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의 변화 vs. 세계관의 변화그리스도인이 되기 전과 후의 차이는 어떠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 먼저 동의하고 전제로 두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차이는 반드시 나고 나야만 한다는 것.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는 것. 여기에 동의가 안 된다면 이 글은 패스하시길.차이는 내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는 장소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다. 예수를 영접하면 마음과 생각에 나 뿐만이 아니라 성령이 추가적으로 거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추가'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대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를 영접한다고 해서 내 자아가 사라지지 않는다. 자아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과 후의 차이가 없다. 차이는 주로 시간이 지나면서 생겨난다. ..
한 시간 남짓 만에 다 읽고 어젯밤 감상문을 남겼던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작품 '체스 이야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살아오면서 자기 의견을 가차 없이 관철시키는 데에 익숙해져 있고 실제로 성공한 탓에 버릇이 잘못 들어서, 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모든 저항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거역이 되었고, 거의 모욕처럼 그를 자극했다. …… 그는 뭔가 하나에 꽂히면 제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깊이 공감을 하며 밑줄을 그었다.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한 사람을 묘사하는 부분도 탁월하지만 내 시선이 한동안 멈춘 곳은 "실제로 성공한 탓에 버릇이 잘못 들어서"였다. 많은 것이 압축적으로 담긴 문장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실패 없..
이길 수도 있었을 체스 한 판슈테판 츠바이크 저, ‘체스 이야기’를 읽고우둔해 보이고, 이마가 넓으며, 어느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시키는 일을 제외하고는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우두커니 쳐다보며 방에 앉아 있는 게 전부여서 도대체 커서 무슨 일을 할 수나 있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 아이가 있었다. 도나우강에서 돛대도 없는 작은 배를 운항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슬라브 남부 출신 선장의 아들이었다. 그는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후 어느 착한 신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신부는 그를 교육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그의 무능력과 무관심은 시간이 갈수록 확실해졌다. 어느 날, 신부가 지방경찰과 체스를 두고 있는데, 그 소년은 말없이 그들 옆에 웅크리고 앉아 무거운 눈꺼풀을 끔뻑거리며 체스판을 ..
기도의 무게와 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는 책이화정 저, '엄마의 일기가 하늘에 닿으면'을 읽고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며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한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며, 그리스도를 얻고 또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해서였다. 이화정 목사의 '엄마의 일기가 하늘에 닿으면'을 숨 가쁘게 내리읽고 이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 까닭은 저자의 고백도 바울의 고백과 같은 맥락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고백은 다음과 같다."엄마의 일기는 내가 쓴 박사 학위 논문보다 더 신학적이고 내가 한 어떤 설교보다 목회적이고 내가 한 어떤 기도보다 영성 깊다고 자부할 수 있다. 복음의 씨앗은 이렇게 이름 모를 섬마을의 한 여인..
저의 대학/대학원생 시절의 이야기를 팩트40 허구60으로 버무려 만든 팩션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10화가 공개되었습니다. 대학원생들이 기계처럼 실험실에 붙어 살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인생을 사는 것 같아 보여도, 그 삶도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는 똑같은 일상을 공유한답니다. 이번 화에서는 저와 저를 포함한 돼지 삼형제가 모두 결혼에 성공하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2004-2005년에 우리 세 명은 모두 결혼을 했답니다. 지금도 깨지지 않은 가정으로 잘 살아가고 있어 복이라 생각합니다.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어주셔요.https://www.ibric.org/s.do?aeTDrukgOa
또, 다시, 이해하기보다 느끼는 소설 폴 오스터 저, '뉴욕 3부작' 중 '잠겨 있는 방'을 읽고이 작품도 읽고 나서 여전히 구름을 잡는 느낌이지만, 작품 끄트머리에서 화자가 앞의 두 작품 '유리의 도시'와 '유령들'의 화자임을 직접 밝히고 세 작품의 연결고리를 잠시 설명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실체가 잡히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앞의 두 작품이 손에 잡히는 건 아니다. 화자가 설명하는 세 작품에 대한 짤막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세 편의 이야기는 결국 같은 이야기지만, 내 의식 속에서는 그 하나하나가 동일한 사건의 각기 다른 단계를 나타내고 있다." 세 편의 이야기가 결국 같은 이야기라는 점은 스토리만을 고려하면 아마 누구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리란 생각이다. 드러난 스토리가 아닌 그 스토리가 머금고 ..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사람을 읽고 나를 읽고 삶을 나눈다 이틀 전 목요일 저녁,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아홉 번째 만남이 있었다. 6시부터 8시까지가 공식적이라 할 수 있는 계획된 모임 시간인데, 보통 9시 10시까지 나눔이 지속된다. 중간에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서 한 달 만에 회포도 풀고 도스토옙스키 덕분에 터져 나온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나눈다. 대부분 비슷한 고백을 하신다. ”내가 왜 이런 말을 여기서 하는 거죠? 나 이런 얘기 밖에서 잘 안 하는데...“ 그러나 우린 이제 안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는 건 사람을 읽는 것이고, 또 나를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의 외면을 비추는 건 거울이지만,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면에서 내면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책을 읽고 궁극적으로 ..
부탁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유신론자에 속한다. 내가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솔직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말미암은 건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접근해도 나는 여전히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보다는 존재한다는 쪽이 더 개연성도 있고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유신론은 믿음이고, 무신론은 과학이라는 이분법적인 틀에 갇혀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무신론 역시 믿음이자 세계관일 뿐이다. 신의 존재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하는지 증명하라는 자가 주위에 있으면 되물으면 그만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즉 유신론이나 무신론이나 하나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인 것이다. 제발 무신론..
다시, 이해하기보다 느끼는 소설 폴 오스터 저, '뉴욕 3부작' 중 '유령들'을 읽고난해하다거나 심오하다고 말하기에는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대중성을 폄훼하는 듯한 뉘앙스라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르이고, 그게 소설의 최대 장점인 줄 안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한낱 꿈의 조각처럼 파편적이거나, 두서없는 망상으로 표현된다면, 적어도 나는 읽어야 할 것들이 언제나 밀려 있는 평소의 상황에서 그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기발함이나 재치 위주의 말초적인 자극이나 충격을 주려는 목적으로 써진 현대 소설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써내려가면서, 아무나 알 수 있지만 누구나 깨닫지 못하는 일상 속에 빛바랜 진리를 재발견하고 재해석..
쫓기는 삶쫓기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무엇인가에 쫓기며 산다.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여전히 누군가에겐 바쁜 게 자랑일 수도 있다. 쫓기는 삶에 스스로 우쭐해하며, 마치 자기가 소수의 엘리트 집단에라도 속한 것처럼 특권 의식에 절어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러한 삶이 모든 일을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이유가 되어주진 않는다. 그래선 안 된다. 물론 일이 많아지면 우선순위를 선정하고 그 일들에 시간을 배분하여 효율을 증대시켜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바쁘더라도 어떤 특정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쫓겨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렇게 살려고 애쓴다. 이게 누군가에겐 고집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무너지면 삶 전체가 붕괴된다는 것을 나..
저의 대학원생 시절의 추억을 담은 팩트 40 픽션 (허구) 60 으로 이뤄진 팩션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제 9화가 공개되었습니다. 이번 화에서는 제가 막내를 벗어나 2년차가 된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김효영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저의 체육학과 출신의 모습을 주입했습니다. 제가 포항공대 체육학과 출신이라는 말을 늘상 듣던 놈이었답니다. 허구한 날 배드민턴을 치던 그날들이 저에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링크 널리 알려주시고요~https://www.ibric.org/s.do?rViySCgwJT
이해하기보다 느끼는 소설폴 오스터 저, '뉴욕 3부작' 중 '유리의 도시'를 읽고퀸은 작가였다. 5년 전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 지금은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쓰며 산다. 추리소설의 주인공 탐정 이름은 맥스 워크이다. 퀸은 윌슨이 되어 세상을 등지고 스스로를 고립시켰지만, 한편으로 그는 워크가 되어 여전히 세상에 발을 걸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워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조사하고 미행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퀸에게는 허구일 뿐이다. 이쯤에서 나는 궁금해진다. 퀸이 사는 세상은 실재하는 것일까? 허구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퀸에게 실재와 허구는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닐까? 구분이 되기는 할까?어느 날 전화가 걸려온다. 잘못 걸려온 전화다. 퀸도 윌슨..
성서를 읽기 위한 정직한 자세토마스 머튼 저, '성서를 열다'를 읽고제목이 '성서를 읽다'가 아닌 '성서를 열다'라는 점에 주목한다. 읽기 위해서는 먼저 열어야 하는 법. 그렇다. 이 책은 성서를 본격적으로 읽는 단계가 아닌 그 전단계에 초점을 맞춘다. 성서는 어떤 책인지, 성서를 읽는 나는 누구인지, 성서를 읽을 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성서를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저자의 탁월한 통찰과 뛰어난 필력은 덤이다. 저자는 우리가 종종 성서를 일방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성서를 현실과 상관없이 영적인 세계의 이야기로만 여긴다든지, 거룩하고 독실한 신자들의 전유물로 여긴다든지,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과 지성, 심지어는 상식에 반하는 책으로 여기는 경우도 왕왕..
이야기의 힘, 문학의 힘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땐 책을 집어든다. 그 속에 답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책을 사랑하고 즐기면서 깨닫게 된 한 가지는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책은 답이 아닌 답을 이끄는 실마리, 혹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그것도 무한으로. 어쩌다 한 권의 책이 나에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도 책 자체라기보다는 그 시간 그 공간에 위치한 나의 생각과 마음과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책을 매일 읽어도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순간들.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예기치 못한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전율하게 되고 살아 있어서, 혹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마음 깊이 감동이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 책을 드는 이유도 그런 기대 때문일 것이다.독..
쫓기는 건지 쫓는 건지 분별이 안 될 때가 있다. 둘은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제한적 압박은 성실한 지속의 중추다. 성실한 지속이 가능하려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야 한다. 무너지고 주저앉게 되는 시기를 견뎌내는 힘은 내가 무엇을 쫓는지에 달려있기보다는 내가 무엇에 쫓기는지에 달려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나는 쫓기만 할 뿐 쫓기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고 확신하는 마음도 일종의 교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성실한 지속도 가끔 다람쥐 쳇바퀴가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것을 과감하게 잠시 내려두고 유체이탈하듯 나의 일상의 시공간을 벗어나 내가 조금 전까지 돌리던 쳇바퀴를 가만히 바라본다. 애잔한 마음이 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큰 고민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무언가..
듣고 싶은 설교프레드릭 비크너 저, '진리를 말하다'를 읽고설교자들이 주요 독자층인 듯한 이 책은 설교를 주로 듣기만 하는 나에게 다시 설교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해 주었다. 저자가 말하는 설교를 듣고 싶은 마음에 잠시 내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런 설교를 들어본 횟수가 손꼽을 정도인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이 시대 이 한국 교회에 목사는 참으로 많은데 참 설교자가 요원하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말이다.진부할 정도로 너무 당연해서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명제 중 하나는 '설교는 진리를 말해야 한다'일 것이다.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비슷한 여정을 겪는다. 특히 늙어가는 중엔 비틀거리면서도 어쨌거나 가야 할 길을 인도받아 뚜벅뚜벅 걸어가는 ..
소중한 사람들이 시대에 책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다. 특히, 책 중에서도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작품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더 그렇다. 함께 작품 속으로 들어가 작품 속 세계와 그 세계를 이루는 등장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개입하여 공감하고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위로도 얻고 치유를 경험하기도 하며 중요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의 의미를 재발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말이다. 이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음은 살면서 누구나 누릴 수 있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축복일 것이다.현실에 민첩하고 돈의 흐름을 꿰뚫고 있으며 사리에 밝아 만날 때마다 영웅담을 과시하는 성공자들과의 만남은 이상하게도 점점 멀리하게 된다. ..
브릭에 연재하고 있는 저의 대학/대학원생 시절의 이야기와 허구가 4:6 정도로 이뤄진 팩션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7화가 공개되었습니다. 저의 주종목은 마우스 유전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를 제거하여 그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내는 작업이지요. 그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이공계 기피 및 인재들의 한국 기피가 심화되는 이 시대에 풋풋한 예비 생물학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세요.https://www.ibric.org/s.do?uRofVfCznl
처음으로 감수에 이름을 올린 따끈따끈한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추천사도 함께 썼는데, 이 책 소개를 저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제가 읽어본 과학과 신앙 사이의 고질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책 중에서 저는 단연 이 책을 손꼽고 싶습니다. 창조과학이니 창조론이니 유신진화론이니 여전히 시끄러운 이 시대에 이 책이 마음을 시원케 하는 효과를 내리라 생각합니다. 일독을 꼭 권합니다. 추천사 아담과 게놈 하나님을 더 알고자 하나님이 저자이신 두 책, 성경과 자연을 진지하게 읽어나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언젠간 묻게 된다. 더욱이 과학 시대를 살아가며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자유함을 얻은 모든 그리스도인이라면 두려워하지 말고 겸손하게 물을 필요가 있다. 아담은 오늘날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생물학적 조상인가? 아담과 하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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