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풍성함
조화로운 풍성함.
밤을 가득 메우던 수많은 아이디어도 아침 햇살이 닿으면 이슬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치밀하고 강력하고 또 황홀하기까지 했던 생각이 아침이 되자마자 순식간에 너무도 허술하고 빈약하며 유치하게까지 느껴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밤이 가지는 마력일까, 아니면 아침 햇살이 가지는 마력일까.
하지만 반복의 위대한 힘은 가느다란 실 같은 흔적이라도 남긴다는 것이다. 그것은 조금씩 누적되며 하나의 이념이나 신념을 만든다. 한낮의 태양도 상쇄시킬 수 없는 밤의 열매다. 이러한 밤의 열매를 낮으로 가져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면, 비로소 그 열매는 낮의 열매가 된다. 이런 단계에 진입하면 밤과 낮은 더 이상 서로를 밀어내거나 상쇄하지 않고, 하나의 조화롭고 풍성한 이야기를 만든다.
밤의 감성과 낮의 이성은 반대되지 않는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선 그렇게 믿는 게 훨씬 더 쉽기 때문이며, 이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서로 분리된 두 개의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다는 말일지도 모르고, 일치와 조화를 바라면서도 분리와 모순에 먼저 길들여져 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모순이라고 여기거나 혐오하고 배제하고 있는 것들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맥락에 있지 않을까. 충분히 눈과 마음을 열고 고려하지 않은 채, 진지하게 따져보지도 않은 채, 그저 몸에 익숙하고 편한대로 생각해버린 건 아닐까. 그것이 꽤나 합리적이라고 스스로 믿으면서.
나는 밤과 낮의 조화, 감성과 이성의 조화가 좋다. 단조로움보단 풍성함이 좋다. 허나, 이를 위해선 시간과 노력, 재인식과 재해석이 필요하다. 진정한 존중과 배려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인생의 후반전을 맞이하여 모든 게 흐릿해지는 것 같은 위축감은 이런 여정의 일환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