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조용히 혼자서 무엇인가를 해나가는 사람을 사랑한다.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일의 크기와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 과정에서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며 스스로 성장과 성숙을 거듭하는 사람이면 된다.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건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증거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내게 힘이 되고, 나도 모르게 또 잠들어 있던 나를 깨우며,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과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선한 영향력이란 이런 것일 테다. 날씨 얘기를 주고받는 얕고 가벼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적당히 노력할 가치는 있다. 우리가 만나는 열 명 중 여덟 명은 이런 관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라고 해서 이런 관계 유지에 나의 모든 시간이 쓰인다면 나는 아마도 공중분해..
Who are you?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2012년 영화 '플라이트'의 마지막 대사는 "That's a good question"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문장이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알 수 있다. 덴젤 워싱턴의 변화 혹은 회심 혹은 부활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웃음을 지으며 이 말을 내뱉게 만든 아들의 질문에 주목한다. "Who are you?"작가나 감독의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지만, 이 질문 만큼 '좋은' 질문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누구세요?"는 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었고, 나 역시 보기 좋게 제대로 한 방 맞은 것처럼 "그거 참 좋은 질문이네"라는 답을 하게 된다. 살짝 헛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비겁하지 않기적어도 이틀에 한 번 두 달간 꾸준히 달렸더니 체중도 1킬로그램 정도 줄었고 뭔가 체력이 좋아진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혈압도 떨어졌다. 유전적인 이유로 고혈압 약을 먹은 지 벌써 10년째인데, 지지난 주부터 기립성 저혈압 증상이 부쩍 늘었다. 이 증상은 고혈압 약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이기도 한데 체중 감소와 혈압 감소가 이 증상을 가속화시킨 모양이다. 좋게 해석하고 있다. 이 흐름을 계속 타고 갈 생각이다. 혈압도 매일 재고, 병원에 가서 혈압 약도 점점 줄여나가면서 궁극적으로 끊을 수 있도록 애써볼 작정이다. 지금 한국 나이 오십인데, 미국 나이 오십이 될 때까지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매일 30분씩 지속하는 것만 해도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뀐다는 걸 ..
또 한 번 틀을 넘어서다직장 동료나 어쩔 수 없이 어떤 단체에서 함께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가 사적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뭔가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이런 통한다는 느낌도 다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하는 것 같다. 불편함이 동반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그동안 겪은 내 경험들을 종합해서 얘기해 보겠다. 전자의 경우 결국 관계가 단절될 확률이 높았다. 단절되기까지의 기간은 마치 서로 헤어질 이유를 찾기 위해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로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함이 지속되었는데 (잘 통하는 것 같기도 한데 뭔가 중심을 잘 모르겠는 그런 엉거주춤한 느낌이랄까?), 그게 결국 일방적인 오해로 이어지고 그 오해를 풀려고도 하지 않..
불안과 경이그랜드 캐년 앞에 처음 섰을 때, 혹은 나이아가라 폭포 바로 옆에 서 있을 때 나는 나의 존재가 개미보다, 아니 먼지보다 작다고 느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걸 몸으로 느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건 다름 아닌 경이였다. 그 느낌은 나를 압도했고 나는 그 순간 내 존재를 거뜬히 넘어서는 초월적인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이감은 초월을 경험한 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 않을까. 그러나 그 순간 아주 짧지만 나는 불안도 느꼈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경이를 만끽하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불안을 넘어선 이후에야 경이를 만끽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 내가 티끌과도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 나는 광활한 공간 속으로 내던져진 것 같은 불안을 느꼈다...
진정한 성장을 원한다면“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저 유명한 문장은 헤세의 '데미안'에 등장한다. 데미안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보다 왠지 저 문장을 들어본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은 느낌은 아마 현실일 것이다. 그만큼 널리 알려진 문장이다. 그런데 나는 저 문장이 조금 거슬린다. 내 눈에는 ’힘겹게‘와 ‘투쟁’이 중복으로 보이고, '깨뜨려야 한다'는 표현보다 '파괴'라는 확실한 단어를 사용하는 게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저 번역문보다 다음 번역문을 좋아한다. 사실 내가 중학생 때 처음 읽었던 ‘데미안‘에서도 이 번역문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우린 보통 ..
슬기로운 외로움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자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숙명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 강을 건넌 자는 언제나 소수다. 사실 그들 역시 왜 자신이 그 소수에 속해 있는지 모른다. 스스로 획득한 능력이라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경우가 일반적일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강을 건너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이들 역시 한 부류가 아니다. 세 부류가 있는 것 같다.첫 번째 부류는 그 강을 건너고 싶으나 용기나 여러 가지 놓치기 싫은 것들이 있다는 이유로 언제나 강 바로 앞에서 망설이며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두 번째 부류는 그 강을 건너지 않기로 작정한 뒤 강을 등지고 자신만의 매트릭스에 갇힌 채 강을 건너려고 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거나 비난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자와 건너지 못한 자와의 소통살다 보면 여러 번 강을 건너게 된다. 강은 저마다 의미를 가지지만 모두 다 같지는 않다. 어떤 강은 한 번 건너면 돌아갈 수 없다. 영원히. 다양성이 공동체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나 역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감정을 느끼며 반응하는 이들과 언제나 함께 해야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다양성을 어떻게 끌어안을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야기되지 않는다. 이 글은 이 점에 대한 나의 사견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가운데에는 그저 여러 다른 강을 건넌 이들만이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들이 언제나 소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수평적인 다양성만이 ..
진짜 비극"이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 비극만이 존재하네. 하나는 자기가 원하는 걸 갖지 못하는 비극이고, 다른 하나는 마침내 갖는 비극이지. 두 번째가 훨씬 나빠. 이게 진짜 비극이라고!" 문지혁 작가의 '중급 한국어' 167페이지에 적힌 문장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원더미어 부인의 부채' 중에 나오며, 저자 자신으로 생각되는 화자가 자기 책상에 붙어 있는 문구라고 한다. 역시 오스카 와일드는 천재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전체를 두 개로 나누고 그 두 개를 모두 부정하는 방식. 왜 나는 적어도 하나는 긍정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걸까. 아니, 둘 다 긍정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역시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둘 다 부정이어야 말이 된다. 그래야 문장이다. 그래야 책상..
버려라. 취하기 전에. 변화하고 싶으면.무엇인가를 지속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여유’다. 여유는 진부하지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정신적 여유와 육체적 여유. 정신적 여유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가지 않는 곳에 몸을 담을 수 없다는 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육체적 여유는? 이것이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인데, 맞다, 육체적 여유는 당신이 생각하는 체력과 동의어다. 체력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어떤 일을 지속하기 위해 체력이 필요하다는 건 아무나 공감하지 못한다. 이상한 일이다. 그게 그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체력과 어떤 일의 지속을 연결시키는 것에 서툰 것 같다. 그들이 생각하는 체력..
달리기, 잠 그리고 감사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게 있다. 잠이다. 누군가에겐 이게 뭐 대수냐 싶기도 하겠지만, 불면증을 겪어본 사람은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누워서 잠을 청하면 5-10분 이내로 잠들어 6-7시간을 내리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지. 미국에서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다. 잠이 드는 것도 문제였지만, 2-3시간 마다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드는 것도 힘들었다. 6-7시간은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정작 잠 자는 시간은 3-4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체력은 물론 모든 활력이 감소될 수밖에 없고 정신적으로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불면증은 사람을 조용히 갉아먹는 쥐와 같은 것이다. 불면증은 읽고 쓰는 삶을 시작..
안주는 안전하지 않다오래전의 일이다. 늘 성장하기를 원한다고 했고, 우물 안에 갇힌 것 같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으며, 낯설고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여 진정한 자아를 찾겠노라고 다짐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런저런 합리화를 하면서 끝내 안주하기를 선택했고, 나는 그의 앞에서 아무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좋은 말과 좋은 글이 좋은 말과 좋은 글로만 끝나는 장면들을 도대체 나는 살면서 얼마나 더 지켜봐야 하는 걸까. 기대는 실망으로, 실망은 구천을 맴돌다가 끝내 나 자신에게로 화살을 돌린다. 이 무한반복에서 나도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 반복이 나를 강하게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이게 어쩌면 내가 짊어져야 할 숙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어차피 ..
사소한 것들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주축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들은 종종 예기치 못한 사건의 복선이 되기도 하고, 하나의 경로가 되기도 하며, 때론 그 자체로 비밀스러운 의미를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들만이 우리의 시간을 추동하는 힘이라면 시간은 더디 흐르다가 멈춰버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소한 일들이 시간의 톱니바퀴를 이룬다. 그것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역학이 바로 우리의 시간이다. 그 안에서 모든 것들이 일어난다. 시간은 공간이 되고, 사건은 새로운 층위의 삶을 여는 문이 된다. 사소한 것들이 시간이자 공간이라는 것. 우리를 이루는 모든 배경이라는 것. 그러므로 우리를 알아챈다는 것은 우리의 배경을..
현재성과 생명력살다 보면 잊은 지 한참 지난 나의 꿈을 다시 기억나게 해주는 일을 만난다. 그러면 그 꿈을 처음 가지게 되었을 때의 내 손과 발, 그리고 귀에까지 들리던 심장 박동을 다시 듣게 된다. 가슴이 다시 뛰고 모든 게 순식간에 재해석되며 나도 모르게 사소한 일 따위로 불평과 불만에 가득 차 있던 내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또 한 번 성장하는 순간이다. 양파 껍질 같은 우물을 한 겹 더 탈출하는 순간이다. 우연을 가장해서 내 평범한 일상으로 침투해 오는 필연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다시 아이가 된다. 그 아이는 이것저것 많이 알아버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 비겁한 어른의 껍데기를 깨부수고 나온다. 다시 젊어지는 순간이다. 눈이 한층 더 깊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나는 눈이 깊은 사람은 아..
우연과 운명어릴 때부터 클래식을 좋아했다. 일주일 용돈 오백 원일 때에도 나는 깐도리나 바나나맛바 혹은 짱구나 새우깡을 사 먹지 않고 모으고 모아 헌책방에 가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빨간색 표지의 추리소설을 사거나 (당시 중고책 한 권에 오백 원 정도였다), 좀 더 돈을 모아 노란색 커버의 클래식 카세트테이프를 샀다. 원하던 무엇인가를 감내하고 마침내 구한 것은 그냥 돈 주고 산 것보다 더 귀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내게 추리소설과 클래식 테이프는 보물과도 같았다.아내와 아이가 미국으로 가고 나서부터 적적한 집에서 나는 KBS 클래식 FM을 즐겨 듣는다. 클래식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감성을 어떻게든 유지하고픈 나의 절박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요즘은 너무나도 쉽게 숏폼 같은 동영상에..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운명을 믿든 믿지 않든 모든 인간에게 어느 날 문득 닥쳐오는 운명적인 만남을 보여준다. 그 만남은 언어와의 만남이었고, 문장과의 만남이었으며, 책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레고리우스는 그렇게 만난 세상 안에서 저자였던, 이미 고인이 된, 아마데우를 조우한다. 누구를 만나게 되는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적인 만남은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느닷없이 일상으로 침투하여 깊숙한 내 안의 나를 일깨운다. 내 안의 내가 긴 잠에서 깨어나는 사건에 방점이 있다.그 순간을 경험한다면, 그 순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누구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자아가 한 번 깨어났다는 건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뜻이니까. 그게 운명..
그리움의 무게그리움은 두 층위를 가진다. 하나는 짧지만 강렬했던 순간들에 대한 그리움, 다른 하나는 일상 속에서 한 몸이 되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전자의 대상이 비일상이라면, 후자는 지극한 일상이다. 전자가 일상을 탈피한 것에 대해서라면, 후자는 일상을 상실한 것에 대해서다. 어제 읽고 감상문을 남겼던 바움가트너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된다. 그리고 나는 후자의 그리움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움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전자의 그리움은 깃털처럼 가볍다고 느낀다. 전자의 그리움은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움이라 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한다. 일탈은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 그리움이란 단어는 무게를 갖는다. 그리고 그 무게는 상실에서 비롯된다.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것 자체가 ..
서울, 한국반즈앤노블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여행 서적 섹션에서 한국 관련 책을 찾아보았다. 나라별이 아니라 도시별로 되어 있었다. ‘서울’이라는 제목의 책이 두 권 있었다. 펼쳐서 훑어보았다. 여러 식당, 호텔, 관광지, 심지어 당일치기, 이틀, 사흘, 나흘 치 추천 일정이 시간 단위로 짜여 있는 페이지도 있었다. 생소했다. 영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단지 서울에 살지 않기 때문도 아니었다. 미국에 소개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한국이라는 나라가 내가 알고 익숙한 도시와 나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랬던 것일까?한복이며 남대문 등의 궁들이 특히 그랬다. 미국에 11년간 살 때도 느꼈던 건데,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한복을 평소에도 입는지, 집은 궁이나 한옥 같은 건물에서 사는..
별거 아닌 것별거 아닌 것이 갖는 힘이 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것을 본다고 해서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는다. 여기 살 땐 쳐다보지도 않던 것들이 시간차를 두고 방문객의 눈에는 달리 보인다. 달라진 건 나인 것이다. 별거 아닌 것들은 달라진 나를 깨닫게 한다.한없이 여유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곳곳에 아름다움과 낭만이 있다. 허접한 분수대 하나도 흐르는 물줄기의 패턴을 관찰하느라 아름답게 보인다. 별거 아닌 것들이 별것이 되는 순간의 내 모습이 나는 좋다.한때 나 자신을 별것이라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나의 고유한 개성을 나의 우월함으로 착각했던 기억이다.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그 사실을 깨닫고 수치스러움을 감당하지 못했을 땐 정반대의 극으로 치닫았다. 거짓된 열등감, 혹은 허황된 열등감..
불안과 즐거움불안에 잠길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러너 연구소 5층에 위치한 발코니. 나는 그곳에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잠시 현재를 잊곤 했다. 그 당시 나는 보스의 조울증 증세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내 인생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거라며 나를 이곳으로 보낸, 나를 인도하고 내가 믿고 신뢰했던 신에게 반항하고 있었다. 점심을 대충 먹고 한적한 발코니로 나와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잠시나마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십여 년이 지나도 그곳에 서 있는 내 모습은 저 높이 드론이 찍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곳에서 나는 경미한 뇌경색 증상을 겪기도 했다. 모든 말을 다 알아듣고 생각도 동일하게 할 수 있었지만 말이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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