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
위선.
약자라고 해서 모두 약자는 아니다. 경제적 약자와 육체적 약자를 비교해 보며, 게으름을 약함으로 위장하여 약자만의 특수한 사정을 이용하는 위선적인 사람들에 관한 생각의 단편이다.
먼저, 경제적 가난함은 결코 개인의 무능이나 게으름 때문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피라미드 시스템이 더 큰 원인으로 작동한다. 반면, 육체적 가난함, 다시 말해 약한 체력은, 선천적인 이유가 없다면, 백 퍼센트 개인의 게으름 때문이다. 결코 누군가나 사회구조를 탓할 수 없다. 그건 마치 누구나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다는 건 잘 알지만,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막는 이는 자신 이외엔 아무도 없다는 사실과 같다. 결단만 하면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가능하듯, 약한 체력은 맘만 먹는다면 언제든 개선할 수 있다. 즉, 새벽에 못 일어나는 사람은 사실은 못 일어나는 게 아니라 안 일어나는 거다. 스스로 선택한 거다. 그래놓고 마치 선천적으로 자신을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건 엄밀히 따지면 위선이다.
결단이 어려운 건 체력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게으르기 때문이다. 이차적인 원인을 제거하느라 난리법석을 치는 건 진짜 원인을 덮으려는 수작일 뿐이다. 진짜 원인은 체력부족이나 의지박약이 아닌 게으름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는 아무리 자기가 마음을 먹어도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힘들겠지만, 육체적으로 가난한 자는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다. 경제적으로 한 번 약자는 영원한 약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육체적으로 한 번 약자는 절대 영원한 약자일 필요가 없다. 언제든 상승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는 약자 연대를 이뤄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견고한 피라미드 시스템에 저항하고 그 성벽에 흠집을 내야 하겠지만 (그리고 사회는 그 연대의 움직임을 지원해야 하겠지만), 육체적으로 가난한 자는 그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런 시도를 한다면, 그건 자신의 게으름을 정당화하려는 위선이자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약자의 특권을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쟁취하려는 건 게으른 악에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다. 스스로에게 약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약자 행세를 하는 가짜 약자, 게으름을 이용해 스스로를 약자에 묶어두어 약자의 약함을 특권 삼는 모든 인간들은 약자도 강자도 아닌 게으른 자일 뿐이며, 이런 이들에게 이성은 자기합리화와 교묘한 형태의 혐오와 배제, 그리고 자신도 잘 깨닫기 힘든 열등감의 원인이자 수단이 될 뿐이다.
함부로 약자인 척 하지 마라. 그리고 함부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자를 상대화시키지 마라. 경제력은 타고 날 수 있지만, 체력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유전적으로 어떤 결함이 없다면, 유한한 인간이 가진 체력은 오십보백보이며, 특히 성장이 멈춘 시기 이후에 접어든 성인이라면 그때부턴 선천성이란 항목은 그게 설사 존재했다 하더라도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도 기억해라. 인생의 절반 이상은 나이들어감, 즉 죽어가는 과정이다. 관건은 개선과 유지에 있다. 경제력은 인간의 모든 일의 결과보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체력은 원인이 아닌 결과일 뿐이다. 후천적인 강자를 선천적 강자와 동일시하지 말 것이며, 후천적 약자이면서, 그리고 스스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길 선택했으면서, 마치 선천적 약자인 것처럼 행세하지 마라. 강자의 거만함과 거들먹거림도 싫지만 위선자의 연극은 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