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11월 3일: 섬머타임 해제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1. 5. 02:04

11월 3일: 섬머타임 해제.

아침에 눈을 뜨니 온몸이 쑤신다. 10년 만에 배드민턴 라켓을 잡던 3개월 전 그날과 똑같다. 어제 하루 종일 배드민턴을 쳤기 때문이다. 알람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시 망설이다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다시 체육관으로 향한다. 잠이 아닌 운동으로 몸을 푸는 게 낫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두 시간 정도 다시 땀을 흘리고 집에 돌아와 씻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한다. 적적한 집에 그나마 소음이 나는 시간이다. 세탁기 돌리는 소리, 청소기 돌리는 소리. 얼마 안 되지만, 밀린 설거지는 나중에 하기로 한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기다리며 책을 읽는다. 그러나 금새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머리가 아프다. 타이레놀을 먹는다. 아직 20분 정도 남아있다. 타이머를 맞추고 소파에 누워 잠시 눈을 부친다.

배는 고프지 않다. 빨래를 널고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예배 참석할 시간이다. 다행히 잠깐 눈을 부친 게 도움이 된다. 개운하다. 차 열쇠를 들고 밖을 나선다. 햇살이 좋다. 옆에 아내와 아들이 있으면 좋겠다.

예배를 마치고 중고서점에 들려 한 시간 정도 보고싶은 책을 훑어보다가 책 한 권을 구입한다. 매주 이렇게 한 권씩 사는 것도 이젠 익숙한 습관이 됐다. 작년엔 가족과 함께 금요일 저녁마다 왔었는데.

책을 보고 있자니 그제서야 배가 고프다. 불현듯 백정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두 달에 한 두 번씩 가족과 함께 가서 맛있게 먹던 기억이 오늘따라 선명하게 떠오른다. 배가 고픈건지 가족이 보고싶은 건지 잠시 헷갈린다.

어제 날 항상 아껴주는 정경 님이 일요일 저녁 때 시간 되면 밥을 사주겠다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문자를 보내니 시간이 괜찮다고 하신다. 잘 됐다 싶다. 백정에서 만나기로 한다.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세 시간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날 위해 시간도 내주시고 돈도 내주신 사랑에 감사할 따름이다. 덕분에 배도 채우고 그리움도 많이 채워졌다.

11월이 시작됐다. 오늘은 섬머타임이 해제된 첫 날이다. 이젠 저녁 6시도 되기 전에 깜깜해질 것이다. 밤이 길어지는 계절. 어두워지는 만큼 마음이 더 따뜻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