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죄송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1. 8. 09:26

죄송.

나름 글을 조금씩이라도 매일 쓰는 습관을 가지게 된 건 아주 오래 전이다. 아직도 부모님 댁에 가면 국민학생 때부터 써왔던 일기장이 창고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에 들어가서 군에 입대하기 전까진 일기보다는 펜팔과 연애편지를 쓴다고 설쳐댔던 기억도 아직 남아있다. 복학하고 나선 여느 복학생처럼 나도 다행히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군에 있었던 2년 2개월이란 세월 동안 바보가 된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의한 절박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군생활을 했던 곳은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연천이 만나는 곳이자, 말라리아 모기가 들끓어서 해마다 말라리아 예방 알약을 상관의 감시 하에 배가 아파도 의무적으로 먹어야 했던 곳이며, 유행성 출혈열을 일으킬 수 있는 등줄쥐가 살고, 산 속 음지에 가면 팔뚝만한 더덕을 캘 수 있는 곳이었으며, 꿩과 고라니를 철책 주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매서운 추위를 가르며 밤하늘로부터 쏟아지던 별들을 적외선 망원경으로 훔쳐보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글쓰기에 대해 쓰려다가 한참 옆길로 새버렸다. 역시 군대 얘기만 나오면 자신만의 감상에 빠져버리는 남자들의 본성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그래도 언젠가는,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한 번 그곳에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경기도 연천군 대광리까지 기차를 타고 간 뒤, A급 전투복도 단 몇 초만에 먼지 투성이로 빛을 잃게 만드는 힘을 가진 육공 트럭을 타고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을 지나 끝도 없이 펼쳐진 논과 밭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남방 한계선. 그 철책을 지키는 조그마한 초소들. 귀가 따갑게 들리던 대남방송. 지금도 여전히 전반야와 후반야 교대시에는 대기막사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까.

아참, 글쓰기에 대해 할 말이 있었는데, 군대 얘기하다보니 까먹어버렸다. 글쓰기에 대한 얘기는 다음 번에. ㅋㅋㅋ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