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몸과 머리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1. 16. 13:58

몸과 머리.

몸이 안고 있는 문제를 몸으로 푸니 뜻밖의 만족감이 있다. 약 1년 간 5 킬로그램 정도의 체중을 줄였다. 좋아진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모든 문제를 머리로만 풀려고 하는 방법에 나도 모르게 너무나도 길들여져 있었던 나를 발견한다. 머리를 쓰는 게 오히려 무식함이 되는 이런 상황. 너무 좋다.

우선 혈압 약을 절반만 먹어도 120/80을 유지한다. 유전적으로 여느 사람들에 비해서 고혈압에 취약하게 태어난 게 분명한데도 그 사실을 개의치 않고 마치 그렇지 않은 사람들처럼 함부로 먹어댄 것이 주원인이었을 것이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그 앎을 삶에서 실천해내는 것은 별개의 얘기임이 분명하다. 약 10년 간 야금야금 늘어갔던 체중은 그 원인과 이유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는 건강에 해롭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이렇게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이 불필요했던 여정에서 뒤늦게 깨닫는다.

내 자신의 모자란 역량과 내게 주어진 부족한 환경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며 그 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답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머리로 재고 따지면서 왜 나는 할 수 없는지 왜 하면 안 되는지 그 당위성을 찾아내면서 나의 게으름을 어떻게든 덮으려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다. 좋은 방법을 생각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너무 생각만 해서 못했던 것이다. 몸이 안고 있는 문제를 머리로만 풀려고 했기 때문에 제자리에 정체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뒤쳐질 수밖에 없었고, 또 그러다 보니 '나는 못한다'는 말을 나의 정체성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don't"가 정체되면 언젠가는 "can't"가 된다. 귀찮음과 게으름은 언제나 자기기만의 숨은 범인이다.

요요 없이 안정하게 체중이 주니 포만감을 느끼는 음식 양이 줄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창 많이 먹던 지난 10년 간 익숙해진 음식 양을 내 머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여전히 내 몸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머리는 더 먹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몸은 이미 거부하고 있다. 이런 괴리감. 한때는 좌절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었을진 몰라도 지금의 난 이런 좌절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아주 반갑고 기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젠 운동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다. 체중도 중요하지만 체지방 율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무작정 먹는 양을 줄이며 살을 빼면 근육 양이 지방 양보다 더 많이 줄어든다. 특히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 해가 갈수록 근육 양이 줄어들고 기초대사량이 줄어드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면, 근력은 곧 모든 활동의 기초가 된다. 이런 상황에선 근력이 정신력까지도 관장한다. 근력이 늘게 되면, 뜻밖에도 기초 체력 뿐만이 아닌 자신감은 물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기분까지도 느낄 수 있다. 똑같은 일을 하고 나서 받는 스트레스도 현저히 줄어든다. 어쩌면 우리가 앓고 있는 정신에 관계된 병적인 증상들의 원인은 예상 밖에도 머리가 아닌 몸에, 즉 체력 부족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게 아니라 연결되었다고 철학적으로 말만 하는 사람과 직접 삶 속에서 그것을 이용해 몸과 마음을 모두 건강하게 만드는 사람의 차이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입만 산 사람은 머리만 쓰는 자일 확률이 높다.

5 킬로그램 빼고 마치 아주 커다란 것을 깨달은 것처럼 말하는 내 자신이 조금 우습긴 하다. 하지만 1년 전 체중 조절을 시작할 때 나는 이를 악물고 나와 약속한 게 있다.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는 즈음에 조금은 늦었지만 건강한 몸을 만들자고. 어떤 새롭고 거대한 목적을 고안해 내거나 달성하려고 노력하기 이전에, 기초를 먼저 다지자고. 그래야 무엇을 하든, 어떤 일이 닥쳐오든 더 잘 견디고 잘 처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현재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고 있는 것 같다.

아내와 아들이 한국으로 간 뒤, 10년 만에 배드민턴을 시작했었다. 그러나 다음 달에 한국 방문을 하면서 아들을 먼저 데리고 오면, 그 짧았던 즐거움과도 인사를 해야 한다. 4개월 간의 배드민턴 덕분에 참 즐거웠다. 덕분에 왼쪽 무릎 인대가 조금 다치긴 했지만 (이것도 근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젠 아들과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야겠다. 함께 몸으로 부대끼면서 가족 간의 사랑도 덩달아 깊어지리라 믿는다. 머리로 재고 분석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골치아픈 인생이 아닌 (어차피 인생은 골치 아프지 않은가, 그걸 가속화시킬 필요는 없다. 적어도 그건 할 수 있다), 함께 웃으면서 유머와 함께 넘어가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게 지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내년 이 맘 때 즈음이면, 5 킬로그램을 더 뺄 수 있길 기대해본다.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