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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에 대한 뭇사람들의 인식론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주장에 함몰되어 오히려 일부러 더 겉모습을 가꾸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는 유아적인 반동 심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은 거울을 볼 때 과연 진심으로 만족스러울까. 그런 폭력을 날리는 뭇사람들을 향해 엿먹어라 하는 시위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가꾸는 데엔 실패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들은 남의 시선을 신경쓰는 게 싫다고 시위까지 하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날씬한 걸 좋아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열등하게 대하는 시선이 싫다고 해서 일부러 몸을 뚱뚱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사실 당신도 날씬한 자기 모습을 기대하지 않는가? 아무도 과체중이나 비만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날씬하고 뚱뚱한 체형만을 가지고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분명 인식론적 폭력이며 차별과 혐오의 행위가 된다. 그러나 뚱뚱한 건 날씬한 것보다 건강하지 못하다는 기본적인 사실까지 잊으면 안 된다. 뚱뚱한 사람이나 날씬한 사람이나 모두 사람으로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하겠지만, 뚱뚱함과 날씬함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뚱뚱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특히 중년에 들어선 분들) 건강을 위한 건전한 노력이지,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게 주목적이 아니다.
차별 받는 약자들의 연대에서 본인의 게으름을 자꾸 무시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 연대는 당신의 그 비겁함을 덮어주려고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론적 폭력으로 인한 차별과 혐오는 당신의 게으름과는 별개의 문제다. 분별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구조적인 거대담론에 묻어가며 개인의 윤리나 성실함을 등한시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럴 때마다 자꾸만 목소리를 크게 내어 자신이 마치 또 약자 차별을 받는 것처럼 상황을 부풀리고 왜곡하여 숨는 행위는 비겁함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약자는 차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비겁한 자는 도저히 평등하게 대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