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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_’장 폴 사르트르, 타자를 발견하다’를 읽고
타자와 시선
사르트르 강의를 맡은 저자는 타자의 개념이 어느 정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면서도 주변부로 밀려났던 타자의 나에 대한 반격은 사르트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 이후 타자는 메를로 퐁티, 레비나스, 라캉, 리쾨르, 들뢰즈에 의해서 20세기 중후반 인문학 담론을 결정짓는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고도 말한다. 프랑스 현대철학을 사르트르의 타자론으로 시작하는 건 이런 면에서 적절해 보인다.
그의 주저서는 '존재와 무'이지만 내가 읽을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대신 이렇게 짧게 개념들을 정리해 주는 이차 저작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이삼십 페이지의 짧은 분량이지만, 두세 번 반복해서 천천히 읽고, 궁금한 부분은 따로 인터넷 문서와 동영상을 참조하면서 서너 시간 투자하면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철학 이해에 있어서는 충분한 것 같다.
사르트르의 세상에서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는 의식의 유무에 따라 즉자존재와 대자존재로 구분된다. 즉자존재는 의식이 없는 사물이다. 대자존재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다. 대자존재는 나와 타자로 또 구분된다. 사르트르는 타자를 '나를 바라보는 자'라고 정의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은 '시선'이다. 나는 의식을 통해 타자를 포착한다. 포착하는 순간 타자는 즉자존재가 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타자 역시 대자존재이기 때문에 나를 포착하는 순간 나는 타자에게 즉자존재가 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에서는 타자가 부재했다. 모든 게 나 중심이었다. 타자의 출현은 그러므로 제2, 제3의 코기토가 발생하는 것이고, 그것은 나의 세계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 타자의 세계가 존재하면서 동시에 중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대자존재이지만 타자에 의해 즉자존재가 되는 이중적인 존재인 것이다.
시선에 대한 사유가 인상적이었다. 무언가를 포착한다는 건 폭력이 될 수 없다. 사물은 즉자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포착한다는 건 폭력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대자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를 내 시선으로 포착한다는 건 곧 동적이고 변화무쌍하며 살아있는 타자라는 존재를 정적이고 멈춰있으며 죽어있는 사물로 강등시키는 것과 같다. 그래서 폭력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동등하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시선으로 포착하는 폭력은 쌍방 간에 행해진다. 서로가 서로를 강등시키며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와 타자 사이에는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타자는 지옥'이라는 말도 이런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의 치부가 모두 타자의 시선으로 포착되고 나면 나는 타자가 가져간 정보를 알 수도 없기 때문에 타자에게 노예 같은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인간은 서로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선점을 하기 위해 시선 쟁탈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되는 것이다.
반면 타자의 존재가 없으면 결코 나를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 사르트르는 이 점에서 '타자의 시선에 포착된 나의 모습은 그대로 나의 존재근거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타자는 나에게 지옥이기도 하고 동시에 필수불가결한 협조자이기도 한 것이다. 내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를 단적으로 빗댄 표현으로 보였다.
타자와의 관계가 항상 갈등과 투쟁만으로 이뤄지는가? 아닐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지옥도 인간이지만, 천국도 인간이다. 연민과 사랑이라는 신비가 있기 때문이다. 타자론을 비롯한 그 어떤 철학이나 사상으로도 포착하지 못하는 연민과 사랑. 사르트르는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고, 또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철학자였는지는 몰라도, 과연 도스토옙스키가 포착했던 인간의 깊은 연민과 사랑과 구원을 깨닫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이것이 어쩌면 사르트르의 타자론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1. 장 폴 사르트르, 타자를 발견하다: https://rtmodel.tistory.com/2233
#동녘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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