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onologue

추억 밟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1. 2. 04:17

추억 밟기.

한국 방문 열흘째.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다. 어느새 나는 다시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 되어간다. 몸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방인의 눈은 조금씩 감겨져가고, 그 눈으로 살던 나날들은 벌써부터 오래전 이야기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14년 전 결혼식을 올렸던 교회를 방문했다. 예배 참석을 하고 부모님을 뵈러 영천을 찾았다. 잠시 시간을 내어 내가 10년 간 몸을 담았던 모교도 방문했다. 아내와 손을 잡고 한 시간 정도 캠퍼스를 산책하며 나는 감회에 젖었다. 내 발걸음은 대학생/대학원생 시절의 그것으로 바뀌어 힘이 들어갔고 방문객은 잘 모르는 샛길을 포함한 교내 지도가 다시 머리 속에 그려졌다. 그 길들을 밟으며 추억을 현실로 소환했다. 묘한 안정감에 덧입혀진 낯설음. 나는 여기서도 이방인일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만 누릴 수 있는 간식 코너에서 핫바, 통감자, 맥반석 오징어 등을 맛봤다. 이 특유의 문화. 나는 또 감상에 젖는다. 추억은 기억 속에 있지만 후각과 미각과 촉각은 그것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어느덧 다시 출국할 날이 다가왔다. 아련함이 맴돈다. 고국에서도 타국에서도, 마치 고향을 잃어버린 이방인처럼 나는 다시 나의 정체성을 생각해본다. 고향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 나그네의 삶은 풍성한 것이다.

 

12/25/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