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문화: 공감대와 다양성
음식과 문화: 공감대와 다양성.
서점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좋은 느낌을 받는다. 대형서점이든 동네책방이든, 유리창 안으로 정렬된 책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 느낌이 나는 내가 그 책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미국에 오고나서 영어책들만이 가득 차있는 진열장을 마주했을 때도 동일한 느낌을 받는 나를 보고 알게 되었다. 책은 그 자체로써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설사 그 책이 어떤 언어로 쓰였더라도 말이다.
이런 면에서 책은 음식이라기보단 문화다. 내가 서점을 지나칠 때 가지는 독특한 느낌은 내가 먹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동안 그것을 먹을 때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이 소환되어 하나의 인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커피문화를 판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말이다. 광고를 전혀 하지 않는 스타벅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커피매장 중 하나로 살아남고 있다는 건 분명 그만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음식이 이니라 문화를 생산해내어 팔기 때문이다.
다행히 책 읽는 문화를 난 좋게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커피도 좋아한다. 둘 다 문화의 힘이 녹아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책을 읽을 시간이 생길 때마다 커피가 마시고 싶은 건.
사람과 사람이 뭔가 맞다고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문화의 힘이 보이지 않게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책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는 그 다음 문제다.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도 마찬가지로 그 다음 문제다. 중요한 건 책 읽는 문화나 커피 마시는 문화를 좋아하고 실제로 삶에서 즐기고 있는지 여부에 있는 것이다.
다양성이란 단어를 생각해본다. 왠지 오늘따라 이 단어가 정제되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다양성도 뭔가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공감대랄까, 뭔가 공통적인 문화를 가진 전제 하에서 비로소 생각해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그리고 아마도 이민자들의 애환도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 있지 않을까. 공감대를 잃은 채 다양성에 노출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