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흐린 날의 궁시렁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0. 2. 02:49

흐린 날의 궁시렁.

아무래도 흐린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보다 더 감상적이게 된다. 586 세대들은 이런 날이면 동동주나 막걸리를 떠올렸겠지만, 96학번이라 그나마 끄트머리에서 겨우 가능할 수 있었던 그들과의 접점도 내가 몸담은 대학의 지리적 환경적 특수성 때문에 나는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겐 동동주나 막걸리에 대한 감상이 아쉽게도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그저 학과 신입생 환영회에서 막걸리 사발식을 하고 차가운 회의실 바닥에 대자로 뻗어 한동안 정신을 못차렸던,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만이 가느다랗게 맞물려 있을 뿐이다.

특히 여기 서던 캘리포니아에서 흐린 날은 다른 지역에 비해 자주 경험하기 힘들기 때문에, 바깥이 흐리면 ‘정상적’이지 않은 날로 여겨질 정도다. 오늘이 그렇다. 매일 보는 똑같은 팜트리이지만 회색 빛의 짙은 구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오늘은 축 늘어진 잎사귀만 도드라져 보인다. 캘리포니아의 이국적인 풍경에 빠져서는 안 될 팜트리가 오늘 같이 흐린 날이면 차라리 없는 편이 그나마 캘리포니아의 인상을 덜 측은하게 여기게 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빛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배경에서 빛나느냐가 어쩌면 더욱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 맥락에 상관없이 허구한 날 빛나는 대상은 태양 하나로 족하다. 그러므로 팜트리 잘못이 아니다. 처량하게 보일 때도, 위용을 뽐내며 이국적인 느낌을 마음껏 발산할 때도, 팜트리는 팜트리다. 오로지 그것을 감상하는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들쭉날쭉할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보이든 주어진 맥락에 맞추어 살아남으며 그 자리를 지키는 것. 다양하고 다채로운 맛을 내며 해석자에게 다양한 시상을 선물해줄 수 있는 힘. 흐린 날에도 맑은 날에도, 측은하게 보여도 멋지게 보여도, 이런 것들보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옆에 있다는 것. 그리고 배경과 맥락에 상관없이 함께 있다는 것, 바뀌는 것들 가운데 바뀌지 않고 일상에서 서로 함께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