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절박함, 글쓰기 가끔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현실감이 떨어질 때가 있다. 익숙하던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생각 없이 하던 행동들도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진다. 기억이라는 게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닿을 때 즈음이면 모든 걸 잃어버릴 것처럼 더럭 겁도 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지금 이 순간을 더 누리고 사랑해야겠다고 절박함을 느낀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나는 잃는 것, 잃을 것,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의 경계와 지키고 싶은 것, 지켜내야만 할 것들의 경계가 아주 조금씩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기억을 잃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사랑하던 모든 것은 기억 안에 저장되어 있는 걸까. 기억 안에 저장되지 못하는 것들도 있을까.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읽기의 방식들 (5): 자기 강화와 자기 겸손독서의 목적을 말하라고 하면 대부분은 지식과 기술의 습득을 들거나 유희라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누군가는 자기 강화라는 지점에 다다르고, 또 누군가는 자기 겸손이라는 지점에 다다른다. 왜 그럴까? 지식과 기술의 습득은 ‘읽기의 방식들 (1) 문학과 비문학’ 편에서 다뤘기 때문에 이 글에선 유희라는 관점에서 좀 더 풀어보겠다. 유희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노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유희에는 일차적인 혹은 즉흥적이고 즉각적인 유희가 있는가 하면, 이차적인 혹은 텍스트를 읽은 후 시간차를 두고 나중에서야 깨닫거나 느끼게 되는, 즉 연기되는 혹은 미끄러지는 유희가 있다. 일차적인 유희는 즉각적인 공감..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_’장 폴 사르트르, 타자를 발견하다’를 읽고타자와 시선사르트르 강의를 맡은 저자는 타자의 개념이 어느 정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면서도 주변부로 밀려났던 타자의 나에 대한 반격은 사르트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 이후 타자는 메를로 퐁티, 레비나스, 라캉, 리쾨르, 들뢰즈에 의해서 20세기 중후반 인문학 담론을 결정짓는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고도 말한다. 프랑스 현대철학을 사르트르의 타자론으로 시작하는 건 이런 면에서 적절해 보인다. 그의 주저서는 '존재와 무'이지만 내가 읽을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대신 이렇게 짧게 개념들을 정리해 주는 이차 저작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이삼십 페이지의 짧은 분량이지만, 두세 번 반복해서 천천히 읽고, 궁금한 부..
뒤늦은 실감장강명 저, ‘서성이다‘를 읽고밀려드는 감정이 아닌 차오르는 감정은 실감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리는 걸까. 아니 어른이 되고 나서 인간은 실감이란 걸 제대로 할 수나 있는 걸까. 어른 인간은 이미 와 버린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성이라는 여과지를 통해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그걸 이성이라고 부를 수나 있는 걸까. 사람을 무뎌지게 만드는 이성 따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지부조화일까. 혹시 감정 불능은 아닐까. 혹시 소시오패스는 아닐까. 소설가 장강명은 어느 날 인지적 벼락을 맞는다. 불치병인 교모세포종이라는 뇌종양이 아내의 머릿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흐드러졌던 벚꽃이 다 졌던 2025년 4월 말이었다. 소설 속 안시찬은 장강명..
유연함과 고지식함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건 카멜레온 같은 유연함보다는 곰 같은 고지식함이다. 효율 혹은 가성비만 따지는 영민한 이들은 중간에서 쉽게 포기한다. 계산기 두드리기에 손이 빨라 안 될 게 뻔하다는 결론에 금세 다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눈은 멀리 보지 못한다. 그 결과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다. 자신의 합리화 기제와 은밀한 게으름을 빼면 이들의 내면은 텅 비어있다.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다는 건, 미련할 정도로 묵묵히 무언가를 사수할 줄 안다는 건 복 중의 복이다.루틴을 가진 사람이 좋다. 얼마나 사람들과 유연하게 어울릴 수 있는지가 한땐 가장 중요한 능력 같아 보였다. 아마도 나의 부족한 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과 ..
읽기의 방식들 (4): 고전과 현대이번엔 문학 읽기에 대해서다. 주로 소설에 대해서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고전파, 다른 하나는 현대파. 물론 고전파가 현대소설을 읽지 않는 것도 아니고, 현대파가 고전소설을 읽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구분이 되며 주로 읽는 소설은 정해져 있다. 참고로 나는 고전파에 속한다. 현대소설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내가 현대소설보다 고전소설을 좋아하고 주로 읽는 이유는 고전소설만이 선사하는 맛이 따로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대소설은 고전소설에 비해 자극적인 것 같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묘사보다는 서사에 치중한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인간이나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
읽기의 방식들 (3): 추천작과 전작 읽기어떤 책을 읽을까? 이 질문은 독서에 입문한 사람만이 아니라 독서가 일상이 된 사람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무리 재미있고 유익하더라도 책은 마지막 페이지가 있다. 거기에 다다르면 그동안 그 책과 함께했던 시간과 공간들이 떠오르고 잠시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에 어떤 책을 또 읽을지 고민하게 된다. 물론 리스트를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읽어 나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게 어디 리스트 순서대로 따라가게 되던가. 진지한 작품들을 읽다가도 외도를 하듯 웹툰이나 만화책을 볼 수도 있고, 추리소설 같은 장르소설로 환기를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작 리스트에 올렸던 작품들이 점점 멀어지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재..
읽기의 방식들 (2): 직렬과 병렬한 권을 읽을 때가 아닌 여러 권을 연달아 읽을 때 드러나는 독서의 방식이 있다.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여기에서는 편의상 직렬 독서와 병렬 독서라고 하자. 직렬 독서는 한 권을 다 읽고 그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방식이고, 병렬 독서는 한 권을 다 읽기 전에 다른 책을 함께 읽어 나가는 방식이다. 때에 따라 함께 읽어 나가는 책이 한 권이 아니라 두세 권을 넘기기도 한다. 참고로 나 같은 경우는 보통 네 권 정도를 병렬로 읽어 나간다. 직렬 독서의 장점은 책임감 있는 집중력에 있다. 다음 책을 읽기 전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 걸어 두고 읽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책들의 내용과 중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그 책 한 권만 읽고 생각하고 또 읽고 또 생각하고..
읽기의 방식들 (1): 문학과 비문학읽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여기에서 읽기란 독서를 말한다. 책을 읽는 것 말이다. 요즘엔 워낙 책 읽는 사람이 드물어 이런 걸 따져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뭐 한두 명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렇게 쓰면서 내가 정리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본다. 먼저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 두 부류의 경계가 흐려진 감이 없진 않지만, 여기에서 문학이란 주로 소설을 뜻하고 시, 희곡, 에세이도 포함한다. 소설 역시 순수 소설과 장르 소설로 나뉜다고 하지만, 여기에선 하나로 보기로 한다. 소설을 주로 읽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소설만 읽는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비문학, 그러니까 인문학, 철학, 신학,..
흥미로운 그러나 공감할 수 없는스즈키 유이 저,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읽고무명 혹은 신진 작가에게만 주어지는 아쿠타가와 상을 거머쥔 이 유명한 작품은 평론가를 포함하여 여러 매체와 지면에서 칭찬 일색이었다. 그것들을 보고 나는 의문이 들었고 직접 확인하고 싶어 수개월 전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단순히 이 책이 왜 유명한지가 아니었다. 언론을 도배한 글들은 작품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작가의 젊은 나이와 그의 독특한 이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작품에 대해서는 어디서 베꼈는지 대동소이한 몇 줄로 일축되어 있어 도저히 이 소설이 어떤 작품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량도 길지 않을뿐더러 마침 배송비 무료 혜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주어져 덥석 구매하고 말았다. 액자식 ..
과학과 신앙, 하나만 선택할 필요 없다존 레녹스, 케이티 모건 공저, '과학과 하나님'을 읽고손에 딱 잡히는 판형에 걸맞게 한 시간 채 걸리지 않아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 독자의 시선은 달라지는 법이기에 나는 책을 읽은 후에는 읽기 전에 놓친 게 없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도 그 오랜 습관을 좇아 책을 덮고 앞표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왼쪽 위에는 이중나선 구조의 DNA가 보이고, 오른쪽 위에는 토성 같아 보이는 띠를 두른 행성 하나가 그려져 있다. 각각 생물학과 천체물리학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는 기원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생명의 기원과 우주의 기원 말이다. 오래전부터 이 문제는 과학만이 아니라 종교도 깊이 관여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이 ..
지난한 반복: 열정, 인내, 희생며칠 전 500번째 감상문을 남겼다. #김영웅의책과일상 이라는 해쉬태그로 감상문을 쓰기 시작한 건 10년 전이었다. 10년 만에 500개이니 대충 계산해도 평균 1년에 50개의 감상문을 썼다는 얘기다. 1년이 52주이니 평균 일주일에 한 편 정도 꾸준히 써왔단 얘기도 된다. 나는 개수보다 10년이라는 기간에 주목한다. 나이 들어가며 점점 더 진리로 다가오는 것 중 하나가 성실한 지속의 힘이기 때문이다. 루틴의 힘. 그 지난한 반복의 힘. 이 힘은 여러 가지 작은 힘으로 이뤄진다. 열정, 인내, 희생, 이 세 가지 힘으로. 열정은 무언가를 시작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다. 하지만 많은 일들은 시작만 하고 오래 이어지지 못하는데 그건 인내의 부재 때문이다. 인내는 그 어떤 것이..
똑똑한 사람들의 담합“너는 그 사람 말만 듣고 동수를 그렇게 판단해도 된다고 생각해? 동수가 그럴 만한 사람이란 건 동의하지만, 그건 다른 얘기잖아.“ 지혜가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어떻게 행동 하나하나를 다 확인할 수 있냐? 그리고 그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이잖아.“ 철규가 대답했다. ”난 아니라고 봐. 그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말하는 게 다 진실이라는 법은 없잖아. 그 사람도 사람이라 동수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사람이 안 좋은 일을 겪고 나면 한 쪽으로 치우쳐서 얘기하기도 하잖아. 거짓말은 아니더라도 전체 맥락을 빼놓고 부분만 선택적으로 얘기하면 충분히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거나 악마로 만들 수도 있지.“ 지혜가 정색하며 대꾸했다. ”그럼 너는 그 사람을 신뢰하..
신이 잠시 머물다 간 어느 날의 풍경“정말 지겨워.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밖에 없잖아. 탈출하고 싶어.” 통창을 통해 번잡한 시내를 멍하니 바라보다 한 젊은이가 말했다. 옆에서 가만히 뜨개질을 하며 듣고 있던 할머니가 안경을 올리면서 조용히 웃으면서 말씀하셨다.“저게 평화란다. 그토록 바라던 평화.”젊은이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의자를 박차고 문을 확 열어젖힌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대신 할머니의 말은 그때 내 가슴팍에 정확히 꽂혔다. 눈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할 것들에 무뎌질 대로 무뎌진 내 모습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토록 바라던 것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을 얻지 못한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부끄럽던지!대기하는 시간이 다..
카르페 디엠일상의 사소한 감동들이 삶을 반짝이게 한다.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감사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한다. 그 잔열이 긍정적인 마음을 식지 않게 한다. 삶이 버텨지게 한다. 반면 거대한 일은 성취하는 순간 찰나의 기쁨을 남긴다. 그러나 빠르게 부푼 풍선이 바람 빠지듯 기쁨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나면 그 거대함 만큼의 공허가 깃든다. 성공했으나 실패한 것 같은 그 묘한 기분은 경험한 자만이 아는 역설이다. 없다가 생겨난 그 공허는 허기를 불러일으킨다. 허기는 욕망으로, 욕망은 더 거대한 일을 갈구하게 만든다. 그에 따른 공허 역시 거대해질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그래서 소중한 것들을 많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중독이란 조절 능력을 벗어난 상태에서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
**#김영웅의책과일상 500번 째 감상문입니다. Yay!** 입체적인 빌드업이 돋보이는 범죄소설장강명 저, ‘재수사’를 읽고"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여는 이 문장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책을 두 번 이상 정독했지만, 주인공의 사상이 듬뿍 담긴 1부를 여전히 나는 다 이해하지 못한다. 2부를 거울삼아 다시 1부로 돌아왔을 때 그나마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였다. 장강명의 ‘재수사’를 펼치자마자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는 렌즈를 착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결코 예사롭지 않겠구나, 하고 예감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문장이 이어진다. “나는 22년..
일상 속 수도원헨리 나우웬 저, '제네시 일기'를 읽고이 책은 헨리 나우웬이 일곱 달 동안 머문 제네시 수도원에서 거의 매일 써나갔던 기록이다. 그는 1974년 6월부터 12월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제네시 수도원은 기도와 참회, 침묵과 노동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전 세계에 흩어진 약 85개의 가톨릭교회 소속 트라피스트 수도원 중 하나로써 미국 뉴욕주 북부 피파드에 위치한다.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 헨리 나우웬은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성찰한다. "하나님과 더불어 지내기보다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했는지 모른다. 기도에 관한 글을 쓰기에 바빠서 기도할 여유가 없었는지 모른다. 주님의 사랑보다 인간의 칭찬에 관심이 많았는지 모른다. 거룩한 언약에 기대어 자유를 누리기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기대에 얽매인..
눈이 깊은 사람독서모임 ’인생책방’과 함께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그리고 온라인 독서모임 그믐에서 함께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 나름대로의 생각이 정리되었다. 또 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 현재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게 남아 있은 삶은 ‘초연함과 충만함의 중첩을 맘껏 누리는 삶‘이 되면 좋겠다고. 초연함이 지혜로운 어른의 시선을 대변한다면, 충만함은 순수한 아이의 시선을 대변한다. 대립되는 것 같은 이 두 시선을 구부려 비록 합일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가능한 많은 중첩을 경험하며 살고 싶다. 선택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작은 일들에는 마치 그 순간이 영원한 것처럼 (슬픈 일엔 슬퍼하고, 기쁜 일엔 기뻐할 수 있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몰입하고, ..
인간 도스토옙스키박영은 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책을 다 읽고 잠시 상념에 잠겼다. 도스토옙스키라는 이름이 내 인생에 남긴 많은 흔적들에 대해 생각했다. 독서의 마무리로 감상문을 작성하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되었다. 기록을 훑어보니 내가 도스토옙스키를 제대로 읽기 시작했던 시기는 2019년 3월이다. 지금이 2026년 7월이니 7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동안 나는 한국어로 번역된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거의 다 읽었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단편을 제외한 중장편 소설은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독서모임과 함께 다시 읽었으며, 그 기록들을 독서모임과 같은 이름을 가진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내게 이 7년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였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러시아 문학 전..
전업 소설가 하루키의 철학무라카미 하루키 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이 책을 읽기 전이라면 제목이 '소설가라는 직업'이 아니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전자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일반론을 떠올리게 하지만, 후자는 하루키의 철학이 그대로 담긴, 요컨대 ‘전업 소설가’에 대한 하루키의 특수론 내지는 고유론으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둘의 차이를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이 책을 집어든 것도 전자의 내용이리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책은 하루키 냄새가 풀풀 나는 책이었다. 하루키라는 사람이 소설가가 되었던 과정(한 마디로 운명이라는 거다. 그 운명 이후 찾아온 운, 그 운 덕분에 생겨난 자기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은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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