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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흩어진 행복의 조각을 찾아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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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기억에 남는 삶, 읽고 쓰는 삶의 스냅샷</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2 Aug 2026 07:55:1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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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가난한선비/과학자</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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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흩어진 행복의 조각을 찾아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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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난한 반복: 열정, 인내, 희생</title>
      <link>https://rtmodel.tistory.com/2224</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지난한&amp;nbsp;반복:&amp;nbsp;열정,&amp;nbsp;인내,&amp;nbsp;희생&lt;/b&gt;&lt;br /&gt;&lt;br /&gt;며칠 전 500번째 감상문을 남겼다. #김영웅의책과일상 이라는 해쉬태그로 감상문을 쓰기 시작한 건 10년 전이었다. 10년 만에 500개이니 대충 계산해도 평균 1년에 50개의 감상문을 썼다는 얘기다. 1년이 52주이니 평균 일주일에 한 편 정도 꾸준히 써왔단 얘기도 된다. 나는 개수보다 10년이라는 기간에 주목한다. 나이 들어가며 점점 더 진리로 다가오는 것 중 하나가 성실한 지속의 힘이기 때문이다. 루틴의 힘. 그 지난한 반복의 힘. 이 힘은 여러 가지 작은 힘으로 이뤄진다. 열정, 인내, 희생, 이 세 가지 힘으로.&amp;nbsp;&amp;nbsp;&lt;br /&gt;&lt;br /&gt;열정은 무언가를 시작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다. 하지만 많은 일들은 시작만 하고 오래 이어지지 못하는데 그건 인내의 부재 때문이다. 인내는 그 어떤 것이라도 오래 지속하기 위해 꼭 필요한 힘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만 번 바뀌고, 그토록 뜨겁던 열정도 순식간에 식어버릴 수 있기에, 그리고 갑자기 해야 할 이유를 상실하거나, 다른 일로 인해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이유 없이 귀찮아져 버릴 때가 우후죽순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인내할 줄 모르면 어이없을 만큼 가볍게 포기로 이어지게 된다. 인내는 무조건 참는 게 아니다.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 합리적으로 말하자면 우선순위라는 개념을 들고 올 수도 있겠다. 소중한 것을 지속하기 위해 덜 소중한 것들을 손에서 놓는 일이 수반되지 않으면 인내는 무식하고 고지식한 행동밖에 되지 못한다. 희생을 다른 말로 하면 지켜내는 일이다.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 덜 소중한 것을 버리는 것. 그러므로 희생은 분별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열정으로 시작한 일을 인내하며 희생할 때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나에게 감상문은 독서의 마지막 단계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는 경우에는 나눔이 마지막 단계이지만, 그런 책은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은 혼자 읽고 혼자 감상문을 쓰며 마무리를 한다. 나는 그렇게 하나의 책이 나를 통과하며 남긴 흔적들을 기념한다. 기념하지 않는다고 해서 흔적이 남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인간의 기억은 믿을 게 못 되기 때문에 쓰지 않으면 그 흔적은 망각되기 마련이다. 기념하는 일은 그러므로 기억하는 일이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기억은 단순히 읽은 책을 기억하는 게 아니다. 그 책과 함께했던 나의 소중한 시간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감상문은 인터넷에 즐비한 앵무새식 서평(이라 쓰고 카피와 짜깁기라고 읽는다) 따위와는 다른 형식을 띤다. 책의 요약과 소개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했듯이 나는 내가 그 책과 함께한 나의 소중한 시간을 기념하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감상문을 쓴다. 말하자면 나의 감상문은 독자를 위한다기보다 나 자신을 위한 글인 셈이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앞으로도 나는 계속 감상문은 남길 것이다. 이제 감상문을 쓰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을뿐더러 완독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나를 위해 나는 계속 쓸 것이다. 500번째 감상문을 완성했으니, 1,000번째 감상문은 앞으로 10년 뒤에나 가능하겠다. 과거 10년간 점진적으로 개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7-8년 정도 걸릴 수도 있겠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p&gt;</description>
      <category>읽기와 쓰기</category>
      <author>가난한선비/과학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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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rtmodel.tistory.com/2224#entry2224comment</comments>
      <pubDate>Sat, 1 Aug 2026 12:03: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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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똑똑한 사람들의 담합</title>
      <link>https://rtmodel.tistory.com/2223</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똑똑한&amp;nbsp;사람들의&amp;nbsp;담합&lt;/b&gt;&lt;br /&gt;&lt;br /&gt;&amp;ldquo;너는 그 사람 말만 듣고 동수를 그렇게 판단해도 된다고 생각해? 동수가 그럴 만한 사람이란 건 동의하지만, 그건 다른 얘기잖아.&amp;ldquo; 지혜가 말했다.&amp;nbsp;&lt;br /&gt;&lt;br /&gt;&amp;rdquo;그건 그렇지만, 어떻게 행동 하나하나를 다 확인할 수 있냐? 그리고 그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이잖아.&amp;ldquo; 철규가 대답했다.&amp;nbsp;&lt;br /&gt;&lt;br /&gt;&amp;rdquo;난 아니라고 봐. 그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말하는 게 다 진실이라는 법은 없잖아. 그 사람도 사람이라 동수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사람이 안 좋은 일을 겪고 나면 한 쪽으로 치우쳐서 얘기하기도 하잖아. 거짓말은 아니더라도 전체 맥락을 빼놓고 부분만 선택적으로 얘기하면 충분히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거나 악마로 만들 수도 있지.&amp;ldquo; 지혜가 정색하며 대꾸했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amp;rdquo;그럼 너는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아? 그 사람은 인상도 좋고, 인간관계도 잘하는 것 같고, 좋은 일도 앞장서서 하는데도? 반면 동수는 맨날 무뚝뜩하게 혼자 있거나 서준이를 포함해서 몇몇하고만 다니잖아.&amp;ldquo; 철규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amp;nbsp;&lt;br /&gt;&lt;br /&gt;&amp;rdquo;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말한 대로 동수가 그런 일을 했다는 건 난 믿을 수 없어. 동수에게 직접 물어보고 결론을 내리는 게 맞다고 봐.&amp;ldquo; 지혜가 정리했다.&amp;nbsp;&lt;br /&gt;&lt;br /&gt;&amp;rdquo;참나&amp;hellip; 그런데 동수 좀 재수 없지 않냐? 그 사람 말은 내가 넌지시 파악한 동수의 캐릭터와 일치해. 완벽히.&amp;ldquo; 철규가 못마땅하다는 듯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amp;rdquo;동수가 재수가 좀 없지. 잘난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기만의 세상이 너무 분명해서 선이 느껴지기도 해. 그런데 그런 선입견 없이 다가가서 대화를 해 보면 생각보다 딱딱하게 굴지 않아. 난 오히려 동수랑 대화하면 거짓이 전혀 안 느껴졌어. 신뢰가 가더라구. 반대로 그 사람은 다 좋은데, 왠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들어. 대외용이랄까? 가식적이랄까? 하여튼 그 사람에게선 뭔가 꾸민 듯한 인상이 강해. 신뢰가 안 가.&amp;ldquo; 지혜가 말했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amp;rdquo;지혜 네 말 듣고 보니 그건 그런 것 같네. 동수랑 얘기할 땐 나도 비슷한 걸 느꼈어. 거짓말은 왜 하고들 난리야 하는 식이었거든. 너무 당당하게 얘기해서 내가 좀 주눅드는 면은 있었지만, 그건 동수 문제라기보다는 내 문제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amp;ldquo; 철규가 솔직하게 얘기했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amp;rdquo;그래, 바로 그게 내 포인트야. 진정성을 놓고 보면 그 사람보다는 동수가 더 진실돼. 난 그래서 그 사람이 하필 동수를 콕 집어서 안 좋게 얘기하는 걸 믿을 수 없는 거고. 그리고 그 사람은 자기가 사람들한테 좋게 인식된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해. 그걸 이용해서 동수를 소외시키는 듯한 의도도 있는 것 같고.&amp;rdquo; 지혜가 추리하듯 말했다.&amp;nbsp;&lt;br /&gt;&lt;br /&gt;철규는 지혜와 대화하면서 자신이 이미 지혜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동수에 대한 열등감 때문인지, 동수에게 느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벽 때문인지, 그 사람이 동수를 모욕한 말들을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난다 하더라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면 된다는 나름대로의 빠져나갈 구멍도 있었기 때문이다.&amp;nbsp;&lt;br /&gt;&lt;br /&gt;한 사람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건 아주 쉽다. 철규 같은 사람과 철규에게 그 말을 전한 그 사람, 이 두 부류만 있으면 된다. 참고로 철규는 배울 만큼 배운 엘리트다. 대학교수다. 이는 누군가의 말을 비판적으로 따져보지고 않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현상은 한 사람의 지식이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성적인 아닌 감정적인 것이라는 말이다.&amp;nbsp;&lt;br /&gt;&lt;br /&gt;놀랍게도 철규는 책도 썼다. 비판적 성찰의 중요성에 관한 에세이집이었다. 철규는 자기와 사적으로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 달리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당신은 철규인가? 아니면 인상 좋은 모습으로 철규에게 동수를 모욕한 그 사람인가? 혹시 지혜인가? 동수는 아닌가?&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in monologue</category>
      <author>가난한선비/과학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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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rtmodel.tistory.com/2223#entry2223comment</comments>
      <pubDate>Fri, 31 Jul 2026 11:21: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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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이 잠시 머물다 간 어느 날의 풍경</title>
      <link>https://rtmodel.tistory.com/2222</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br&gt;&lt;b&gt;신이 잠시 머물다 간 어느 날의 풍경&lt;/b&gt;&lt;br&gt;&lt;br&gt;“정말 지겨워.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밖에 없잖아. 탈출하고 싶어.” &lt;br&gt;&lt;br&gt;통창을 통해 번잡한 시내를 멍하니 바라보다 한 젊은이가 말했다. 옆에서 가만히 뜨개질을 하며 듣고 있던 할머니가 안경을 올리면서 조용히 웃으면서 말씀하셨다.&lt;br&gt;&lt;br&gt;“저게 평화란다. 그토록 바라던 평화.”&lt;br&gt;&lt;br&gt;젊은이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의자를 박차고 문을 확 열어젖힌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대신 할머니의 말은 그때 내 가슴팍에 정확히 꽂혔다. 눈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할 것들에 무뎌질 대로 무뎌진 내 모습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토록 바라던 것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을 얻지 못한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부끄럽던지!&lt;br&gt;&lt;br&gt;대기하는 시간이 다 되어 그 방을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그 할머니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전혀 당황해하지 않으셨다. 마치 처음부터 나에게 말씀하시려고 했던 것처럼. &lt;/p&gt;</description>
      <category>in monologue</category>
      <author>가난한선비/과학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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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9 Jul 2026 21:03:1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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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르페 디엠</title>
      <link>https://rtmodel.tistory.com/2221</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카르페&amp;nbsp;디엠&lt;/b&gt;&lt;br /&gt;&lt;br /&gt;일상의 사소한 감동들이 삶을 반짝이게 한다.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감사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한다. 그 잔열이 긍정적인 마음을 식지 않게 한다. 삶이 버텨지게 한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반면 거대한 일은 성취하는 순간 찰나의 기쁨을 남긴다. 그러나 빠르게 부푼 풍선이 바람 빠지듯 기쁨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나면 그 거대함 만큼의 공허가 깃든다. 성공했으나 실패한 것 같은 그 묘한 기분은 경험한 자만이 아는 역설이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없다가 생겨난 그 공허는 허기를 불러일으킨다. 허기는 욕망으로, 욕망은 더 거대한 일을 갈구하게 만든다. 그에 따른 공허 역시 거대해질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그래서 소중한 것들을 많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멈추지 못한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중독이란 조절 능력을 벗어난 상태에서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현상을 뜻한다. 중단하고 싶고 해로운 것도 알지만 욕망의 크기가 너무 커서 통제와 중단이 불가능한 상태다. 거대한 것들이 중독을 동반한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사소한 것들의 잔열을 느끼고 있는가. 카르페 디엠은 이 잔열을 얼마나 느끼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in monologue</category>
      <author>가난한선비/과학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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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rtmodel.tistory.com/2221#entry2221comment</comments>
      <pubDate>Tue, 28 Jul 2026 13:51: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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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장강명 저, &amp;lsquo;재수사&amp;rsquo;를 읽고</title>
      <link>https://rtmodel.tistory.com/2220</link>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Left&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스크린샷 2026-07-27 오후 2.35.14.png&quot; data-origin-width=&quot;2066&quot; data-origin-height=&quot;149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qjGLI/dJMcadCKvKs/UAb6kgf3xUbCkKXytiUVV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qjGLI/dJMcadCKvKs/UAb6kgf3xUbCkKXytiUVV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qjGLI/dJMcadCKvKs/UAb6kgf3xUbCkKXytiUVV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qjGLI%2FdJMcadCKvKs%2FUAb6kgf3xUbCkKXytiUVV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2066&quot; height=&quot;1496&quot; data-filename=&quot;스크린샷 2026-07-27 오후 2.35.14.png&quot; data-origin-width=&quot;2066&quot; data-origin-height=&quot;1496&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김영웅의책과일상 500번 째 감상문입니다. Yay!**&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입체적인&amp;nbsp;빌드업이&amp;nbsp;돋보이는&amp;nbsp;범죄소설&lt;/b&gt;&lt;br /&gt;&lt;br /&gt;&lt;b&gt;장강명&amp;nbsp;저,&amp;nbsp;&amp;lsquo;재수사&amp;rsquo;를&amp;nbsp;읽고&lt;/b&gt;&lt;br /&gt;&lt;br /&gt;&quot;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quot; 도스토옙스키의 &amp;lsquo;지하로부터의 수기&amp;rsquo;를 여는 이 문장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책을 두 번 이상 정독했지만, 주인공의 사상이 듬뿍 담긴 1부를 여전히 나는 다 이해하지 못한다. 2부를 거울삼아 다시 1부로 돌아왔을 때 그나마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였다. 장강명의 &amp;lsquo;재수사&amp;rsquo;를 펼치자마자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amp;lsquo;지하로부터의 수기&amp;rsquo;라는 렌즈를 착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결코 예사롭지 않겠구나, 하고 예감했다.&amp;nbsp;&lt;br /&gt;&lt;br /&gt;설상가상으로 다음 문장이 이어진다. &amp;ldquo;나는 22년 전에 사람을 죽였다. 칼로 가슴을 두 번 찔러 죽였다.&amp;rdquo; 그렇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살인자다. 스스로 자신의 범죄 사실을 고백한다. 따지고 보면 &amp;lsquo;지하로부터의 수기&amp;rsquo; 주인공보다 더 진화한 캐릭터인 것이다. &amp;lsquo;지하로부터의 수기&amp;rsquo; 주인공은 살인을 할 만큼의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찌질하고 허세 저는 캐릭터였고, 자신의 독단적이지만 이론적이고, 대단한 것 같지만 가소로운 사상 속에 갇힌 옹졸한 몽상가 축에 속했다. 그런데 &amp;lsquo;재수사&amp;rsquo;의 주인공은 범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살인을 하고도 태연하게 회고록 따위를 쓰면서 살인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22년이나 지난 현재 시점까지.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나는 소름이 돋았고 긴장이 되었다.&amp;nbsp;&lt;br /&gt;&lt;br /&gt;뿐만 아니다. 세 번째 꼭지에는 도스토옙스키의 &amp;lsquo;죄와 벌&amp;rsquo;도 언급된다. 다음과 같다. &amp;ldquo;나는 라스꼴리니꼬프의 거울상이다. 나는 내가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계획 없이 살인을 저지른 뒤 라스꼴리니꼬프가 그토록 되고 싶어 했던 비범인이 되었다. 원치 않게, 서서히.&amp;rdquo; &amp;lsquo;죄와 벌&amp;rsquo;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이 나폴레옹과 같은 비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이 같은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찍어 살해하고 곧바로 자신이 범인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amp;lsquo;재수사&amp;rsquo;의 주인공은 이를 뒤집은 것이다. 주인공은 라스꼴리니꼬프와는 달리 아무런 살인 계획이 없었다. 테스트해 보고 싶은 사상도 없었다. 그저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뿐이다. 라스꼴리니꼬프가 계획 후 실행으로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여 비극에 휘말렸다면, 이 주인공은 실행을 먼저 해 버린 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비범인이 되어버린(혹은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사상은 객관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저지른 범행을 묵인하고 나름대로의 합리화된 변명이 필요했을 테니).&amp;nbsp;&lt;br /&gt;&lt;br /&gt;라스꼴리니꼬프와 이반 카라마조프를 비교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쓴다. &amp;ldquo;이반 카라마조프는 라스꼴리니꼬프보다도 못했다. 자기가 직접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 때문에 무너졌다.&amp;rdquo; 그리고 한 술 더 뜨는 문장. &amp;ldquo;아마 도스토옙스키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어서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무리 대문호라 한들, 살인자에게도 일상이 찾아온다는 진리를 알 수 없었을 테니.&amp;rdquo; 아&amp;hellip; 말문이 막혔다. 주인공의 거침없는 문장들은 분명히 주인공이 &amp;lsquo;지하로부터의 수기&amp;rsquo; 주인공보다 더 지능적이며 더 계몽되었으며 더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총 백 꼭지로 이뤄진 이 소설의 홀수 꼭지는 주인공의 회고록이고, 짝수 꼭지는 주인공이 22년 전에 범했으나 미제로 남은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는 (결국 주인공을 22년 만에 범인으로 잡는) 형사들의 이야기다. 홀수 꼭지는 비교적 짧은 대신 &amp;lsquo;지하로부터의 수기&amp;rsquo; 1부만큼은 아니지만 난해한 편이고, 짝수 꼭지는 소설 전반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축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장단의 리듬의 타며 읽어가도록 설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그런데 이 리듬을 과연 독자들이 얼마나 잘 타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갈 수 있을지 나는 솔직히 우려가 되었다. 홀수 꼭지를 읽고 다 이해하는 독자는 아마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있다 하더라도 극소수 엘리트 지식인층에 속하지 않았을까. 그걸 다 이해하려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스토옙스키의 &amp;lsquo;지하로부터의 수기&amp;rsquo;뿐 아니라 5대 장편들도 꿰고 있어야 하고, 자본주의, 마르크스주의, 계몽주의 등의 철학 및 사상들의 골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짝수 꼭지를 읽을 땐 장강명 특유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이 듬뿍 담긴 르포르타주식의 소설 맛을 만끽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손에 든 절반 이상의 독자들은 홀수 꼭지는 초반에나 읽다가 중반부터는 대충 읽거나 건너뛰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나도 도스토옙스키 관련 내용은 흥미롭게 읽고 감탄을 했지만, 철학과 사상, 특히 장강명 작가가 만들어낸 &amp;lsquo;사실-상상 복합체&amp;rsquo; 개념을 풀어놓을 땐 자주 집중력을 잃어버렸고 읽었던 곳을 읽은 줄도 모르고 또 읽기도 했다. 책을 읽어 나갈 때 저자가 쓴 텍스트들이 나를 관통하지 않고 계속 미끄러지는 것 같은 느낌은 결코 유쾌하진 않은데, 이런 경험은 이 책을 완독 하기 위한 필수 코스이지 않나 싶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반면 짝수 꼭지는 정말 재밌다. 중간쯤 살짝 긴장이 풀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러니까 범인 색출에 점점 가까이 갈수록 이 책은 페이지 터너가 되었다. 혼자 밥 먹으면서도 계속 페이지를 넘길 만큼. 장르를 따지자면 범죄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 이 소설은 긴장과 스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어떤 부분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눈앞에 그려지기도 했다. 장강명 작가의 필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반전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수상하다 싶었던 인물이 범인으로 드러나 그렇게 놀라진 않았지만 (나름 추리소설로 독서의 세계에 입문했다는 게 도움이 되었던 걸까),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소설의 절정 부분에서 용의자를 체포할 때 이야기가 끝난 줄로 알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 부분에서 오히려 그게 연막이라는 걸 알았지만. 하지만 그렇게 대충 짐작하고 읽어도 정말 끝까지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잘 쓰인 작품인 것이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홀수 꼭지가 없었다면, 그러니까 짝수 꼭지만으로 이 소설이 구성되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뭐 그래도 전체 이야기를 파악하는 덴 큰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랬다간 이 소설의 가치가 현격히 떨어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소설의 절정과 결말까지 가는 빌드업이 약해진다는 것. 이 소설은 범인의 고백부터 시작하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정체가 드러난다. 회고록의 절반 이상은 주인공의 철학 및 사상을 설파하는 내용으로 이뤄지지만, 중간중간 단서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것들을 수집하는 재미와 그것으로 주인공의 정체를 추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쓰인 짝수 꼭지만으로 추리 과정을 거치는 것과 범인의 독백을 도움 받아 추리 과정을 거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외형적인 서사에서 안으로 서서히 좁혀가는 방식과 내면적인 독백에서 점점 자신의 정체를 밝혀가는 방식이 조화롭게 춤을 추며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입체적인 빌드업을 경험하며 나는 쫄깃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다른 하나는 이 작품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것인데, 이 소설이 중후함을 주는 요인은 짝수 꼭지가 아니라 홀수 꼭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회고록은 얼마나 주인공이 비뚤어져 있는지를 알려주는 기능을 충실히 담당하는 동시에 주인공이 그렇게 비뚤어진 이유에 대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주인공이 살인자가 된 것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지 않도록 만드는 역할도 담당한다. 사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시스템의 문제를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장강명 작가의 숨은 메시지가 홀수 꼭지에 많이 담겨 있다는 말도 된다. 주인공의 입을 빌려서 말하는 우리나라의 &amp;lsquo;형사사법시스템&amp;rsquo;과 장강명 작가가 &amp;lsquo;작가의 말&amp;rsquo;에서 말하는, 이 시대 한국 사회가 깊이 내재하고 있는 두 가지 문제인 &amp;lsquo;불안&amp;rsquo;과 &amp;lsquo;공허&amp;rsquo;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정확히 짚고 공론장에 올리기 위해 전직 기자 장강명의 르포르타주식 글쓰기와 소설가 장강명의 허구적 상상력이 만나 쓰인 열매가 바로 이 작품 &amp;lsquo;재수사&amp;rsquo;의 정체성인 것이다.&amp;nbsp;&lt;br /&gt;&lt;br /&gt;그러므로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은 미래의 독자에게 조언을 한다면, 홀수 꼭지에서 난해한 부분이 나와서 이해가 안 가더라도 적어도 맥락만은 파악하겠다는 마음으로 절대 건너뛰지 말고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홀수 꼭지와 짝수 꼭지의 리듬과 화음이 이 소설의 중추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고 충분히 맛보며 작품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묵직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장강명 작가가 이 정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더 써주었으면 한다. 우리나라엔&amp;nbsp;그런&amp;nbsp;작품이&amp;nbsp;필요하다.&lt;br /&gt;&lt;br /&gt;#은행나무&amp;nbsp;&lt;br /&gt;#김영웅의책과일상&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lt;b&gt;장강명 읽기&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 책 한번 써봅시다: &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256&quot;&gt;https://rtmodel.tistory.com/1256&lt;/a&gt;&lt;span&gt;&amp;nbsp;&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2. 먼저 온 미래: &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2023&quot;&gt;https://rtmodel.tistory.com/2023&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3. &lt;span&gt;재수사&lt;/span&gt;: &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2220&quot;&gt;https://rtmodel.tistory.com/2220&lt;/a&gt;&lt;/p&gt;</description>
      <category>김영웅의책과일상</category>
      <author>가난한선비/과학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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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7 Jul 2026 14:40:2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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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헨리 나우웬 저, '제네시 일기'를 읽고</title>
      <link>https://rtmodel.tistory.com/2219</link>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Left&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8993474427_1.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72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wDqYC/dJMcah6p4rn/3zqFpNxKUIiH7iVzVkZNe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wDqYC/dJMcah6p4rn/3zqFpNxKUIiH7iVzVkZNe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wDqYC/dJMcah6p4rn/3zqFpNxKUIiH7iVzVkZNe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wDqYC%2FdJMcah6p4rn%2F3zqFpNxKUIiH7iVzVkZNe1%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721&quot; data-filename=&quot;8993474427_1.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72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일상&amp;nbsp;속&amp;nbsp;수도원&lt;/b&gt;&lt;br /&gt;&lt;br /&gt;&lt;b&gt;헨리&amp;nbsp;나우웬&amp;nbsp;저,&amp;nbsp;'제네시&amp;nbsp;일기'를&amp;nbsp;읽고&lt;/b&gt;&lt;br /&gt;&lt;br /&gt;이 책은 헨리 나우웬이 일곱 달 동안 머문 제네시 수도원에서 거의 매일 써나갔던 기록이다. 그는 1974년 6월부터 12월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제네시 수도원은 기도와 참회, 침묵과 노동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전 세계에 흩어진 약 85개의 가톨릭교회 소속 트라피스트 수도원 중 하나로써 미국 뉴욕주 북부 피파드에 위치한다.&amp;nbsp;&lt;br /&gt;&lt;br /&gt;수도원에 들어가기 전 헨리 나우웬은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성찰한다. &quot;하나님과 더불어 지내기보다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했는지 모른다. 기도에 관한 글을 쓰기에 바빠서 기도할 여유가 없었는지 모른다. 주님의 사랑보다 인간의 칭찬에 관심이 많았는지 모른다. 거룩한 언약에 기대어 자유를 누리기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기대에 얽매인 죄수 신세로 전락했는지 모른다.&quot; 그는 삶에서 뒤로 물러서야 할 때가 되었다고 쓴다. 영적으로 갈급한 상태임을 느꼈던 것 같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그러던 어느 날, 여행 도중 잠시 들린 켄터키 주에 위치한 겟세마니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우연찮게 존 유드 신부와 만나게 된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의 축복이었다. 헨리 나우웬은 존 유드로부터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뛰어난 통찰력과 따뜻한 마음을 갖춘 영혼의 안내자'로서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그 후 유럽에서 3년간 머물던 시기에 존 유드 신부가 제네시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렇잖아도 삶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탓에 그는 짧은 기간이라도 좋으니 존 유드 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단기수도사로 생활할 수 있는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존 유드 원장으로부터 예외적인 상황이지만 일곱 달 동안 수도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헨리 나우웬에게는 예기치 못한 축복이었을 것이다.&amp;nbsp;&lt;br /&gt;&lt;br /&gt;일기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을 다 읽는 데에는 약 1년이 걸렸다. 정작 텍스트를 읽는 시간을 다 합치면 10시간 정도 되겠지만, 한 번에 읽지 않고 책상 옆에 항상 놓아두고 일부러 조금씩 천천히 읽었다. 누군가의 일기를 단숨에 흡입해 버리는 건, 그것도 영성이 느껴지는 텍스트를 그런 식으로 대우한다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 나가며 밑줄을 그은 부분이 많았다. 헨리 나우웬의 수도원 경험담 정도의 내용이었다면 아마도 이 책은 그리 가치가 높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경험담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삶 전반에 걸친 근원적인 질문들을 다시 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뒤돌아보며 솔직하게 답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시공을 초월하여 언젠간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할 물음들을 하나씩 마음에 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얼마나 육신에 치우친 삶을 살고 있었는지, 얼마나 가식적으로, 이중적으로, 위선적으로 살아왔는지를 정직하게 뒤돌아 볼 수 있었다. 시끄럽던 내 안의 소리들이 잠잠해지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가질 수 있었다. 회개하는 마음이 되었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을 다시 다잡는 시간이 되었다. 동시에 이 책에는 헨리 나우웬이라는 영성가 역시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과정을 겪어나가는 모습이, 한 인간의 모습이 솔직 담백하게 담겨 있어 은근한 위로도 받을 수 있었다. 정도가 조금씩 다를 뿐 아마 진지한 모든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읽고&amp;nbsp;한동안&amp;nbsp;멈춰야&amp;nbsp;했던&amp;nbsp;문장들을&amp;nbsp;추려보았다.&amp;nbsp;나의&amp;nbsp;반응도&amp;nbsp;짧게&amp;nbsp;덧붙인다.&lt;br /&gt;&lt;br /&gt;&lt;b&gt;1.&amp;nbsp;&quot;영적인&amp;nbsp;삶에&amp;nbsp;관한&amp;nbsp;책을&amp;nbsp;읽는&amp;nbsp;건&amp;nbsp;좋아하면서도&amp;nbsp;실제로&amp;nbsp;그런&amp;nbsp;생활을&amp;nbsp;하려&amp;nbsp;들지&amp;nbsp;않는&amp;nbsp;까닭은&amp;nbsp;무엇인가?&quot;&lt;/b&gt;&lt;br /&gt;&amp;gt;&amp;gt;&amp;gt; 헨리 나우웬이라는 위대한 영성가도 이런 질문을 한다는 사실로부터 의외의 위로와 함께 나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다. 위선을 가장하여 영적이고 선한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lt;b&gt;2.&amp;nbsp;&quot;가장&amp;nbsp;신령해&amp;nbsp;보이는&amp;nbsp;행동들조차도&amp;nbsp;허영심에&amp;nbsp;오염될&amp;nbsp;가능성이&amp;nbsp;있음을&amp;nbsp;점점&amp;nbsp;더&amp;nbsp;깊이&amp;nbsp;인식하게&amp;nbsp;되었다.&quot;&lt;/b&gt;&lt;br /&gt;&amp;gt;&amp;gt;&amp;gt; 역시 위선에 관련된 문장이다. 헨리 나우웬의 성찰이 예리하고 깊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성경구절도 생각이 났다. 두 주인을 섬기면서 마치 아닌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지혜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 세대가 두렵다는 생각도.&amp;nbsp;&lt;br /&gt;&lt;br /&gt;&lt;b&gt;3. &quot;육체노동은 환상을 벗겨낸다. 내 벌거벗은 실체와 무기력함, 유한성, 연약함 따위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 흥미롭고, 신나며, 정신을 쏙 빼놓은 만한 활동들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따분한 단순작업은 무방비상태의 밑바닥을 공개해서 더 연약한 심령을 갖게 한다. 이 새로운 연약함이 두려움이나 분노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마음을 활짝 열도록 이끌어주길 소망하며 기도한다.&quot;&amp;nbsp;&lt;/b&gt;&lt;br /&gt;&amp;gt;&amp;gt;&amp;gt; 제네시 수도원에서 헨리 나우웬이 일곱 달 동안 실행했던 루틴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육체노동이었다. 그는 빵 만드는 작업과 암석을 채취하고 나르는 작업을 번갈아 가며 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글을 쓰고 상담하는 일로 언제나 바빴던 그가 노동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서툰 손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낯설지만 반갑게 느껴졌다. 그가 느꼈던 감각이 저 문장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lt;b&gt;4. &quot;적잖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는 사이에 내 삶에서 침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었다. 침묵이 사라져 간 곳에 내면이 오염되었다는 감각이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어째서 자꾸 지저분하고, 찜찜하고, 불순한 느낌이 드는지 몰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침묵의 결핍이 주원인이라는 걸 또렷이 알 수 있었다.&quot;&amp;nbsp;&lt;/b&gt;&lt;br /&gt;&amp;gt;&amp;gt;&amp;gt; 침묵의 결핍이 지금 현대인의 삶에서 얼마나 부재했는지, 그러면서도 감히 거룩한 척, 믿음 좋은 척, 괜찮은 척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불필요한 말과 생각들로 나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도 오염시켰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lt;b&gt;5.&amp;nbsp;&quot;가난한&amp;nbsp;삶을&amp;nbsp;살려는&amp;nbsp;일정한&amp;nbsp;노력&amp;nbsp;없이&amp;nbsp;진실한&amp;nbsp;크리스천을&amp;nbsp;자부한다는&amp;nbsp;건&amp;nbsp;천부당만부당한&amp;nbsp;얘기다.&quot;&lt;/b&gt;&lt;br /&gt;&amp;gt;&amp;gt;&amp;gt;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청빈해야 하느냐,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가난해야 하느냐, 하는 말들이 한때 유행이었다는 걸 기억한다. 그때에도 나는 그 무리에 동조하지 않았다. 가난한 삶을 살려는 일정한 노력은 정말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렇게 한다 해도 가난한 이들을 백 퍼센트 공감할 수 없겠지만, 내 입이 기름지고, 내 허리가 비갯덩어리로 출렁대면서 구제를 한다는 게 나로선, 특히 진실성 여부를 따지면,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amp;nbsp;&lt;br /&gt;&lt;br /&gt;&lt;b&gt;6. &quot;비가 아름답지 않나요? 어째서 다들 비를 피하려고만 할까요? 비에 푹 젖어야 할 순간에도 왜 햇살만을 원하는 걸까요? 자녀들이 은혜와 사랑에 푹 빠지길 하나님은 바라세요. 이처럼 다채로운 경로를 통해서 그분을 느끼고 점점 더 잘 알아갈 수 있다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지금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 가운데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시죠.&quot;&amp;nbsp;&lt;/b&gt;&lt;br /&gt;&amp;gt;&amp;gt;&amp;gt; 허를 찌르는 문장이다. 비를 맞아야 할 때 맞을 줄 아는 것. 비를 내리시는 분도, 햇살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 마치 햇살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것처럼 프레임을 씌우는 건 우리가 하나님을 박스 안에 가두는 행위와 같을 것이다. 우린 모든 것들로부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원하고 편한 방식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amp;nbsp;&lt;br /&gt;&lt;br /&gt;&lt;b&gt;7. &quot;살아오면서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해 늘 거절당하고 고립된 느낌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관심을 가지고 돌봐주는 이를 만난 사람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런 이들에게는 상대방의 보살핌에 진정과 진심이 담겨 있다고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어진 사랑을 받아들이고 의혹과 불신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내면의 확신을 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커다란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quot;&amp;nbsp;&lt;/b&gt;&lt;br /&gt;&amp;gt;&amp;gt;&amp;gt; 그렇다.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갑자기 한없는 사랑을 받게 될 때 의심하게 된다.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내면의 확신, 그것을 위한 믿음의 결단,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이신 예수 이름으로 의인으로 칭해졌다는 사실도 함께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후자로 연결되지 못하고 전자에만 머물면 자기 자신에게 갇힌 신세가 된다. 그건 믿음이 없는 것과 같다. 후자를 고백해야 한다. 가치 없던 자가 가치 있는 자로 옮겨졌다는 고백 말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고백 말이다.&amp;nbsp;&lt;br /&gt;&lt;br /&gt;&lt;b&gt;8. &quot;공동체에 받아들여지고, 실수해도 매서운 비판을 당하지 않으며, 훌륭한 일을 해도 유난히 칭찬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고, 성공이나 실패와 상관없이 한 차원 높은 사랑을 받는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은 물론이고 하나님과 무척 깊게 접촉할 수 있었다.&quot;&amp;nbsp;&lt;/b&gt;&lt;br /&gt;&amp;gt;&amp;gt;&amp;gt; 이게 공동체의 힘이지 않나 싶다. 이런 공동체가 우리의 교회 공동체이길 바라마지 않는다.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 믿음과 신뢰가 가는 공동체, 늘 새로워질 수 있는 공동체 말이다.&amp;nbsp;&lt;br /&gt;&lt;br /&gt;&lt;b&gt;9. &quot;일곱 달을 보낸 뒤에 내가 완전히 달라져서 훨씬 일관되고, 신령하며, 의로우며, 긍휼히 여기며, 온유하고, 유쾌하며, 이해의 폭이 넓은 인간이 되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나는 다시 예전의 삶의 패턴으로 돌아가는 데 몇 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 기억은 단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관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앞장서서 인도해 준다. 온갖 충동과 환상, 비현실성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이 기억은 언제나 헛된 꿈을 몰아내고 정확한 방향을 가리켜 보인다.&quot;&amp;nbsp;&lt;/b&gt;&lt;br /&gt;&amp;gt;&amp;gt;&amp;gt; '맺는 글'에 적힌 문장들이다. 제네시 수도원 생활을 마친 지 반년 남짓한 시기에 쓴 글이다. 그의 솔직하고 정직한 문장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일곱 달 수도원 생활로 인해 바뀐 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그러나 그 기억은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가늠하는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준다는 것. 이 문장을 읽고 문득 우리도 굳이 수도원에 가지 않더라도 수도원 생활의 효과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스마트폰을 단 몇 시간만이라도 내려놓는 것, 단 하루라도 인터넷과 동영상으로부터 훌쩍 떠나 있는 것, 등등의 작은 실천이 그런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잠깐 멈춤의 시간들도 분명 우리의 현재와 미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바빠지고 혼란스러워진 이 시대에 일상 속 수도원 생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헨리 나우웬이 제네시 수도원에서 이 일기를 썼다면, 우리는 우리가 만든 일상 속 수도원 생활 (온라인 디톡스 같은)로부터 우리만의 일기를 쓸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드는 이 시대의 급류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절제하면서 지켜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삶의 작은 습관의 변화가 침묵의 결핍을 채워주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지 않을까 싶다. 성 베네딕트가 말한 대로, 예배의식과 영적인 독서, 그리고 육체노동으로 바로 그 시간을 채워 넣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매일 십 분씩이라도 이러한 일상 속 수도원을 맛보고 그 시간을 지켜내기 위해 애쓸 수 있다면 말이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포이에마&amp;nbsp;&lt;br /&gt;#김영웅의책과일상&amp;nbsp;&lt;br /&gt;&lt;br /&gt;&lt;br /&gt;&lt;/p&gt;</description>
      <category>김영웅의책과일상</category>
      <author>가난한선비/과학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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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5 Jul 2026 18:27: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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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눈이 깊은 사람</title>
      <link>https://rtmodel.tistory.com/2218</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눈이&amp;nbsp;깊은&amp;nbsp;사람&lt;/b&gt;&lt;br /&gt;&lt;br /&gt;독서모임 &amp;rsquo;인생책방&amp;rsquo;과 함께 필립 로스의 &amp;lsquo;에브리맨&amp;lsquo;, 그리고 온라인 독서모임 그믐에서 함께 아툴 가완디의 &amp;lsquo;어떻게 죽을 것인가&amp;lsquo;를 읽고 나름대로의 생각이 정리되었다. 또 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 현재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게 남아 있은 삶은 &amp;lsquo;초연함과 충만함의 중첩을 맘껏 누리는 삶&amp;lsquo;이 되면 좋겠다고.&amp;nbsp;&lt;br /&gt;&lt;br /&gt;초연함이 지혜로운 어른의 시선을 대변한다면, 충만함은 순수한 아이의 시선을 대변한다. 대립되는 것 같은 이 두 시선을 구부려 비록 합일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가능한 많은 중첩을 경험하며 살고 싶다. 선택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작은 일들에는 마치 그 순간이 영원한 것처럼 (슬픈 일엔 슬퍼하고, 기쁜 일엔 기뻐할 수 있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몰입하고, 큰 일들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잘 분별하여 감정적이 되지 않도록, 그래서 흘려보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어쩌면 이런 삶이야말로 니체의 '아모르 파티'의 철학과 맞닿아 있을 것이고, 내가 지향하는 '아이의 눈을 간직한 어른', '눈이 맑은 사람', '눈이 깊은 사람'의 삶의 모습일 것이다.&amp;nbsp;&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in monologue</category>
      <author>가난한선비/과학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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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4 Jul 2026 20:29:2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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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영은 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title>
      <link>https://rtmodel.tistory.com/2217</link>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Left&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8952211650_1.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772&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jlkYU/dJMcaic9MYR/4Ek7sWrqf7sBkSkJ3h5UD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jlkYU/dJMcaic9MYR/4Ek7sWrqf7sBkSkJ3h5UD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jlkYU/dJMcaic9MYR/4Ek7sWrqf7sBkSkJ3h5UD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jlkYU%2FdJMcaic9MYR%2F4Ek7sWrqf7sBkSkJ3h5UD0%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772&quot; data-filename=&quot;8952211650_1.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772&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인간&amp;nbsp;도스토옙스키&lt;/b&gt;&lt;br /&gt;&lt;br /&gt;&lt;b&gt;박영은&amp;nbsp;저,&amp;nbsp;'도스토예프스키'를&amp;nbsp;읽고&lt;/b&gt;&lt;br /&gt;&lt;br /&gt;책을 다 읽고 잠시 상념에 잠겼다. 도스토옙스키라는 이름이 내 인생에 남긴 많은 흔적들에 대해 생각했다. 독서의 마무리로 감상문을 작성하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되었다. 기록을 훑어보니 내가 도스토옙스키를 제대로 읽기 시작했던 시기는 2019년 3월이다. 지금이 2026년 7월이니 7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동안 나는 한국어로 번역된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거의 다 읽었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단편을 제외한 중장편 소설은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독서모임과 함께 다시 읽었으며, 그 기록들을 독서모임과 같은 이름을 가진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내게 이 7년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였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러시아 문학 전공, 그중에서도 도스토옙스키 전공자가 아닌 순수한 독자로서는 아마도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축에 속하지 않나 싶다. 생각해 보면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한 번도 하기 힘든 도스토옙스키라는 거대한 산맥을 두 번이나 종주하다니 말이다. 나의 오십 년 인생에서도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고 나는 이를 영광으로 생각한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몇 달 전 페친 덕분에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망설임 없이 구입했지만 한동안 책장에서 대기하다가 어젯밤에 내 손에 들렸다. 박영은 교수가 재해석하여 쓴 &amp;lsquo;도스토옙스키 소개서&amp;rsquo;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한 책이었다. 손에 잡힐 만한 판형에 백 페이지 채 되지 않은 분량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의 작품을 하나 이상 읽어 보고 그에 대해 잘 알려진 정보들을 대충이라도 섭렵한 독자라면 별 어려움 없이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도 대중에게 잘 알려진 것들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제대로 만나볼 의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애피타이저 정도로 여기고 먼저 읽어 봐도 좋을 듯하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아쉽게도 저자의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재해석에서 나는 고유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도 내가 이미 이런저런 도스토옙스키 작품 이외의 2차 자료들도 섭렵한 탓일 테다. 각 작품에 대한 저자만의 해석이 간간이 적혀 있었지만 너무 짧기도 하고 모두 잘 알려진 것들이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저자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 책의 의의를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아닌 인간 도스토옙스키를 조명하여 소개하는 거라고 책 서두에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의 삶을 그의 작품과 함께 다시 한번 훑어보는 시간은 내게 유익했다. 이런 책이 몇 권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양한 문체로, 다양한 관점으로 도스토옙스키를 조망하는 글들은 언제나 환영이다. 출간이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amp;nbsp; &amp;nbsp;&lt;br /&gt;&lt;br /&gt;#살림&lt;br /&gt;#김영웅의책과일상&amp;nbsp;&lt;br /&gt;&lt;br /&gt;*&amp;nbsp;도스토옙스키&amp;nbsp;처음&amp;nbsp;읽기&lt;br /&gt;1.&amp;nbsp;죄와&amp;nbsp;벌:&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2.&amp;nbsp;백치:&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3.&amp;nbsp;악령:&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4.&amp;nbsp;미성년:&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5.&amp;nbsp;카라마조프&amp;nbsp;가의&amp;nbsp;형제들:&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6.&amp;nbsp;죽음의&amp;nbsp;집의&amp;nbsp;기록:&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7.&amp;nbsp;가난한&amp;nbsp;사람들:&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8.&amp;nbsp;분신:&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9.&amp;nbsp;지하로부터의&amp;nbsp;수기:&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10.&amp;nbsp;노름꾼:&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11.&amp;nbsp;도스토옙스키&amp;nbsp;(by&amp;nbsp;에두아르트&amp;nbsp;투르나이젠):&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077&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077&lt;/a&gt;&lt;br /&gt;12.&amp;nbsp;도스토예프스키,&amp;nbsp;돈을&amp;nbsp;위해&amp;nbsp;펜을&amp;nbsp;들다&amp;nbsp;(by&amp;nbsp;석영중):&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177&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177&lt;/a&gt;&lt;br /&gt;13.&amp;nbsp;아름다움이&amp;nbsp;세상을&amp;nbsp;구원할&amp;nbsp;것이다&amp;nbsp;(by&amp;nbsp;이병훈):&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194&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194&lt;/a&gt;&lt;br /&gt;14.&amp;nbsp;매핑&amp;nbsp;도스토옙스키&amp;nbsp;(by&amp;nbsp;석영중):&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358&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358&lt;/a&gt;&lt;br /&gt;15.&amp;nbsp;도스토옙스키의&amp;nbsp;명장면&amp;nbsp;200&amp;nbsp;(by&amp;nbsp;석영중):&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362&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362&lt;/a&gt;&lt;br /&gt;16.&amp;nbsp;난데없이&amp;nbsp;도스토옙스키&amp;nbsp;(by&amp;nbsp;도제희):&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388&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388&lt;/a&gt;&lt;br /&gt;17.&amp;nbsp;스쩨빤치꼬보&amp;nbsp;마을&amp;nbsp;사람들:&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18.&amp;nbsp;상처받은&amp;nbsp;사람들:&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19.&amp;nbsp;악몽&amp;nbsp;같은&amp;nbsp;이야기:&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20.&amp;nbsp;악어:&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21.&amp;nbsp;인간&amp;nbsp;만세!&amp;nbsp;(by&amp;nbsp;석영중):&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488&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488&lt;/a&gt;&lt;br /&gt;22.&amp;nbsp;도스토옙스키를&amp;nbsp;쓰다&amp;nbsp;(by&amp;nbsp;슈테판&amp;nbsp;츠바이크):&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625&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625&lt;/a&gt;&lt;br /&gt;23.&amp;nbsp;도스토옙스키가&amp;nbsp;사랑한&amp;nbsp;그림들&amp;nbsp;(by&amp;nbsp;조주관):&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644&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644&lt;/a&gt;&lt;br /&gt;24.&amp;nbsp;백야:&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25.&amp;nbsp;뽈준꼬프:&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702&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702&lt;/a&gt;&lt;br /&gt;26.&amp;nbsp;정직한&amp;nbsp;도둑:&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703&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703&lt;/a&gt;&lt;br /&gt;27.&amp;nbsp;크리스마스&amp;nbsp;트리와&amp;nbsp;결혼식:&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704&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704&lt;/a&gt;&lt;br /&gt;28.&amp;nbsp;꼬마&amp;nbsp;영웅:&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706&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706&lt;/a&gt;&lt;br /&gt;29.&amp;nbsp;약한&amp;nbsp;마음:&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30.&amp;nbsp;남의&amp;nbsp;아내와&amp;nbsp;침대&amp;nbsp;밑&amp;nbsp;남편:&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711&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711&lt;/a&gt;&lt;br /&gt;31.&amp;nbsp;농부&amp;nbsp;마레이:&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717&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717&lt;/a&gt;&lt;br /&gt;32.&amp;nbsp;보보끄:&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719&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719&lt;/a&gt;&lt;br /&gt;33.&amp;nbsp;백&amp;nbsp;살의&amp;nbsp;노파:&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721&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721&lt;/a&gt;&lt;br /&gt;34.&amp;nbsp;우스운&amp;nbsp;사람의&amp;nbsp;꿈:&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722&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722&lt;/a&gt;&lt;br /&gt;35.&amp;nbsp;온순한&amp;nbsp;여자:&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723&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723&lt;/a&gt;&lt;br /&gt;36.&amp;nbsp;예수의&amp;nbsp;크리스마스&amp;nbsp;트리에&amp;nbsp;초대된&amp;nbsp;아이:&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724&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724&lt;/a&gt;&lt;br /&gt;37.&amp;nbsp;영원한&amp;nbsp;남편:&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823&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823&lt;/a&gt;&lt;br /&gt;38.&amp;nbsp;아홉&amp;nbsp;통의&amp;nbsp;편지로&amp;nbsp;된&amp;nbsp;소설:&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825&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825&lt;/a&gt;&lt;br /&gt;39.&amp;nbsp;쁘로하르친&amp;nbsp;씨:&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827&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827&lt;/a&gt;&lt;br /&gt;40.&amp;nbsp;도스토옙스키의&amp;nbsp;철도,&amp;nbsp;칼,&amp;nbsp;그림&amp;nbsp;(by&amp;nbsp;석영중):&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867&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867&lt;/a&gt;&lt;br /&gt;41.&amp;nbsp;여주인:&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917&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917&lt;/a&gt;&lt;br /&gt;42.&amp;nbsp;뻬쩨르부르그&amp;nbsp;연대기:&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930&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930&lt;/a&gt;&lt;br /&gt;43.&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함께한&amp;nbsp;나날들&amp;nbsp;(by&amp;nbsp;안나&amp;nbsp;도스토옙스카야):&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995&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995&lt;/a&gt;&lt;br /&gt;44.&amp;nbsp;도스토옙스키&amp;nbsp;번역&amp;nbsp;일기&amp;nbsp;(by&amp;nbsp;김정아):&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2175&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2175&lt;/a&gt;&lt;br /&gt;45.&amp;nbsp;도스토예프스키&amp;nbsp;(by&amp;nbsp;박영은):&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2217&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2217&lt;/a&gt;&lt;br /&gt;&lt;br /&gt;*&amp;nbsp;도스토옙스키&amp;nbsp;다시&amp;nbsp;읽기&lt;br /&gt;1.&amp;nbsp;가난한&amp;nbsp;사람들:&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2.&amp;nbsp;분신:&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3.&amp;nbsp;스쩨빤치꼬보&amp;nbsp;마을&amp;nbsp;사람들:&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4.&amp;nbsp;상처받은&amp;nbsp;사람들:&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5.&amp;nbsp;죽음의&amp;nbsp;집의&amp;nbsp;기록:&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6.&amp;nbsp;지하로부터의&amp;nbsp;수기:&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7.&amp;nbsp;죄와&amp;nbsp;벌:&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8.&amp;nbsp;노름꾼:&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9.&amp;nbsp;백치:&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10.&amp;nbsp;악령:&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11.&amp;nbsp;미성년:&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12.&amp;nbsp;카라마조프&amp;nbsp;가의&amp;nbsp;형제들:&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에&amp;nbsp;수록&lt;br /&gt;&lt;br /&gt;*&amp;nbsp;도스토옙스키&amp;nbsp;관련&amp;nbsp;저서&lt;br /&gt;1.&amp;nbsp;닮은&amp;nbsp;듯&amp;nbsp;다른&amp;nbsp;우리:&amp;nbsp;&lt;a href=&quot;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4551437&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4551437&lt;/a&gt;&lt;br /&gt;2.&amp;nbsp;도스토옙스키와&amp;nbsp;저녁&amp;nbsp;식사를:&amp;nbsp;&lt;a href=&quot;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616751&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616751&lt;/a&gt;&lt;/p&gt;</description>
      <category>김영웅의책과일상</category>
      <author>가난한선비/과학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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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3 Jul 2026 12:27:5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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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무라카미 하루키 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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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Left&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8972757713_2.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71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5uo0F/dJMcaic9bU3/4IszwhkKPrgkCwCIqk5t0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5uo0F/dJMcaic9bU3/4IszwhkKPrgkCwCIqk5t0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5uo0F/dJMcaic9bU3/4IszwhkKPrgkCwCIqk5t0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5uo0F%2FdJMcaic9bU3%2F4IszwhkKPrgkCwCIqk5t0k%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713&quot; data-filename=&quot;8972757713_2.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71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전업&amp;nbsp;소설가&amp;nbsp;하루키의&amp;nbsp;철학&lt;/b&gt;&lt;br /&gt;&lt;br /&gt;&lt;b&gt;무라카미&amp;nbsp;하루키&amp;nbsp;저,&amp;nbsp;'직업으로서의&amp;nbsp;소설가'를&amp;nbsp;읽고&lt;/b&gt;&lt;br /&gt;&lt;br /&gt;이 책을 읽기 전이라면 제목이 '소설가라는 직업'이 아니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전자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일반론을 떠올리게 하지만, 후자는 하루키의 철학이 그대로 담긴, 요컨대 &amp;lsquo;전업 소설가&amp;rsquo;에 대한 하루키의 특수론 내지는 고유론으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둘의 차이를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이 책을 집어든 것도 전자의 내용이리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책은 하루키 냄새가 풀풀 나는 책이었다. 하루키라는 사람이 소설가가 되었던 과정(한 마디로 운명이라는 거다. 그 운명 이후 찾아온 운, 그 운 덕분에 생겨난 자기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은 소명의식으로 이어진다), 소설가로 수십 년을 지속하며 작품을 써낼 수 있었던 이유, 그 비법(이라 할 것도 딱히 없지만)들이 편안하고 친절한 문장으로 쓰여있는 책이었다. 그러므로 막연히 소설가가 어떤 직업인지에 궁금하고 그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혹은 하루키라는 특정 소설가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이 책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말을 달리하면, 이 책은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하루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필독서가 될 수 있고, 어쩌다 한두 번 소설을 써본 자가 아니라 소설 쓰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여기고 그 고독한 길을 걸어가는 혹은 걸어갈 이들에게도 필독서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amp;nbsp;&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이 책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저자인 하루키는 인생 대부분에 대해서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유보적이거나 포용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사실 이런 입장은 그의 작품 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물들의 성향을 보면 우유부단하게 보일 정도로 특별히 강한 캐릭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고 거의 확신하는 소설가에 대한 철학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amp;ldquo;자기만의 길을 찾아내고 누가 뭐라고 해도 당당하게 그 길을 걸어라&amp;rdquo;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한 편으론 자기 계발서에서나 나옴직한 결론과 비슷해서 다소 맥이 풀리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론 소설가가 되고 소설가로 살아간다는 것도 어떤 특별한 샛길이 있는 게 아니라 소명의식을 가지고 정직하고 성실한 자기 관리를 통해 묵묵히 고독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는 빛바랜 진리를 다시 빛나게 해 주어 소설가를 꿈꾸거나 이미 소설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감동과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이 두 가지를 모두 느꼈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읽고 나면 내가 뭘 읽었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워낙 필력이 좋아 하루키의 글은 술술 읽히는 마력이 있다. 특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식의 어투가 빈번하게 사용되는데, 이것은 그의 철학(신중한, 혹은 우유부단한, 혹은 포용적인)을 대변해 주면서도, 한 편으론 &amp;lsquo;그래서 어쩌란 말이지?&amp;rsquo;하는 결론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나는 읽기 전과 후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다. 결국 이 책은 전업 소설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운명과 소명의식, 그리고 철저한 자기 관리로 이뤄진다는 말을 에둘러서 표현하기 위해 길게 늘어 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뒤로 갈수록 집중력을 잃어서 대충 읽기도 했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이런 생각을 했다. 하루키가 저렇게 자기만의 길,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대부분과 다른 길을 당당하게 뚜벅뚜벅 걸어가며 성공한 사람(한 마디로 비주류로서)이기 때문에 이런 책도 쓸 수 있었겠구나 하는. 그리고 그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면 결코 출간되지 못했을, 아니 써지지도 않았을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또한 이런 생각도 했다. 역시 작가는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 타고나야 하는 거구나, 운명이구나 하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영원히 증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amp;nbsp;&amp;nbsp;&lt;br /&gt;&lt;br /&gt;하루키의 독고다이식의 방법은 성공으로 열매를 맺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해도 하루키와 같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전업 작가로 살고 싶다 하더라도 생계유지가 안 되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재능을 가지고, 운명을 느꼈다 하더라도 입에 풀칠을 하지 못하거나 가족을 먹여 살릴 능력을 가지지 못하면 하릴없이 소설만 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실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루키가 하루키가 된 것은 재능과 운명과 소명의식과 자기 관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썼지만, 그것은 성공이라는 가시적인 열매 위에서 쓰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메시지를 일반화시킨다거나 맥락 없이 적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무리일 것이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현대문학&amp;nbsp;&lt;br /&gt;#김영웅의책과일상&amp;nbsp;&lt;br /&gt;&lt;br /&gt;*&amp;nbsp;하루키&amp;nbsp;읽기&lt;br /&gt;1.&amp;nbsp;노르웨이의&amp;nbsp;숲:&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655&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655&lt;/a&gt;&lt;br /&gt;2.&amp;nbsp;색채가&amp;nbsp;없는&amp;nbsp;다자키&amp;nbsp;쓰쿠루와&amp;nbsp;그가&amp;nbsp;순례를&amp;nbsp;떠난&amp;nbsp;해:&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820&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820&lt;/a&gt;&lt;br /&gt;3.&amp;nbsp;양을&amp;nbsp;쫓는&amp;nbsp;모험:&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211&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211&lt;/a&gt;&lt;br /&gt;4.&amp;nbsp;도시와&amp;nbsp;그&amp;nbsp;불확실한&amp;nbsp;벽:&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913&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913&lt;/a&gt;&lt;br /&gt;5.&amp;nbsp;일인칭&amp;nbsp;단수:&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1957&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1957&lt;/a&gt;&lt;br /&gt;6.&amp;nbsp;달리기를&amp;nbsp;말할&amp;nbsp;때&amp;nbsp;내가&amp;nbsp;하고&amp;nbsp;싶은&amp;nbsp;이야기:&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2163&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2163&lt;/a&gt;&lt;br /&gt;7.&amp;nbsp;직업으로서의&amp;nbsp;소설가:&amp;nbsp;&lt;a href=&quot;https://rtmodel.tistory.com/2216&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amp;nbsp;noreferrer&quot;&gt;https://rtmodel.tistory.com/2216&lt;/a&gt;&lt;/p&gt;</description>
      <category>김영웅의책과일상</category>
      <author>가난한선비/과학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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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2 Jul 2026 15:31:1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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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툴 가완디 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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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Left&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8960514799_1.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74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0j7Hi/dJMcafm8bww/BR1pk9JY1mZgSkCDhMDT2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0j7Hi/dJMcafm8bww/BR1pk9JY1mZgSkCDhMDT2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0j7Hi/dJMcafm8bww/BR1pk9JY1mZgSkCDhMDT2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0j7Hi%2FdJMcafm8bww%2FBR1pk9JY1mZgSkCDhMDT20%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741&quot; data-filename=&quot;8960514799_1.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74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좋은&amp;nbsp;죽음을&amp;nbsp;위한&amp;nbsp;좋은&amp;nbsp;삶&lt;/b&gt;&lt;br /&gt;&lt;br /&gt;&lt;b&gt;아툴&amp;nbsp;가완디&amp;nbsp;저,&amp;nbsp;'어떻게&amp;nbsp;죽을&amp;nbsp;것인가'를&amp;nbsp;읽고&lt;/b&gt;&lt;br /&gt;&lt;br /&gt;나는 이율배반적이다. 나의 죽음과 타자의 죽음을 대하는 입장이 다르다. 모순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나만 이런 건지. 혹시 당신도 그렇지 않은지. 나는 이런 이중성이 나의 한계인지, 인간의 한계인지도 궁금하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아마도 모든 죽음은 단 한 번밖에 없는데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죽을 뻔한 경험이 아닌, '죽었던' 경험. 이것은 인간의 영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amp;nbsp;&amp;nbsp;&lt;br /&gt;&lt;br /&gt;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말은 곧 모든 죽음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말과 같다. 그러니 인간은 자신의 한 번뿐인 죽음 앞에서 서툴 수밖에. 그렇다면 타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죽음에 대해 무지했고 나완 상관없는 일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경솔하게도 죽음을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혹은 신학적으로 낭만화하고 있었다는 점도 솔직히 인정해야 했다. 이 책 덕분에 죽음이 조금은 더 형체를 갖추게 되었다. 사고로 인한 즉사가 아닌 모든 죽음은 의학적이고 생물학적인 부분, 즉 노화와 노쇠 과정(대부분은 고통을 동반한, 그리고 정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의학적 도움을 받으며)을 겪게 된 이후에 찾아온다는 진실을 더 이상 간과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었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이 책은 여덟 꼭지의 소제목만 진지하게 읽어 봐도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기분과 함께 그 무게를 실감할 수 있다.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로 시작해서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으로 끝나는 책이라니. 저자는 의사다. 가족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함께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여정에 관련된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며 현대 의학이 어떻게 그 여정에 관여하고 있는지와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되짚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로 독자를 공론장으로 초대한다. 동시에, 의사이자 한 사람, 이 두 정체성이 연합해 나가는 과정을 개인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독자는 자연스레 현대 의학을 대표하는 저자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치료, 간호, 보살핌을 받는 환자(대부분은 잠정적 환자)인 동시에 한 사람으로서 저자의 글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나의 이율배반적인 입장도 어찌 보면 이 두 정체성 사이의 괴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책 덕분에 그 선이 조금은 흐려진 듯한 기분이다.&amp;nbsp; &amp;nbsp;&lt;br /&gt;&lt;br /&gt;언제부터 죽음을 의학의 실패 내지는 결함으로 이해하게 되었을까? 현대 의학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수명은 늘어났다.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얘기도 아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60세 남짓이었다. 지금은 80세를 넘겼다. 90세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늘어난 건 유년이나 청년시절이 아니라 노년이다. 게다가 노화는 예전보다 더 이른 나이에 시작되고 있다. 잘 먹고 잘 살게 되면서 생겨난, 지극히 아이러니한 부작용이다. 덕분에 죽음은 늦춰졌지만 죽어가는 기간은 늘어났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기간의 주인공으로 급부상하게 된 존재가 현대 의학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다'라는 참인 명제를 마치 거짓으로 뒤집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마치 어떻게 손만 잘 쓰면 죽는 시기를 원하는 만큼 최대한 늦출 수 있는 것처럼 현대 의학은 죽음을 실험대 위에 올렸고 인간다움이라는 가치를 거세시켜 버렸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가족을 포함한 지인의 죽음을 단 몇 시간만이라도 연장시키려고 애쓰게 되었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인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거나 온전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누명 아닌 누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20세기말부터 시작되어, 특히 선진국에서는, 상식이 될 정도로 편만해진 기류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지금은 이런 기류를 비판적으로 보는 부류가 급속하게 많아졌다. 돈과 현대 의학의 결탁이 만들어낸 괴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조력사, 안락사라는 개념이 등장하여 법제화되기 시작한 것도 이 분위기의 일환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간성이 소거된 의사의 관점이 아닌 인간다움을 간직한 인간의 관점을 되살리는 시도를 통해 좋은 죽음과 그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여정을 좋은 삶으로 마무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짚어낸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저자는 단순한 생명 연장이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없음을 명백하게 밝힌다. 인간은 스스로가 혼자 설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지는 노년의 시기에도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이 보장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의학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건강 상의 안전이 결코 인간의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도 충실하게 입증해 낸다. 인간은 단지 숨을 쉬고 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어떤 대의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위해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노쇠의 시기에 도둑처럼 찾아오는 무료함과 외로움과 무력감을 극복하는 해결책은 현대 의학이 풀 수 없는 영역임을 반박할 수 없게 밝혀낸다. 인간은 몸만 가진 게 아니라 마음과 영혼도 함께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은 후자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쓴다. &quot;의학적인 의사 결정은 크게 실패를 했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피하느라 환자들에게 오히려 해를 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quot; 허를 찌르는 말이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그리고 저자는 하기 어려운 질문에 봉착하고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쓴다. &quot;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면 종종 순수한 의학적 충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고치려 애써야 할 때는 언제이고, 그러지 말아야 할 때는 언제일까?&quot;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어떤 전율을 느꼈다. 현대 의학을 대표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하기 힘든 말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 책의 투명성과 객관성, 그리고 진정성을 반증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도 꼭 읽어야 하는 책임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며 느낀 소회와 함께 앞에서 다뤘던 주제들을 몸소 체감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이 책의 꽃이라고 보는데,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의사라는 정체성과 한 인간이라는 정체성이 서로 연합을 이루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는 이론과 실제의 연합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차가운 메스가 떠오르는 기계 같은 의술이 아닌 따뜻한 인간다움이 묻어나는, 그래서 사람 살리는 본래 목적에 충실한 의술의 중요성을 소리 없이 강하게 외치는 완벽한 마무리로 보였다. 그렇다. 저자가 쓴 대로 &quot;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quot;&amp;nbsp;&lt;br /&gt;&lt;br /&gt;현대 의학의 공급자와 수혜자(잠정적 수혜자 포함) 할 것 없이 이 책의 중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모든 사람에게 강하게 울려 퍼질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사고로 인한 즉사가 아닌 한 누구나 노화와 노쇠를 겪으며 고통을 감내하며 몸과 마음이 체계적으로 하나둘씩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quot;아름다운 죽음은 없다. 그러나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quot; 책 뒤표지에 쓰인 문장이다. 수십 번 읽어도 여운이 남는다. 우리 모두가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다. 뒤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인 그믐을 통해 (특히 교모세포종 재발로 인해 두 번째 수술을 막 마치고 회복 중인 김새섬님과 남편인 장맥주님이 이끄시는 '웰다잉 오디세이 2026'을 통해) 알게 되고, 함께 읽게 되고, 함께 나누게 되어 더욱 기억에 남을 책이었다. 좋은 책은 나눠야 하는 법. 나는 어떻게든 이 책을 널리 알릴 생각이다. 나의 이 짧은 글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amp;nbsp;&amp;nbsp;&lt;br /&gt;&lt;br /&gt;#부키&lt;br /&gt;#김영웅의책과일상&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김영웅의책과일상</category>
      <author>가난한선비/과학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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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9 Jul 2026 14:16:2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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