을 건너 뛰거나 없이 하여서 얻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다. 다만 그것들의 연장선에 놓여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