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이론
상대성이론.
낯선 곳에서 시간을 떼우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다자키 스쿠루처럼 역에 앉아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는 주기적인 리듬을 몸에 익히면서 그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람들의 움직임을 좇을 수도 있고, 나처럼 길거리를 큰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며 호기심에 가득 찬 어린아이처럼 간판의 글자를 읽고 진열장의 물건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 걷다가 힘에 겨울 즈음이면 공원 벤치에 앉아서 푸르름 속에 잠기어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간접흡입하거나,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로를 쳐다보며 혼자 멈춰있다는 묘한 만족감에 젖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나도 익숙하여 낯섦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선 상황이 달라진다.
그곳에서는 호기심은 증발해버렸고 경탄할 마음은 메말라버렸다. 어린아이도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버리는 공간. 호기심과 경이감으로 낯선 세상을 탐험하는 어린아이의 세계에선 시간은 느리게 간다. 반면, 모든 것이 익숙하여 놀라울 것도 더 이상 궁금할 것도 없는 어른의 세계에선 시간은 빨리 흐른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뉴턴의 중력장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 질량을 가진 물질계에서만 작동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세계에서도, 특히 낯익음과 낯섦에서도 유효한 것이다. 이렇게 한 번 말해볼까. “빨리 늙고 싶다면 호기심과 경이감을 버려라. 단, 회춘하고 싶다면 호기심과 경이감을 살려내라.”
습관처럼 깃든 일상을 즐기며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고 기쁨을 유지하는 건 사실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 가운데 자신이 깨달은 바를 살아내고자 발버둥치지만, 우린 일상의 두께가 얼마나 두껍고 견고한지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일상의 벽은 호기심과 경이감을 잃어버린 시간들이 누적된 기름때와도 같다. 그 일상이란 벽을 녹여내고 우리가 깨달은 바를 그 안으로 흘려 보내기 위해선, 어쩌면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건 시간을 느리게 가게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호기심과 경이감을 가지고서 일상을 대하는 것이다. 벽의 두께는 더 이상 두꺼워지지 않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가역적인 현상으로 그 벽의 두께가 다시 점차 줄어들지. 이때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지혜롭고 싶은 마음은 한 쪽에 치워두라는 것이다. 일상을 살려내고 또 살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어른의 지혜가 아닌 어린아이의 호기심과 경이감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두꺼운 벽을 가진 일상을 무미건조하게 살아내는 주제에 지혜로운 어른인 척하는 위선을 버리자.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우리에게 필요했던 겸손의 일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