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인 결핍'당신이 생각하는 바가 당신이다 (You are what you think)'는 현실과는 상관없는 이상일뿐이다. 대신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당신이다 (You are what you love)‘가 인간을 잘 설명해 준다. 여기서 사랑하는 것은 습관 혹은 관성을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하는 것들의 총체다. 우리는 생각한 대로 살지 않고 살아온 대로 살지 않는가. 잠시만 자신의 삶을 돌아봐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명제가 참이라고 인정한다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습관이라는 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바른 생각을 해도 습관으로 젖어들지 않으면 힘이 없다. 생각과 말이 다를 수 있고, 생각과 행동이 다를 수 있다. 아니, 아주 많은 경우 다르다. 인간은 ..
대체불가능성과 개성화학창 시절 선생님들로부터 종종 듣던 덕담 중 학생들에게 꽤 효과가 있었던 말 중 하나는 꼭 필요한 사람, 아니 없어서는 안 될 사람, 즉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 말을 듣고 그래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처럼 성공지향적이었던 학생들은 대부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학생일 때 내게 그 덕담을 해주셨던 선생님들과 이제 나이가 비슷하거나 더 많아진 지금, 나는 그 대체불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되었다. 물론 현실에선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존재하긴 하는 것 같다. 아주 극소수로 말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불멸이 아니기에 언젠간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고 믿었던 그곳은 새로운 ..

지켜낸다는 것박순주 저,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를 읽고처음 들어보는 '진보초'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이었을까? '거대한 서점'이라는 수식어구 때문이었을까? 나의 궁금증은 결국 이 책을 구하게 만들었다. 밀린 것들을 처리하고 마침내 여유가 생긴 날,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장에 꽂힌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어나갔다. 다 읽고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흥미로웠다는 것. 다른 하나는 부러웠다는 것. 어부지리로 진보초라는 곳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동경도 생겨버렸다. 먼저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백여 군데가 넘는 고서점들이 밀집된 지역이 21세기 오늘날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책을 사랑하는 나는 어떤 형태로든 오프라인 서점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

멈춘 것 같은 시간시간이 멈춘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날씨며 몸이며 기분까지 모든 게 완벽한 날, 아무런 일정도 없어 모든 시간이 내 편인 것 같은 날이면 더욱 그렇다. 무엇을 해도 아쉬울 것 같은 날. 이럴 때 그나마 덜 아쉬운 감이 들기 위해 나는 주로 두 가지를 한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책을 한두 권 들고나가 한적한 야외에서 독서를 즐기거나. 누군가는 무료하게만 느낄 수 있을 이런 시간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남다른 고요한 평화를 누린다. 어젠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완독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가 감상문으로 독서를 마무리한 뒤 얼마 전부터 아껴가며 읽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을 백 페이지 가량 읽었다. 다 읽어 버릴까 봐 책을 얼른 덮고, 머리를 식힐..

사랑의 영원성과 현재성손턴 와일더 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읽고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무너지면서 다섯 명이 추락사를 당했다.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우린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또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신이 개입한 걸까? 단순한 우연일까? 그들은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일까? 혹시 남이 모르는 어떤 흉악한 일을 저질러 천벌을 받은 건 아닐까? 인간의 삶과 죽음은 인간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다.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죽고 싶다고 해서 쉽게 죽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여기엔 우리가 모를 뿐 이미 정해진 어떤 시간표가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누군가가 설계한 건 아닐까? 신과 우연, 무엇이 사건의 주체일까? 도대체 무엇이 ..
사과는 굴욕이 아니다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 원래 저랬다는 말보다는 저 자리에 가서 바뀌었다는 해석이 더 믿을 만한 것 같다. 물론 여기서 바뀌었다는 말은 원래 안에 있던 게 밖으로 나온 걸 수도 있고, 없던 게 새로 생긴 걸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있던 건지 아닌 건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쨌거나 욕망으로, 특히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욕구와 달라서 인간만이 가진다. 생물학적인 필요가 아닌 타자에 의해 생겨나는 탐욕이 욕망이다. 부족하지 않았는데도 상대적 결핍 혹은 상대적 박탈을 느끼면서 마치 부족한 것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르네 지라르는 ‘모방’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들어온다. 우리가 명품백을 든 사람을 ..
도서관, 북클럽, 독서모임 등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책으로 모이는 공동체라면 불러주시면 달려갑니다~! 제주에서도 정말 소중한 시간을 보냈었답니다. 행여나 강사비로 부담 갖지 마시길 바랍니다. 왕복 차비와 한끼 식사비 정도만 부담해주시면 완전 오케이입니다^^ 제주에서 진행했던 모임에 대한 후기가 아래에 있으니 읽어보시고 많이 불러주세요~ 참고로 저는 네 권의 책 저자이니 어떤 책으로든 괜찮습니다. 한꺼번에 여러 책을 다 해도 됩니다^^https://www.scitheo.or.kr/people/?idx=163836802&bmode=view
작가의 세 가지언젠가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읽거나 쓰지 않으면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는 것 같은 강박이 생겼다. 작가의 숙명이 아닌가 싶다. 겸허히 그리고 기꺼이 그리고 감사히 받아들인다. 읽고 쓰는 일이 좋다. 때론 하루 종일 이것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할 만큼. 그러나 그러려면 선행되어야 할 몇 가지 준비사항이 있다는 걸 비교적 최근에 제대로 깨달았기에 여기서 좀 나눠 보려고 한다.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체력이다. 읽고 쓰는 일은 밤샘 작업하여 하룻밤 만에 끝내는 벼락치기가 아니라 평생을 지속해야 할 일종의 사명이기에 가장 중요한 건 성실한 지속이기 때문이다. 힘이 모자라면 사소한 것들에도 짜증이 나고 걸려 넘어진다. 그리고 혼자 세상과 담쌓고 산속에 들어가 은둔, 칩거할 게..

다시, 헤세정여울 저, '헤세'를 읽고우리나라에서 정여울만큼 헤세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작가가 또 있을까. 헤세 선집을 두 번째 읽어 나가고 있는 나로서는 정여울 작가를 지나칠 수 없었다. 한국 들어오자마자 '헤세로 가는 길'을 구해서 읽었다. 그 책에서 정여울 작가는 헤세가 거주했던 독일과 스위스를 여행하며 자신만의 단편적인 감상과 해석을 남겼고, ’수레바퀴 아래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데미안‘, ’싯다르타‘, 이렇게 네 작품에 대해서는 융의 정신분석학적 통찰을 빌려 전문가다운 서평을 남겼다. 2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그 책을 떠올리면, 헤세의 흔적을 쫓으며 치열하게, 그러나 정갈하게 글을 써낸 정여울 작가의 설렘 가득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헤세를 읽으며 내면의 치유를 경험했고, 헤세를 ..
누군가의 그림자를 온전히 끌어안아 본 적이 있는가한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건 그 사람의 그림자마저도 끌어안는 것이다. 낭만화된 사랑에 도취된 이들은 모를 것이다. 한 사람의 결핍을 끌어안는다는 건 그 사람을 안다는 말과 같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을 온전히 알기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스스로도 모르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저 깊은 곳에 있는 내 그림자를 타자가 알아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 여기 누군가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기 위한 사전작업이 있다. 내가 쌓아 올리고 모은 빛들에 가려져 깊숙이 숨어있는 내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러면 간단한 명제가 성립된다. 나를 끌어안지 못한 자는 타자도 끌어안을 수 없다는 것. 나를 알지 못하면 타자도 나를..
공정에 객관성을최재천 교수는 이 시대에 양심이라는 단어가 사라져 간다고 지적하며 공평이 양심을 만나야 비로소 공정이 된다고 역설했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공평은 공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 사람의 특성을 반영하는 도덕적 가치 판단, 즉 양심이 가세해야 정의가 실현되고 비로소 공정이 된다는 것이다. 가진 자들에게 꼭 들려져야 할 목소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공정이라는 개념을 과연 우린 일상에서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혹시 내가 받는 대우, 아니 내가 받아야만 하는 대우가 얼마나 합당했는지에 따라 공정을 정의하고 있진 않을까. 타자에게 행해야 할 공정이 아닌 타자가 나에게 행해야만 할 공정만을 따지고 있진 않을까. 정도만 다를 뿐 자기중심적이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일지 모른다. 공평..
자살할 결심섬뜩하지요? ㅋㅋㅋ 그렇다면 제목에 한 번 낚여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영화 '콘클라베'를 보고 새 교황이 되는 베니테즈 추기경의 생물학적 비밀이 궁금하셨다면 꼭 읽어보세요~ 아래에 관련 부분을 살짝 발췌합니다."혹시 영화 '콘클라베'를 본 적이 있는가?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는 베니테즈 추기경은 남다른 신체적 비밀을 가지고 있다. ........ 영화에서는 베니테즈 추기경이 끝내 자궁 적출 수술을 포기했다는 사실만이 언급되기 때문에 그의 정확한 선천성 기형명을 알 수 없지만, 가능성 높은 것 중 하나는 '지속성 뮐러관 증후군(Persistent Müllerian Duct Syndrome)'이다. 이 드문 증후군은 베니테즈 추기경처럼 정상적인 남성이지만, 즉 여느 남성처..

**맨 아래에 링크 클릭하시면 신청하실 수 있어요~ 다들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정원 50명이니 얼른 신청하세요~**(2025년 제2회)과학자의 서재 속으로: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 「세포처럼 나이들 수 있다면」프로그램 일시: 2025.05.28 14:00 ~ 2025.05.28 16:00프로그램 장소: IBS 과학문화센터 3층 사이언스라운지■ 사전 질의 등록: https://bit.ly/ibs_library■ 참가비: 무료■ 기타사항 - 사전 참여 신청시 추첨을 통하여 주제 도서 제공 - 행사 당일 잔여 좌석이 남아있는 경우에 한하여 현장 접수 및 참여 가능 ※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하여 프로그램 시작 10분전까지 도착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여신청 후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다음 행..

Embrace: 내면의 야생을 사랑하기크리스타 K. 토마슨 저, '악마와 함께 춤을'을 읽고분노, 시기, 질투, 앙심, 경멸. 듣기만 해도 몸서리치는 사람도 있을 테다. 흔히 우리가 부정적인 혹은 나쁜 감정이라고 하는, 그래서 없애야만 하고, 없앨 수 없으면 피해야 하고, 피할 수 없으면 인내심을 발휘하여 적절히(?) 억눌러야 한다고 느끼는 것들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감정들이 정말 나쁜 것일까? 정말 우리와 우리 삶을 위협하거나 파괴하는 것일까? 혹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은 그 누명을 벗기고 본래의 의미를 회복시키며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삶, 균형 잡힌 삶, 깊고 풍성한 삶을 위해 이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건강한 정원에는 지렁이가 산다. 지렁이는 비 온 다음날 눈에 잘 띄..
평범함의 정의책을 읽다 보면 어떤 문장이 훅 하며 들어올 때가 있는데 아래에 발췌한 부분이 그랬다. | 모든 폭도의 중심에 평범한 사람의 무리가 있다면, 뒤틀리고 증오에 찬 모든 세계관의 중심에는 평범한 사람의 분노가 있다. |평범한 사람, 그리고 평범한 사람의 분노, 이 두 표현을 보며 평범하다는 것의 의미와 평범한 사람의 정체성을 생각했다. 순간 혼란스러웠다.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박하게 들리는 동시에 조금만 생각하면 이 시대에 정말 달성하기 힘든 것 같은 꿈을 곧바로 떠올렸던 탓이다. 발췌한 문장 속의 평범한 사람과 내가 떠올린 꿈속의 평범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처음엔 혼란스러움을 잠재우려 했다. 그러다가 몇 분 후, 둘 부류는 결국 같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의혹이 들었다..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연휴마다 두꺼운 책 한두 권 읽는 습관을 쫓아 어제 손에 든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이다. 첫 결혼에서 아내와의 사별 후 도스토옙스키가 맞이한 두 번째 아내 안나 도스토옙스카야가 쓴 회고록이다. 저자가 안나라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 한국에 오자마자 책장에 들였던 기억이 난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곤 하는데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들은 주로 후기에 속한다. 참고로 '죄와 벌'이라든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모두 후기 작품이다. 전, 중, 후 가릴 것 없이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모두 저마다의 개성과 맥락으로 사랑하는 나도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후기작이 도스토옙스키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하나님이 흔적이 드러나는 삶전신근, 제행신 공저, '이런 결혼, 어때?'를 읽고기다리던 택배 상자를 뜯자마자 책이 아닌 책과 함께 동봉된 저자의 손편지에 손이 먼저 갔다. 정성이 느껴졌다. 아무리 작더라도 작가의 진심은 독자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주는 법이다. 얼마 만에 받아보는 손편지인가 하며 나는 가능한 천천히 읽었고, 아쉬워서 또 한 번 읽었다. 이 편지를 쓰기 위해 저자가 독자 한 분 한 분을 마음속에 떠올리며 보냈을 시간들이 그려졌다. 감사가 일었다. 갓 출간된 이 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2023년 10월 초 상봉몰에서 저자를 딱 한 번 뵌 적이 있다. 내 세 번째 저서 출간 기념으로 열린 조촐한 북토크에 일부러 발걸음을 해주신 날이었다. 남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 주..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한강 작가가 던졌던 질문이다. 그녀는 여러 번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과거와 현재, 죽은 자와 산 자, 이 두 가지 대조는 읽기, 즉 독서에서도 유효하다. 내가 읽어 나가는 책의 대부분은, 그러니까 팔 할 이상은, 이미 죽은 자가 쓴 텍스트들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스토옙스키와 헤세를 비롯한 모든 고전문학 작가들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모두 죽은 자들이다. 나는 죽은 자들이 남긴 글들, 즉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고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지식을 전수받기도 하며 감동을 받기도 한다. 죽은 자는 산 자인 나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는다. 미래의 산 자에게 현재의 산 자인 나는 죽은 자가 ..
읽고 쓰는 삶, 깊고 풍성한 삶“의사나 경찰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폴 오스터, 빵 굽는 타자기 262페이지에서 발췌)글쓰기에 차츰 눈을 떠 나갈 때 여러 글쓰기 책들을 탐닉했다. 그러다가 인터넷 서핑에서 이 문장을 만났고, 작가라는 단어에 어떤 환상을 부여하고 있던 그 당시의 나는 나 역시 선택받은 것인가 하는 기대 반 망상 반으로 흥분이 되었다. 작가 문지혁도 저 문장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역시 지금은 저 문장을 진리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동시에 저 문장이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작가는 다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한강 작가와 작품을 듣다한강 저, ‘빛과 실’을 읽고손바닥 만한 크기에 백육십 페이지 남짓 되는, 여백도 많아 왠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읽으며 그 공간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이 책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과 소감, 미발표된 여러 편의 시, 산문, 일기들을 담고 있다. 한강 작가의 주요 작품만 읽어본 독자로서 함부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한강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진지한 적적함과 읊조리는 듯한 농밀한 텍스트들은 소설이 아닌 산문에서도 여전했다. 한강 작가 특유의 문체를 맛보는 것만 해도 즐거운 독서였다. 그러나 내가 주의 깊게 읽었던 부분은 수상 강연문이었다. 작가가 직접 말해주는 여러 작품들 (‘채식주의자’부터 ‘작별하지 않는다’까지)의 해제랄까, 탄생 배경이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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