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뒤통수.
누구나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들이 있다. 행복했던 기억, 아팠던 기억,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했던 기억까지. 문제는 시간일 뿐, 우린 잊는 존재다. 기억은 단 한 번도 망각을 이긴 적이 없다.
살아가다 보면,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의 조각이 잊었던 기억을 무심코 툭 건드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과거의 그날과 똑같은 감정에 순식간에 폭풍처럼 휩싸이기도 한다. 분명 잊었던 기억인데, 잊었다고 철썩같이 믿었었는데, 그 순간 나는 그때의 내가 되어 그때와 동일한 생각을 하고 그때와 동일한 냄새를 맡으며 그때와 동일한 감촉을 느낀다. 기억이 망각을 이긴 적은 없지만, 어쩌다 이렇게 한 번 길이 열리면 기억은 망각을 삽시간에 점령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경험 다들 가지고 있지 않은가.
혼자 놀고 있는 아이의 조그맣고 까만 뒤통수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어느새 또다시 클리블랜드로 돌아간다. 과거의 아픈 상처는 잠시 잊혀졌을뿐 치유된 게 아니었다. 내 가슴은 다시 먹먹해지고 나는 아들을 그리워한다.
아내가 사진을 보내왔다. 아들 녀석 혼자서 운동화 끈을 묶고 있는 모습이다. 내 눈엔 녀석의 뒤통수가 보인다. 똑같다. 그때의 그 느낌과 똑같다. 조그만 아들의 뒤통수는 언제나 내게 말 없는 말을 건낸다. 내게 있어 그것은 언제나 그때를 회상케 하는 기억의 웜홀 같은가 보다.
이제 한 달 남짓이면 아들을 직접 볼 수 있다. 만나면 번쩍 들어서 꼭 안아줘야지. 눈물은 꾹 참고 녀석의 볼에 마음껏 뽀뽀를 퍼부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