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속운동의 매력
기초물리학에서 배운 가속도의 법칙에 따르면 가속도가 제로일 때의 운동을 이름하야 등속도 운동이라 한다. '고를 등'자를 쓰는 등속도 운동은 말 그대로 속도가 일정한 상태로 운동하는 거다. 속도가 더해지지도 않고 감해지지도 않은 상태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 미분계수가 제로인 상태. 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상태.
난 요즘 등속운동의 매력에 눈을 뜨고 있다.
등속운동의 매력은 한마디로 '지속'이다. 10 Km 마라톤에서 1시간 5분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난 같은 속도로 10 Km를 1시간 5분동안 트레드밀 위에서 뛰는 게 더 힘들다는 걸 잘 안다. 마라톤이란 경기가 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뛴다는 점이 좁은 실내 공간에서 러닝 머신 위에서 혼자 뛰는 것보다 마인드 콘트롤 부분에 있어서 더 유리하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것보다 큰 차이는 바로 가속도 운동을 하느냐 등속도 운동을 하느냐에 있지 않을까 싶다. 경치 좋은 야외에서 기분 좋게 스타트를 하여 초반에 12 Km/h 정도 이상으로 빠르게 뛰다가도 좀 힘들어지면 속도를 늦출 수도 있고 좀 더 힘들어지면 잠시동안은 걸을 수도 있다는 게 마라톤이라면, 같은 속도로 마라톤 주파 시간과 같은 시간동안 트레드밀 위에서 뛴다는 것은 마라톤보다 무언가 좀 더 자기자신과의 싸움에 비중을 더 많이 두게 된다. 적어도 내 마음은 좀 더 경각심을 갖게 되고, 내 눈은 경치 좋은 바깥에 향하지 않고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과 내 안의 여러가지 생각들을 향하게 된다. 주어진 시간내에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같은 모습으로 완주한다는 점이 예전에는 너무 딱딱하게 느껴지고 부담스럽게만 느껴졌었는데, 서른 다섯 나이의 현재의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진행하고 그리고 끝내는 여정을 달리기로 비유하자면 우리 대부분은 주로 가속도 운동을 하는 아마추어 마라톤 주자에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프로 마라토너는 미분계수가 거의 생기지 않는, 즉 거리와 시간 그래프에서 굴곡이 거의 없는 일차 함수의 직선 형태에 가까운 유형으로 달린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는 주위 경치도 구경하고 여러가지 목적을 가지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를 하지만, 프로는 다르다. 프로의 목적은 단지 완주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프로의 목적은 경기에서 승리하는 거다. 기록을 갱신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주위 경치가 어떤지 감상하기 보단 주위 환경으로 인하여 자신의 페이스를 어떻게 하면 잘 유지하고 연습하던 대로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를 따져야만 한다. 그리고 결국 자기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하게 된다. 마치 트레드밀위에서 등속도 운동을 시도하는 아마추어인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말이다.
인생에는 여러가지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기쁨이 있는가 하면 슬픔도 예상보다 많이 기다리고 있으며, 일이 잘 진행되거나 해결되어 만족감을 느끼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예상대로 일이 되어지지가 않아 그 부분을 수습하려고 예상밖의 시간이 더 허비되는 어려움에 처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인생의 굴곡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자신의 삶을 그대로 굴곡있게 만들지는 않는다. 인생의 극소점에 다다를 때 포기라는 걸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인생의 최소점에 다다를 때조차 원래 자기 페이스를 유지할 줄 아는 힘을 가지고 있어 결국 자기자신의 삶의 그래프에서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난 후자가 되길 원한다. 페이스를 지속하여 유지할 줄 아는 힘. (이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힘인 동시에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놀라운 힘. 난 이런 힘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엔 마라톤을 완주했냐 안했냐가 중요하게 여겨졌다면, 이젠 달리는 과정에서 얼마나 같은 페이스로 지속하여 달렸냐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