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비창, 그리고 노다메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3. 5. 06:19

비창, 그리고 노다메.


감히 입 밖으로 꺼내놓으면 쉬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말하는 순간 그것의 의미와 가치가 순식간에 증발되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느낌. 그 불안함. 내 속에서 묵히고 삭힌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나를 벗어나 저 멀리 달아나는 것 같은 기분. 그렇게나 특별했던 것이 한 순간에 평범해져 버릴 것 같은 그 두려움.


'인생의 책', '인생의 영화', '인생의 음악'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개의치 않는다면, 누구에게나 자기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끼친 책이나 영화, 또는 음악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TV를 어릴 적부터 가까이 두지 않았던 습관 때문인지 지금까지 봐왔던 드라마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중에서도 재시청했던 드라마는 한 편도 없었다. 깊은 울림을 주는 드라마조차도 한 번 웃거나 울다가 그저 지나치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3번 이상 다시 보고 다운로드까지 받아놓았던 드라마가 있었으니, 그것의 제목은 '노다메 칸타빌레'다. 내 '인생의 드라마'가 되겠다. (아, 갑자기 신비감이 싹 사라지고 경박한 조소가 들리는 것 같은 이 기분!)


퇴근하고 집으로 오는 길,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비창이 흘러나올 무렵, 내가 노다메를 떠올렸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드라마의 첫 회를 장식하는 음악. 노다메와 치아키의 만남을 이어주는 음악. 들을 때마다 마음이 저리는 음악. 이 밤, 조성진의 연주도 듣고 또 여러 피아니스트의 비창을 듣는다. 가끔 이렇게 감상적이 되어 과거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도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행복일 것이다. (현실에만 있으면 현실으 제대로 볼 수 없다. 가끔 밖에서 볼 시간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