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웅의책과일상

한정원 저,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을 읽고

가난한선비/과학자 2025. 3. 31. 00:35


정갈함과 고요함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고독과 외로움

한정원 저,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을 읽고

두 번째로 만나는 한정원의 에세이다. 정갈한 문장들이 다시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긴다. 시끄러웠던 내 마음도 마침내 고요다.

몸도 마음도 분주한 일정이었다. 부산을 오가는 열차 안에서 가쁜 숨을 돌리기 위해, 벌써 반년간 가방 속에 잠자고 있던 이 책을 꺼내 들었다.

8월 1일을 여는 첫 에세이부터 할 말을 잃었다. 시인의 낯선 문장들은 그림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고, 그 그림에선 오래 묵은 향이 났다. 몸은 낯설지만 마음은 익숙하고 편안한, 오래된 숲의 향이었다. 나는 시인과 함께 숲 속에서 죽비 소리와 시시오도시 소리를 들었다. 사찰에서는 종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소리들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던, 평상시에는 들리지 않던, 고요의 소리들도 들을 수 있었다. 잊고 있던 마음의 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전작 ‘시와 산책’은 휑할 만큼 고적하고 아름다운 에세이였다. 모든 문장이 빛났다. 그러나 나는 그 빛나는 문장들에 묻어있는 고독과 외로움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책 내용이 아닌 저자의 문체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시인 한정원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이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 나는 생각한다.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한 계절‘은 그 생각에 힘을 더 실었다.

정갈한 문장들이 자아내는 고요한 빛이 좋았다. 모든 걸 멈추고 눈을 감아야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고, 큰 숨을 들이마신 뒤에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좋았던 정갈함과 고요함이 지나가고 내 마음엔 휑한 느낌이 남았다. 고독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그 자리를 차지했다.

마지막 느낌이 쓸쓸함이라는 것. 시인 한정원의 에세이가 갖는 위험한 중독성이다. 그러면서 ’시와 산책’까지 다시 책장에서 꺼내드는 나를 나는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지금은, 그냥 그렇게, 나를 내버려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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