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낡고 해진 사랑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1. 20. 06:07

낡고 해진 사랑.

결혼하기 전에는 새로운 신발과 근사한 옷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아무도 신지 않아 진열장에 다소곳이 놓인 구두와 쇼윈도 안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옷을 보며, 나는 그녀가 신고 입을 날을 상상했다. 그 가슴 설레며 혼자 웃음 짓던 나날들을 난 사랑이라 생각했다.

결혼 후 그 구두와 신발은 아내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신발과 옷은 낡고 해지기 시작했다.

아내의 겨울 옷을 챙기며 아내가 신던 신발과 옷이 눈에 들어온다. 본능적으로 나는 그 옷에서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나는 조금 무너졌다. 영락없는 남편의 모습이다.

신발과 옷이 낡고 해진 기간은 우리가 사랑한 날들이다. 아내가 곁에 있을 땐 항상 그 옷들에서 아내의 냄새가 났다. 하지만 난 소중한 걸 몰랐다. 옷장에서 수개월 간 걸려 냄새가 다 빠진 옷을 만지며 난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한국에 방문하면 아내에게 예쁜 신발과 예쁜 옷을 선물할까 생각한다. 그 생각을 하니 마치 결혼하기 전 그때와 똑같은 마음이 되는 것 같다. 한 여자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마음이. 하지만 나는 그때와 다르다. 나는 빛나는 새 신발과 옷을 보며 상상 속에 잠기는 사랑도 경험해 봤지만, 신발과 구두가 낡고 해지는 기간을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함께 살아내온 사람이다. 이제서야 다시 돌아온 사람처럼 나는 조금은 다른 설렘으로, 조금은 다른 사랑으로 선물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