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aith

일용할 양식

가난한선비/과학자 2013. 2. 13. 06:29

출애굽 후 광야 40년이란 세월동안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셨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안식일을 제외한 매일마다 그 양식들이 제공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선 절대로 일주일치 혹은 한달치를 미리 공급해 주지 않으셨다.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하나님께선 단 일초만에도 광야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고도 남을 음식을 제공하실 수도 있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법은 바로 '일용할 양식' 이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 주기도문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을 찾아 볼 수 있다.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한번에 일년치나 백년치도 주실 수 있으신 하나님께, 어찌 보면 참 째째하게, 단 하루의 먹을 것만을 구하라고 직접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왜 하나님께선 '일용할 양식'에 그토록 의미를 두셨을까? 단지 그 당시엔 냉장고 같은 저장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혹자는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일용할 양식'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이 분명하다. 나와 우리 가족의 시간표를 가만히 묵상해 볼 때 난 조금은 그 의미를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은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 "효율"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한번에 대량 생산하여 대량 공급해 버리는 것이 매일 소량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렇게 보자면 하나님의 '일용할 양식'의 방법은 지극히 비효율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이 방법은 공급자나 수요자나 모두 똑같은 작업을 매일 반복해야 하는 귀찮음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이며, 하루도 빠뜨리는 일 없이 완벽하게 체크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따르게 된다. 미래를 미리 준비하는 사람의 경우, 자신의 수중에 오늘 먹을 것 밖엔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 할 수도 있고, 별 생각없이 배부르면 된다는 사람의 경우, 매일 똑같은 음식에 싫증이 나서 자신이 지금 광야 한복판에서 자칫하다간 굶어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오직 하나님 덕분에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채 불평을 해댈 수도 있다. 이런 여러가지 문제들이 연출되는 건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의논도 하지 않으신채 일방적으로 결정하시고 실행해 버리신 '일용할 양식'의 방법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귀찮음과 부담감, 염려와 불안, 그리고 불평과 불만.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다.

 

먼저 귀찮음과 부담감;

우리는 매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하고, 이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원받기 전 체질의 여파로 이러한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귀찮음으로 여기고 못내 부담스러워 기피하기 일쑤다. 하나님의 은혜는 부흥회나 집회 같은 곳에서 일주일치나 한달치, 혹은 일년치를 한꺼번에 받아 놓을 수 없다. 성령의 내주하심과 인도하심은 구원받은 이후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비가역적 (irreversible)이지만, 성령의 충만만은 가역적 (reversible)이기 때문이다. 즉, 영적인 양식인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올바르게 체험하는 방법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처럼 매일 지속적으로 기도와 간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염려와 불안;

똑똑한 사람은 미래를 미리 준비하는 법이다. 만일의 상황에 대하여, 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그 다음 단계의 일이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투자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과거는 미래를 더욱 성공시킬 수 있는 선경험과 시행착오 과정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현재는 그러한 과거의 발판 위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에 불과하다. 이런 종류의 사람은 보통 엘리트 계층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사실 성공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철저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자기 관리, 시간 관리, 그리고 사람 관리. 이 모두가 바로 성공이란 한 단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혹자는 성공이란 말이 부담스러워 행복이라는 단어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견해는 성공이든 행복이든 이런 것들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며 만약 그렇게 됐다면 그런 인생은 마침내 실패와 불행을 맛볼 시간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자신이 추구하는 성공과 행복을 보장할 그 어떠한 힘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생사화복조차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에, 처음과 나중을 모두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의지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참 성공과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으랴! 하지만 하나님을 배제시켜 놓고 성공과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이미 대중화되어 있으며 당연시되어지고 있는 요즘 세대를 보면 참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들의 눈에선 평안을 찾을 수 없고 오직 염려와 불안만이 그들을 충만하게 하고 있다. 내일 일을 알 수 없기에 미리 통장엔 잔고가 두둑히 있어야 안심이 되며, 냉장고과 창고엔 적어도 며칠은 장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버틸만한 음식들이 들어 있어야 한숨을 돌린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이러한 방식을 모두 거스른다. '일용할 양식' 방법은 바로 오늘, 즉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그 초점을 둔다. 사람에게 있어서, 특히 성공지향적인 사람들에 있어서 아주 한순간에 불과한 현재라는 시점을 하나님께서는 크게 보고 계신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오늘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미래의 준비이며 과거의 치유이기 때문이다. 만일 변함없이 하루에 백만원씩 매일 채워지는 신비한 통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도 요즘 세대의 사람들처럼 미래를 위해 투자하진 않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의 부정적인 일면은 자주 신문이나 TV에서 보도되는 세계 톱스타들의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일상 생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넥타이를 목에 졸라매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힘에 겨운 일을 반복하지 않아도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이미 다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초점은 미래에 있기 보단 현재를 즐기는 데에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이든 아니든, 인간이라면,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스스로가 인정한다면 인생의 초점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자연스럽게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신다. 가족 구성원이 두명이라면 두명이 먹을 양식을, 자녀가 있어 셋이라면 셋이 먹을 양식을, 넷이나 다섯이라면 그 넷이나 다섯이 먹을 양식을, 때로는 기적같은 일을 통해서 실수없이 하나님 자녀들에게 공급하신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이후 하나님 자녀가 된 자들에게는 실상 미래는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녀가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치시는 대목에서 하나님께선 입을 것과 먹을 것에 대해선 구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이는 입지도 먹지도 말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뜻이 아니라, 입을 것과 먹을 것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당연히 알고 계시므로, 당연히 채워 주신다는 뜻이다. 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을 여러번 체험한 적이 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 땅에 '가라' 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정든 한국 땅을 떠나 낯선 미국 땅에 왔을 때에도 하나님께선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다. 내 월급으로 모자란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미국 시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fellowship을 받게 하심으로써 딱 맞게 채워 주셨다. 즉,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낯선 땅에서도 아무런 부족함 없이 하나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견해로는, 미래에 대해서 염려하고 불안해 하는 하나님 자녀들이 있다면, 이는 여전히 하나님을 방법인 '일용할 양식'을 제대로 체험해 보지 못했거나, 아직도 하나님을 의심하고 있거나, 아니면 여전히 자신의 방법을 하나님의 방법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나님의 '일용할 양식' 방법에는 인간의 나약한 부분, 바로 염려와 불안을 뛰어넘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확신이라는 사실을 각자가 스스로 증명하여 그 믿음과 확신을 견고하게 만들도록 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가 숨어 있다.

 

불평과 불만;

이는 은혜를 받고 그것이 은혜인 줄도 모르는, 한마디로 배은망덕한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오늘 먹을 양식을 다 먹고 나면 내일도 그 양식이 공급이 될 줄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엔 감사가 없다. 형식적인 예배와 외식적인 기도생활에 물들어 버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도 가져본 지 이미 오래전 일이 되어버린 사람들. 마치 만나로는 부족함을 느껴 고기가 먹고 싶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내뱉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흡사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이러한 불평과 불만도 받아 주시고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신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만, 결국 광야 체질의 벗어버리지 못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는 입성하지 못한다. 광야에서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즉, 사망에서 생명으로 신분이 바뀌어 죽어서 천국은 가겠지만 (구원은 받았지만), 살아선 그 천국을 맛보지 못하며 오히려 하나님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보다도 실패된 인생을 살아가는 신자들과도 같다. 우리는 여기서 감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불평과 불만은 감사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신 말씀을 떠올릴 때, 우린 한번 더 불평과 불만을 일삼는 자는 하나님 말씀에 위배됨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선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한 육의 몸을 입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길 원하신다. 바로 여기에 '일용할 양식'의 비밀이 숨어 있다. 매일 하루 먹을 만치의 양식이 제공되는 건 불평과 불만꺼리가 될 수도 있지만, 지속적인 감사의 제목도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의 방법을 통하여 우리들이 같은 이유이지만 불평과 불만이 아닌 감사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길 원하시는 것이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선 친히 하나님 자녀에게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신다는 것을 난 의심없이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믿음은 확신으로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함으로 모든 선택과 결정 시기에 행동으로 묻어나온다. 사람들은 묻는다. 당신의 미래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고. 미국에 몇년이나 있을 예정이냐고. 한국에는 언제 들어올 예정이냐고. 난 당당하게 대답한다. 하나님께서 미국으로 가라고 하셔서 미국에 왔던 것처럼 다시 미국을 떠나라고 하실 때 떠날 것이고 한국으로 들어가라고 하실 때 들어갈 거라고. 하지만 때와 기한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오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 바로 오늘 하나님께서 날 위해 친히 예비하신 일용할 양식임을 믿는다.

감사함으로 그 축복을 누리는 것. 바로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누리는 것임을 믿는다.

난 일용할 양식이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