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으로 대체할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의 빈 공간
특별함으로 대체할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의 빈 공간.
한국에 부모님이 계신,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비애 중 하나는, 언젠가는 부모님의 임종과 관련된 전화 한 통을 기다리는 운명이라는 점이다.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명백하게 존재할 그날을 기다리는 상태에 한인들의 비애가 있다. 특히 연세가 평균 수명인 80세를 넘기신 부모의 경우, 새벽에 문득 걸려오는 전화벨소리는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들 정도의 힘을 가진다. 혹시 오늘이 그날이려나 하는, 섬광처럼 온몸을 스치는 생각. 그 두려움.
그래서 많은 한인들은 일년에 한 번 정도 한국을 방문한다거나 부모를 미국으로 초청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경제에 여유가 있다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충분히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계획이다. 그러나 많은 한인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룬 경우, 아이가 둘 셋 이상인 경우, 직장이나 자영업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 그런 계획은 현실에 벽에 부딪혀 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은근히 조금씩 쌓여가는 죄책과, 이런 당연한 것도 못해내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수치와 자책은 많은 한인들에게 있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비애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나 같은 경우 미국에 온 지 8년이 지났지만, 한국에는 단 한 번 방문했었고, 부모님을 두 번 미국으로 모셨다. 한 두달 정도 미국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시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이 하신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굉장히 의외였다. 나이아가라 폭포, 뉴욕 맨하탄, 보스턴, 네슈빌, 그랜드캐년을 비롯한 유타지역의 몇몇 캐년, 후버댐, 라스베가스 등등의 굵직굵직한 장소에서 함께 관광한 기억도 참 좋았지만, 그것보다는 나와 아내와 아들이 사는 허름한 아파트 주위 길을 츄리닝과 슬리퍼 차림으로 산책하거나 근처 공원에서 팝시클 같은 간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해질녘 다시 집으로 천천히 걸어서 돌아오는 순간 같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이 더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는 말씀이었다. 미국에 또 오게 된다면 그런 시간들을 더 즐기고 싶다고까지 말씀을 덧붙이셨다.
처음엔 아들 녀석이 돈을 많이 못 버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맛난 것도 사드리는 것에 대한 숨겨진 미안함이 묻은 배려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최근에 비슷한 경험을 한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난 그게 단지 부모의 배려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 말씀은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던 것이다. 부모님들에겐 정말로 일상적인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이젠 그렇게 믿는다.
생각해보면, 아들 녀석이 미국으로 가고 부모님들이 잃어버린 건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모님이 잃어버린 그 일상을 미국 방문시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으로 메꾸려고 했던 게 아니었을까. 일상의 묵직한 무게가 사라진 텅빈 공간을 몇몇 특별한 경험으로 대체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돈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서 더 많은 특별한 경험들을 부모님께 선물해 드려야 그나마 자식으로서의 본분을 다한다고 나도 모르게 믿었던 건 아니었을까.
내년엔 부모님을 한 번 더 모실 계획이다. 이번엔 좀 더 많은 시간 함께 일상을 보내야겠다. 마음 깊숙한 빈 공간을 가능한 많이 채워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