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성
이중성.
기상이변이라 한다. 환경오염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우린 현재와 미래를 염려하고 걱정하면서도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꿀 마음은 없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땀 흘려 번 돈으로 내가 편하게 살겠다는 데에 아무도 법적으로 걸고 넘어질 사람이 없다는 것도 잘 안다. 투명한 양심도 느낀다. 하지만 남들 다 하는 일에 나 하나 동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게 있냐면서 오염을 부추기는 편리함의 강에 발을 그대로 담그고 있다. 그래놓고 좀 배웠다 싶은 사람들이나, 혹은 개인의 관심과는 전혀 상관없이 환경오염과 그 대안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단체의 사람들은 환경개선을 위한 방안을 구상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아무리 좋고 바람직한 일이라도 그것이 밥벌이 정도의 의미만을 가지게 될 땐 공허한 법이다. 환경오염 방지대책을 하루 종일 회사에서 연구하고 논의하고 계획안을 짜놓고, 집에 와선 피곤한 나머지 익숙한 편리함에 안주한다. 열심히 일했다는, 그래도 남들보단 좋은 일을 했다는, 뜻모를 거만함을 가슴에 품고 스스로에게 보상을 한다.
대중교통을 확대개선하여 교통란을 없애려고 머리를 싸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렇게 연구하고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 몸을 담고는 있지만, 정작 스스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열심히 노력해줬으니 그에 대한 당연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연봉을 더 높이 받아서 혼다에서 벤츠로 바꿀 생각만이 머리 속에 가득하다. 웬만하면 운전사도 고용해서 운전도 직접 하지 않을 계획이다. 교통란은 개돼지들의 사정이고, 나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애쓴 사람이니 당연히 특권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의 이중성을 목도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과연 똑같을까. 아무리 직업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라지만, 그것 때문에 더 큰 가치들을 내팽개치고 있진 않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돈을 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