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없는 선?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하나님 나라?바트 캠폴로, 토니 캠폴로 공저, '내가 떠난 이유, 내가 남은 이유'를 읽고신앙생활을 함께 하다 보면 떠나는 사람도 있고 남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기를 택한 사람은 떠나는 이에게 왜 떠나는지 묻고, 떠나기를 택한 사람은 남은 이에게 왜 남아 있는지를 묻습니다. 이런 일화를 한두 차례 이상 듣게 되면 자문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떠난 이는 자신이 왜 떠났는지를 묻게 되고, 남은 이는 자신이 왜 남았는지를 묻게 되지요. 문제는 이 질문이 양쪽 모두에게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계속 묻고 싶지요.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어느 선택이 선이고 악인지 말입니다. 글쎄요. 한쪽에 치우..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_’한나 아렌트, 전체주의를 넘어 정치의 길을 보다’를 읽고진리가 아닌 의견: 정치 회복의 중요성내가 아는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부터 ‘악의 평범성’ 개념을 도출한 사람이라는 것, 하이데거와 연인 사이였다는 것, 그리고 정치철학자였다는 것 정도였다. 모두 어디에서 주워들은 것들이다. 한 사람을 띄엄띄엄 보면, 혹은 조각조각만 알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왜곡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이 챕터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악의 평범성은 여러 번 곱씹어 보기도 하고 다양한 맥락에 적용하기도 하면서 얼추 ‘사유의 불능’ 혹은 '무사유'라는 핵심을 이해한 것 같긴 하다.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호위호식하며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 역시 무사유로 소급할 수 있다는 것도 ..
인간답게 솔직하게 당당하게칭찬은 아무리 들어도 부족하고 질책은 한 번만 들어도 버겁게 느껴진다. 그렇더라도 칭찬에 굶주린 욕망 덩어리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버겁더라도 질책을 듣고 포기하지 않는 깡다구를 부리는 쪽이 낫다. 진정 무언가를 소유한 사람은 대부분 사람들의 칭찬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적어도 자신을 진정하게 평가한 말로 듣지는 않는다. 다만 칭찬하는 사람의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할 뿐이다. 대부분의 칭찬은 가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언젠가부터 짙어진 것 같다. 마치 미국에서 잘 모르는 사람한테 “How are you?"라고 물은 후 대답엔 아무 관심도 없는 것과 같다. 방점은 질문에만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각장애인들의 교회양진철 저,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이지 않는 세상 보이는 하나님'을 읽고탁, 탁탁, 탁, 탁탁탁… 땅을 두드리는 소리다. 흰지팡이가 내는 구별된 소리. 우리나라에는 주일 아침마다 분주한 주차 안내 대신 이 소리로 가득해지는 교회가 있다. 시각장애인이 전체의 약 칠십 퍼센트를 차지하는 교회, 주일날 지휘자도 지휘봉도 없는 찬양대가 그 어떤 찬양대보다 아름다운 화음으로 찬양하는 교회,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보이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교회. 이곳은 1981년 시각장애인의 복음화를 위해 세워진 애능중앙교회다. 이 교회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의 저자 양진철 목사다. 그가 처음부터 목사였던 건 아니다. 그 역시 한때 잃어버린 한 마..
인생의 힘미야모토 테루는 외적 우연을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생명의 힘이라고 했다. 번역의 문제인지 모르지만 내겐 착 와닿지 않았다. 생명의 힘이 아니라 인생의 힘 혹은 지혜, 연륜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Life는 생명이기도 하지만 인생이기도 한 것처럼.그는 종교가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통찰을 할 수 있었다는 건 그가 천상 작가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삶의 껍데기가 아닌 그 안을 들여다 보고 의미를 찾고 곱씹는 자세가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통찰이라 믿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인 나는 저 문장을 하나님의 계획 혹은 섭리로 읽는다. 우연을 가장하여 다가오는 필연적인 사건들, 만남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이기도 하다. 신앙을 가지든 가지지 않든, 혹은 운명을 믿든 믿지 않든..
아련함의 깊이미야모토 테루 저, '그냥 믿어주는 일'을 읽고'환상의 빛'을 읽고 한동안 먹먹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과 해석되지 않는 뒷모습이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짧은 중편소설이었지만 단편소설이 미처 주지 못하는 완성감과 무게감, 그리고 장편소설이 해내지 못하는 압축감이 묘하게 어우러져 잔상을 오래 남기는 작품이기도 했다. 작품 하나로 작가가 좋아지는 일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전작을 읽고 싶어질 정도라면 더욱더.5년 전 이 무렵 '생의 실루엣'이라는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 나는 미국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즉각 구매하여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가 혹은 시인이 쓴 에세이는 나에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최상위 목록에 오른다. 언제나 읽을 것..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한 전도사김정아 저, ‘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를 읽고‘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출간 수개월 전 보도된 한 신문기사를 기억한다.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하는 독자, 아니 덕후로서 내게 그 신문기사는 충격, 아니 경이로 다가왔다. 한 사람이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을 모두 완역하다니! 그것도 10년이나 걸려서! 입이 벌어졌다. 잠시 가짜 뉴스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잠시 후 사실인 걸 확인하고 한동안 멍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번역된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은 여러 출판사 버전이 존재한다. 번역가는 제2의 저자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한 사람의 목소리로 통일성이 부여된 김정아 박사의 번역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또한 4대 장편은 각각 독립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철학과 ..
‘부러’ vs. ‘일부러’'부러'와 '일부러'는 모두 표준어이지만, 담고 있는 속뜻과 사용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이 '부러'를 '일부러'의 줄임말로 생각하지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두 단어는 별개의 단어다.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일부러’는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굳이 행동하거나 속마음을 숨기고 행동할 때 사용한다. 예문1) 목적이 있을 때: "너를 만나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왔어."예문2) 마음을 숨길 때: "창피해서 일부러 못 본 척했다."이에 반하여 ‘부러’는 ‘실없이 거짓으로'라는 뜻이 강하며, '일부러'보다 조금 더 문학적이거나 행동의 의도를 강조할 때 쓰인다. 예문1) 거짓 상황일 때: "돈이 없으면서 부러 있는 체를 한다."예문2) 딴청을 피울 때: "다 알면서도 부러 딴소리를 ..
절대 배신하지 않는 것능력이 모자라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때, 여건이 허락하면 능력을 더 키워서 끝까지 마무리하면 되고,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겸손하게 거기에서 멈추고 내려오면 된다. 억울할 일은 없다. 하지만 체력이 모자라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게 된다면 억울할 것 같다. 능력도 있고 여건도 갖춰져 있는데 체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두고두고 미련이 남을 것이다.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은 체력에서 온다. 노화가 이미 시작되고,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은 나이라면 체력의 가치는 갑절의 갑절이 된다. 그 잘났던 능력으로도, 그렇게 떵떵거리던 돈으로도, 허구한 날 자랑하던 인맥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체력은 주사 한 방으로 얻을 수도 없고, 어떤 깨달음에 도..
모든 독자, 모든 작가의 필독서스티븐 킹 저, ‘빌리 서머스’를 읽고글쓰기를 시작한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읽는 책, 그중 누군가에겐 글쓰기 교본으로 자리 잡게 되는 책, 만약 글쓰기 책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아마도 가장 많은 표를 받게 될 것 같은 책, 출간된 지 26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글쓰기 책 탑 쓰리 (누군가에겐 부동의 넘버 원) 안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책, 바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다. 1947년생, 올해 79세를 맞이한 스티븐 킹은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린다. 한국에서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공포소설의 거장 정도로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소설은 열 편이 훌쩍 넘을 정도로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아니, 이것도 스티븐 킹이었어..
가벼워진다는 것마감이 다가오는 이런저런 글을 쓰기도 하고, 막힐 때면 옆방으로 건너가 책을 읽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바깥이 어두워져 있기도 하고, 식사시간도, 달리러 나갈 시간도 훌쩍 지나가 있다. 아무 약속 없는 텅 빈 휴일의 내 모습이다. 이런 하루를 그토록 원했지만 어딘가 허전한 기분은 혼자이면 안 되는데 혼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외로움은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도 않는 이에게도 찾아온다.달리기 덕분에 4킬로그램을 감량했다. 몸이 가벼워진다는 건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이제 반올림하면 앞자리가 바뀌지 않는다. 이십 년 전 몸무게다.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샤워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거울 앞에 섰을 때다. 두세 달 전까지만 해도 미련한 비갯덩어리들이 배 주위에 출렁거렸다. 그것들이 상당히 많이 사라졌..
머뭇거림은 믿음으로, 믿음은 확신으로최은영 저, '백지 앞에서'를 읽고신간을 구매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주로 작가에 대한 신뢰, 출판사에 대한 신뢰, 그리고 책의 제목, 이렇게 세 가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최은영의 여섯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산문집 '백지 앞에서'는 이 셋을 모두 충족시켰다. 마흔을 넘길 무렵 나는 다시 독서의 세계로 들어왔다. 매일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며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 그리고 신간을 훑어보곤 했다. 그즈음이었다.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이 2년의 시간차를 두고 출간되었다. 최은영이라는 낯선 이름이었다. 문학을 막 다시 읽기 시작했던 시기였고 단편집보다는 호흡이 긴 장편을 선호하는 나는 두 책을 보관함에만 두고 장바구니에 담진 않았다. 2..
경계 위에 서서 그것을 끌어안는 삶에스더 드발 저, '경계를 살다'를 읽고켈트 세계에서 하루는 떠오르는 태양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가는 그 경계의 순간을 기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반복되지만 결코 똑같지 않은 하루를 감사함으로 맞이하는 의식이다. 어릴 적부터 박명의 순간을 동경했다. 해뜨기 전이나 해 진 후 빛으로 밝은 상태는 언제나 신비로 다가왔다. 아직 오지 않았으나 이미 와 있는 빛, 이미 사라졌으나 아직 남아 있는 빛의 시간. 경계가 있는 풍광을 머릿속에 그리거나, ‘문턱은 거룩한 곳‘이라는 말을 묵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였다. 경계는 지금도 내겐 신비로 다가온다. 잉글랜드와 웨일즈 사이의 접경지에서 쓰인 이 책은 비단 지리적인 문턱만이 아닌 여러 은유..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_’부정당하면서도 전진하는 사유의 찬란함, 테오도르 아도르노’를 읽고이론과 실천의 관계이론은 실천됨으로써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 그 자체로써 검증되고 천착돼야 할 만큼 '이론적인 문제' 역시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한 철학자. 포이에르바하의 테제 "이제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설해왔을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에 "어쩌면 실천적인 이행을 예고했던 해설이 불충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라며 맞장을 떴던 철학자. 아도르노. 아도르노를 스무 페이지로 간략하게 훑어보며 내겐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포이에르바하의 테제도, 아도르노의 재해석도 모두 틀리지 않다..
무사유적 순응의 악함에 대하여| 지상에서의 진리는 온전한 진리가 아니며, 결코 그렇게 되기를 바랄 수도 없다. … 하느님께서는 종교보다 광대하다. 나는 나와 닮지 않은 사람, 나와 다른 언어, 다른 믿음,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 안에서도 하느님의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 형상대로 새롭게 빚어가도록 허용하지 못하고, 도리어 하느님을 내 모습대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 - 조너선 색스 저, '차이의 존엄(존중)' 에서 발췌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머리로만 끄덕이고 실제 삶에서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지 않을까 싶다. 우린 자꾸 우리 편 만들기에 급급하다. 나와 같은 생각, 같은 언어, 같은 믿음,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들로만 이뤄진 갇힌 ..
진정성이 빠진 인정과 칭찬원하든 원치 않든 누구나 어느 시기에 어느 정도는 성장을 한다. 때론 스스로도 인지할 수 있을 만큼의 변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누군가는 말한다. 인정과 칭찬이 그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그러나 나의 성장은 인정과 칭찬이 아니었다. 무관심과 오해, 차별과 배제였다. 인정과 칭찬은 사람을 성장시키기보다는 멈춰 세운다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요즈음 시대의 인정과 칭찬은 그리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들 너무나 스스로의 이미지를 가꾸는 데 능수능란하기에 상대방에게 좋을 것 같은 말이면 마음에 없어도 해버리는 위선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선의 일상화랄까. 상대적으로 이런 위선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종종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재미있는 건 그..
멈추는 순간- 확실성과 불확실성책을 읽는 한 가지 이유는 멈추기 위해서다. 반강제적으로 나를 멈추게 만드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그런 문장을 만나는 날이면 더 이상 책은 읽지 않아도 된다. 그날의 책은 다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장 앞에서 멈추게 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그때그때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단순한 기분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책을 읽을 때의 나는 의식적인 나뿐만이 아닌 무의식적인 나도 함께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후자의 내가 문장을 먼저 감지하고, 전자의 나는 이후의 반응을 담당할 뿐일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이 문장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 … 과거에는 분명히 선하고 옳았던 것들이라도, 어느 시점에는 그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다. 그것들이 오..
허세, 무모함, 그리고 믿음때론 허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무모함도 마찬가지다. 무풍지대와 같은 단조로운 삶에 신선한 바람을 주입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세만 부린다거나 무모하기만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인간이라는 독특한 종의 다채로운 캐릭터를 감안한다면 이 둘은 다양성의 한 조각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되곤 한다. 잘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버렸을 때의 그 황당한 거짓말은 종종 내 안에 숨어있던 나를 일깨워 실제로 그 일을 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세는 무모함과 찰떡궁합이다. 돈키호테적인 이런 특징은 대부분 실패를 가져다주는 게 현실이지만, 때론 그 실패가 성공으로 이끄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의..
어쩌다 매일 읽고 쓰고 달리게 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매일 하는 일이 있다. 읽고 쓰고 운동하기. 약 십 년 전부터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내겐 일종의 구원의 통로였다. 인생에서 아주 잠깐 잘 나가던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실패를 몰랐다. 책을 읽느니 차라리 논문을 읽었다. 글을 쓰느니 논문의 초고를 쓰거나 발표 자료를 준비했다. 집중력이나 지속력이 아닌 오직 재미를 위해 운동을 했다. 당연히 삶의 균형은 없었다. 있을 수가 없었다. 일에 치우친 삶을 성공자의 그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목표는 피라미드 상층부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철저한 성공지향적인 가치관에 이끌렸다...
닻 같은 문장들- 준비 중인 원고들가끔은 흔들리는 나를 단단히 붙잡아줄 닻 같은 문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단 한 번이라도 이런 걸 경험한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런 문장은 의외로 찾기 어렵다는 것.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그동안 책을 읽으며 놓친 문장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그것들만 잘 모아놓았더라도 필요할 때 하나씩 끄집어내어 알사탕 까먹듯 야금야금 써먹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책을 읽을 때면 예전과 똑같이 아무런 문장도 수집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적잖이 실망한 적도 많을 것이다. 왜 흔들리지 않을 땐 무감각해지는 걸까. 왜 평화로운 땐 아무런 생각도 다짐도 기억나지 않는 걸까. 게을러지기 위해 안정과 평화를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왜 나는 안정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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