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
살아있음.
과학자로서 살아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예전보단 현저히 그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그런 때가 종종, 마치 정말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가 찾아오듯, 오곤 한다. 오늘이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과학자는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다. 관찰/실험과 가설 사이에 놓인 엉성한 다리 위에서 끊임없는 긴장감과 불안감을 느끼면서 그 다리를 조금씩 견고하게 만들어 나간다. 때론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는 단편적인 결과에도 조심스레 의미를 부여하며 혼자서 조용히 세운 가상의 시나리오에 남몰래 전율하기도 하고, 때로는 명백하다고 여겨왔던 가설에 문득 의문을 제기하며 며칠 혹은 몇 달은 충분히 끌어안고 갈 깊은 상처와 함께 용기내어 새판을 짜야 하기도 한다. 그렇게 세우고 허물고를 지난하게 하다보면 판은 커질대로 커져버려 도대체 이 다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과연 몇 개의 다리를 한꺼번에 만들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가설 하나를 가지고 거기에 맞는 관찰과 실험을 해서 자신의 가설을 검증해나가는 게 과학자의 일이라고 단순하게 명제화시켜 말해버리는 것은 진짜 현장에서 일하는 과학자의 일상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낭만적이다.
트러블슈팅은 과학자에겐 밥먹거나 숨쉬는 것과 같다. 아무리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하면 바로 될 것 같은 계획도, 일반적으로는 곧바로 실현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 “실험은 원래 잘 안 되는 거 아닌가?” 맞다. 백 번 맞다. 가설대로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노벨상은 차고 넘쳐날 것이다.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고, 엉뚱하게도 어이없는 부분에서 전체의 기류가 휩쓸리는 적도 적잖이 있다. 즉, 과학자의 일상은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관찰과 실험을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문제가 생긴 것을 얼마나 노련하게 처치하며 나가는지에 어쩌면 더 큰 방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트러블슈팅은 필수다.
말이 길었다. 오늘 트러블슈팅을 간만에 멋드러지게 하나 했다고 자랑하려고 했는데, 역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 넋두리가 먼저 나온다. 특히 나의 본업인 과학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덕분에 오늘 멋진 현미경 사진을 확보했다. 아마 이 세상 누구도 본 적 없는 사진일 것이다. 최초의 관찰자가 된다는 것. 아.. 자꾸만 생각나고 흥분이 된다. 이런 경험이 좀만 더 자주 날 찾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