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잊고 있던 "행복"할 권리강남순 저,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나를 알고 타자를 알고 세상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사랑하고 끌어안고 가꾸기 위해서 필요한 건 용기다. 그 용기가 발휘된 행복을 저자는, 자크 데리다의 방식을 따라, 인용부호 속에 넣은 "행복"이라 부른다. 행복과 "행복". 전자가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무감각해질 정도로 상투적이고 진부한 의미를 갖는다면, 후자는 그 상투성을 넘어 재개념화 되고 재해석된 진정성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삶에서 추구해야 할 건 행복이 아니라 "행복"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저자가 전작들을 통해 줄곧 이야기해 온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는 삶이다. 타자의 감옥에 갇혀 시대의 조류에 휩..

먼저 진리를 맛본 자의 숙명에 대하여 강유원 저, '철학 고전 강의' 2부를 읽고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시도한 자연학에서 인간학으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진전시켰다고 한다. 그 진전은 '좋음의 이데아'에 관한 논의에서 살펴볼 수 있다. 플라톤의 관점으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 세계에 대한 확실한 앎이 아니라 참으로 좋은 것에 관한 앎이다. 이 앎의 대상이 바로 '좋음의 이데아'이다. 플라톤의 '국가'는 바로 이 '좋음의 이데아'에 관한 탐구를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 동굴의 비유로 보여준다. 참고로 이데아는 초월적이고 불변하는 본질적 세계를 말한다. 태양의 비유에서는 가시계(현실 세계)와 가지계(이데아 세계)를 비유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 보려면, 잘 보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유머헤르만 헤세 저, '황야의 늑대'를 다시 읽고 언젠가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위기에 봉착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문제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게 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문장을 쓰면서 나는 튼튼한 나무와 부드러운 갈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거센 바람에 온몸으로 저항하던 나무는 툭 부러지고 말지만, 온몸을 낮추고 바람을 타는 갈대는 끝내 살아남는 장면이었다. 재미있게도 7년 만에 '황야의 늑대'를 다시 읽고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바로 이 장면이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재독 후 ‘유머’라는 단어가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머’는 ‘유연함’을 연상시켰고, ‘유연함’은 ‘갈대’의 이미지를 소환했기 ..

감상문으로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 책 세계를 만끽하기김성신 저, ‘서평가 되는 법‘을 읽고전문 서평가 김성신이 쓴 이 책의 부제는 ’읽고 쓰는 사람으로 책 세계를 만끽하기 위하여‘이다. 제목인 ‘서평가 되는 법‘과 연결시키면, 부제에서 말하는 읽고 쓰는 사람이란 곧 서평가를 뜻한다. 이 책을 통한 저자의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서평가가 되어 책 세계를 만끽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분량도 적고 쉬운 문체로 써졌기 때문인지 수영 강습받는 아들을 한 시간 동안 기다리며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저자의 메시지에 대체적으로 공감을 하면서도 서평 혹은 서평가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 전적인 동의는 할 수 없었다. 저자처럼 나 역시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동영상이 ..

반골 기질이 쓴 '평생 단 한 번 쓸 수 있는 책'김영하 저, '단 한 번의 삶'을 읽고반골 기질 때문일까? 천성적인 아웃사이더 성향 때문일까? 내로라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책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는 유치한 경향을 가진 나는 지금까지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두 권밖에 읽지 않았다. 그것도 소설 한 권 (살인자의 기억법), 에세이 한 권 (여행의 이유)이었다. 그랬던 내가 잔뜩 밀려있는 책을 제쳐두고 출간된 지 석 달 채 되지 않은 그의 신간을 구입해서 먼저 읽었다. 예상 밖의 행동에 스스로 놀라면서도 나는 즐거움을 느꼈는데, 이것 역시 반골 기질, 천성적인 아웃사이더 성향 탓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진부한 제목인데도 진리를 담고 있어 이목을 끈 이 책은 내 손에 들어온 지 두 시간 만에 읽혀버렸다. 책..

책과 독서모임에 대한 사랑무카이 가즈미 저, '다정한 나의 30년 친구, 독서회'를 읽고저자 무카이 가즈미는 번역가와 사서로 살아오며 평생 책을 가까이했다. 학생 시절 번역 선생님의 권유로 독서회에 참석하게 된 이후 어느덧 선생님은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저자는 30년이란 세월을 넘기며 독서회를 지속하고 있다. 하나의 일을 10년 넘게 한 사람을 소위 전문가라고 부른다면, 저자는 번역가라는 직업만이 아닌 독서회 리더로서도 베테랑 중 베테랑에 해당되는 경험과 노하우를 습득했음이 틀림없다. 이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독서모임에 참석하고 있거나 기획하고 있는 독자들은 이 책의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책이 출간되자마자 구입해서 읽었다. 제목에서도 강조하고 있듯 30년이라는 세월은 누군..

강유원 저, '철학 고전 강의' 1부를 읽고풍성한 읽기 = 문학 속 철학 읽어내기 + 철학으로 문학 깊게 읽기내가 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문학을 더 깊고 풍성하게 읽기 위해서였다. 마흔이 다 되어 독서를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던 어느 날, 문학만 읽어서는 문학을 깊고 풍성하게 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급한 일반화일지도 모르지만, 어찌 보면 모든 공부는 비슷한 논리를 가지는 것 같다. 일례로 성경만 읽어서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역사적 배경, 지리적 배경, 문화적 배경 등, 소위 다른 영역의 글들을 읽지 않으면 성경에 쓰인 수많은 비유와 상징들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채 작디작은 자기 머릿속에 들어있는 배경지식 혹은 '카더라 통신'에 의한, 다분히 미신적..

인간 도스토옙스키안나 도스토옙스카야 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을 읽고러시아의 대문호, 19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광기어린 천재 등 도스토옙스키를 수식하는 문구들은 한결같이 최정상의 탁월함 혹은 비범함을 나타낸다. 명실상부 인류를 대표하는 작가 혹은 인류의 유산 리스트에 올려도 반대할 사람 없을 작가 도스토옙스키. 그를 작가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숭배하고 사랑하고 보살폈던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도스토옙스키의 두 번째 아내 '안나 도스토옙스카야'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15년간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했던 나날들에 대한 안나의 기억들을 담고 있다. 기술적으론 안나의 회고록이지만 이 책에서 독자들은 안나만이 아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안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이렇게..

정적의 순간들이 글이 될 때안규철 저, '사물의 뒷모습'을 읽고'뒷모습'이라는 단어에 끌렸다. 미리 보기로 '책머리에'를 읽었다.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는 제목이었다. 읽고 나서 생각했다. 아, 이런 단락으로 책을 열다니. 수집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아래에 옮긴다. |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끊기고 낯선 정적이 흐르는 순간을 독일어나 불어에서는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을 빌리면 이 책의 글들은 내 안에서 천사가 지나간 시간들의 기록이다. | (4페이지 첫 단락 발췌) 이어지는 단락에서 나는 그가 미술을 전공한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작업실에서 혼자 침묵 가운데 보내는 시간, ..

데미안의 세계, 내 안의 데미안헤르만 헤세 저, '데미안'을 다시 읽고 한때 낙원이었던 세계가 실낙원이 되어 버리는 경험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우리는 변화된다. 누군가에겐 성장이고, 또 누군가에겐 타락이 되고 마는 이 변화를 통해 우린 인생의 여러 변곡점들을 통과한다. 예기치 못한 사건의 발생, 통제 불가능한 상황의 전개, 의지와 상관없이 만나게 되는 소수의 사람들. 우연인지 필연인지, 구원인지 저주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일들의 연쇄 속에서 우리가 겪는 이 변화들의 총합은 곧 우리 인생의 방향과 색을 정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정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과정을 견인하는 힘이 누구에게 있는지,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우리 자신과 인생의 의미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우린 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인생을 ..

낮은 곳, 거듭나는 곳, 하나님과 동기화되는 곳구미정 저, ‘낮은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을 읽고제목에 끌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인생의 낮은 점을 통과한 후 가치관과 신앙관의 변화를 겪었고, 그렇게 만난 죽음과 부활의 기로에서 감사하게도 부활로 인도받아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조금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낮은 자리에 가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비록 나 같은 경우, 일방적으로, 또 수동적으로 코너에 몰리듯 낮은 점으로 가게 된 것이었지만 말이다. 낮은 점으로 가게 되는 경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곳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그렇게 통과한 이후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여전히 나를 향한 삶을 추구하는지 남을 향한 삶..

지켜낸다는 것박순주 저,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를 읽고처음 들어보는 '진보초'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이었을까? '거대한 서점'이라는 수식어구 때문이었을까? 나의 궁금증은 결국 이 책을 구하게 만들었다. 밀린 것들을 처리하고 마침내 여유가 생긴 날,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장에 꽂힌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어나갔다. 다 읽고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흥미로웠다는 것. 다른 하나는 부러웠다는 것. 어부지리로 진보초라는 곳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동경도 생겨버렸다. 먼저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백여 군데가 넘는 고서점들이 밀집된 지역이 21세기 오늘날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책을 사랑하는 나는 어떤 형태로든 오프라인 서점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

사랑의 영원성과 현재성손턴 와일더 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읽고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무너지면서 다섯 명이 추락사를 당했다.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우린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또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신이 개입한 걸까? 단순한 우연일까? 그들은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일까? 혹시 남이 모르는 어떤 흉악한 일을 저질러 천벌을 받은 건 아닐까? 인간의 삶과 죽음은 인간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다.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죽고 싶다고 해서 쉽게 죽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여기엔 우리가 모를 뿐 이미 정해진 어떤 시간표가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누군가가 설계한 건 아닐까? 신과 우연, 무엇이 사건의 주체일까? 도대체 무엇이 ..

다시, 헤세정여울 저, '헤세'를 읽고우리나라에서 정여울만큼 헤세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작가가 또 있을까. 헤세 선집을 두 번째 읽어 나가고 있는 나로서는 정여울 작가를 지나칠 수 없었다. 한국 들어오자마자 '헤세로 가는 길'을 구해서 읽었다. 그 책에서 정여울 작가는 헤세가 거주했던 독일과 스위스를 여행하며 자신만의 단편적인 감상과 해석을 남겼고, ’수레바퀴 아래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데미안‘, ’싯다르타‘, 이렇게 네 작품에 대해서는 융의 정신분석학적 통찰을 빌려 전문가다운 서평을 남겼다. 2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그 책을 떠올리면, 헤세의 흔적을 쫓으며 치열하게, 그러나 정갈하게 글을 써낸 정여울 작가의 설렘 가득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헤세를 읽으며 내면의 치유를 경험했고, 헤세를 ..

Embrace: 내면의 야생을 사랑하기크리스타 K. 토마슨 저, '악마와 함께 춤을'을 읽고분노, 시기, 질투, 앙심, 경멸. 듣기만 해도 몸서리치는 사람도 있을 테다. 흔히 우리가 부정적인 혹은 나쁜 감정이라고 하는, 그래서 없애야만 하고, 없앨 수 없으면 피해야 하고, 피할 수 없으면 인내심을 발휘하여 적절히(?) 억눌러야 한다고 느끼는 것들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감정들이 정말 나쁜 것일까? 정말 우리와 우리 삶을 위협하거나 파괴하는 것일까? 혹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은 그 누명을 벗기고 본래의 의미를 회복시키며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삶, 균형 잡힌 삶, 깊고 풍성한 삶을 위해 이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건강한 정원에는 지렁이가 산다. 지렁이는 비 온 다음날 눈에 잘 띄..

다시, 하나님이 흔적이 드러나는 삶전신근, 제행신 공저, '이런 결혼, 어때?'를 읽고기다리던 택배 상자를 뜯자마자 책이 아닌 책과 함께 동봉된 저자의 손편지에 손이 먼저 갔다. 정성이 느껴졌다. 아무리 작더라도 작가의 진심은 독자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주는 법이다. 얼마 만에 받아보는 손편지인가 하며 나는 가능한 천천히 읽었고, 아쉬워서 또 한 번 읽었다. 이 편지를 쓰기 위해 저자가 독자 한 분 한 분을 마음속에 떠올리며 보냈을 시간들이 그려졌다. 감사가 일었다. 갓 출간된 이 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2023년 10월 초 상봉몰에서 저자를 딱 한 번 뵌 적이 있다. 내 세 번째 저서 출간 기념으로 열린 조촐한 북토크에 일부러 발걸음을 해주신 날이었다. 남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 주..

한강 작가와 작품을 듣다한강 저, ‘빛과 실’을 읽고손바닥 만한 크기에 백육십 페이지 남짓 되는, 여백도 많아 왠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읽으며 그 공간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이 책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과 소감, 미발표된 여러 편의 시, 산문, 일기들을 담고 있다. 한강 작가의 주요 작품만 읽어본 독자로서 함부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한강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진지한 적적함과 읊조리는 듯한 농밀한 텍스트들은 소설이 아닌 산문에서도 여전했다. 한강 작가 특유의 문체를 맛보는 것만 해도 즐거운 독서였다. 그러나 내가 주의 깊게 읽었던 부분은 수상 강연문이었다. 작가가 직접 말해주는 여러 작품들 (‘채식주의자’부터 ‘작별하지 않는다’까지)의 해제랄까, 탄생 배경이랄까, ..

지혜에 이르는 길에 대한 평신도 과학자의 통찰프랜시스 콜린스 저, '지혜가 필요한 시간'을 읽고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던 창조과학은 생물학자이자 그리스도인인 내게도 뱀처럼 다가와 그 매력을 발산했다. 나는 잠시 그 매력에 심취했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성경지식과 그 당시 아직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 과학지식 사이에 생겼던 모호한 괴리로부터 해방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정직하게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조금만 더 과학지식을 객관적으로 습득하자 창조과학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창조과학은 과학이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을 뿐 결코 과학이 아니었다. 고급스러운 표현을 사용하자면 유사과학일 뿐이었다. 어떤 신념 혹은 신앙에 경도되지 않고 객관적이고 이성..

고요한 읽기는 곧 작가의 삶이승우 저, ‘고요한 읽기’를 읽고‘생의 이면‘으로 처음 만난 이승우는 내게 이질감을 안겨주었던 작가다. 그의 낯선 문체, 이를테면 번복되고 되뇌고 산만하기도 하고 단정치 않고 늘어지는 느낌을 주는 그의 글쓰기가 거슬렸다. 안정효와 신형철이 말하는, 동시에 나도 지향하는, ‘정확한 글쓰기’와 대조되어 내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고요한 읽기’는 산문집이다. 소설에서 이질감을 주었던 이승우의 문체가 산문에선 의외의 매력을 띄고 내 앞에 나타났다. 잘 잡히지 않던 문장들이 그의 문체 덕에 더 잘 이해가 되었고, 단문들의 반복은 강화와 심화 효과뿐만 아니라 친절함과 다채로움까지 리드미컬하게 자아냈다. 이승우의 진면목을 나는 이제야 보게 된 것인가. 이 책은 읽기가 읽기와 쓰기를 낳..

이야기보다 이야기꾼이 더 드러나는 작품무라카미 하루키 저, ‘일인칭 단수’를 읽고1. 돌베개에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거기엔 어떤 공통된 정서가 흐르는 것 같다. 이 짧은 단편을 읽고도 동일한 걸 느꼈다. 몇 단어로 표현할 수도 있을 텐데, 이를테면, 죽음, 문학, 환상, 섹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어리숙하고 어설픈 남자 주인공 등이다. 언뜻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키워드들은 하루키의 사상 혹은 철학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관념과 통속의 조화를 도스토옙스키 덕분에 진하게 맛보았던 나는 하루키 역시 그만의 독특한 방식과 고유한 문체로 소설을 쓰는, 현대문학의 거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도스토옙스키와 비교하면 깊이랄까, 통찰이랄까 하는 측면에서 내게 하루키는 가볍게 느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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