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때| 영감은 창작의 실마리가 아니라 매듭이다. 고민하고 애쓰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창작자의 작업실로 찾아와 한 세계를 완성하게 하는 것이 영감이다. 신은 흙으로 만들어진 형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 역은 아니다. 창작자의 고민과 수고의 산물인 흙의 형상이 있어야 신은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영감에 의지해서 자동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작가의 지난한 수고의 과정 속으로 영감이, 은총처럼 임한다. |- 이승우 저, ‘고요한 읽기’ 46-47 페이지에서 발췌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필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장을 만났다. 작가노트에 조용히 옮겨 적는다. 종종 반짝이지 않아도 내면 깊숙한 곳으로 훅 들어오는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어떤 은총을 체험한다. 어떤 작가의 고민과 수고의 산..

이야기보다 이야기꾼이 더 드러나는 작품무라카미 하루키 저, ‘일인칭 단수’를 읽고1. 돌베개에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거기엔 어떤 공통된 정서가 흐르는 것 같다. 이 짧은 단편을 읽고도 동일한 걸 느꼈다. 몇 단어로 표현할 수도 있을 텐데, 이를테면, 죽음, 문학, 환상, 섹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어리숙하고 어설픈 남자 주인공 등이다. 언뜻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키워드들은 하루키의 사상 혹은 철학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관념과 통속의 조화를 도스토옙스키 덕분에 진하게 맛보았던 나는 하루키 역시 그만의 독특한 방식과 고유한 문체로 소설을 쓰는, 현대문학의 거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도스토옙스키와 비교하면 깊이랄까, 통찰이랄까 하는 측면에서 내게 하루키는 가볍게 느껴지..

지경을 넓히는 작품을 만나다최진영 저, ‘구의 증명’을 읽고기발한 발상, 기구한 사건, 독특한 전개. 고전문학과 구별된 현대문학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얼마간의 진실이 담겨 있다고 믿는 나는 개인적으로 진부하리만큼 뻔하디 뻔한 이야기 속에서 빛바랜 진리에 다른 빛을 비춰 재발굴해 내는 고전문학을 선호한다. 그런 이유로 한국 현대문학은 즐겨 읽지 않는 편이다. 상상력을 키우고 참신하고 기발한 착상을 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구도 혹은 설정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 내지는 서론만 거창하다가 본론은 흐지부지해지는 상황을 자주 유도해서 소탐대실을 초래하는 걸 자주 봐왔고, 또 그런 작품들에 대한 실망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작가 최..
나답다는 것‘나다운 삶’을 살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나다운 나는 과연 어떤 나인가?’하는 것이다. 주로 내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나, 내가 다다르고 싶은 모습의 나,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의 나, 등등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한 번도 되어본 적 없는 나’일 가능성이 높다. 웃기지 않은가. 나였던 적이 없는 나를 나답다고 한다는 것이.반대의 의미로 나다운 삶을 살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 소수에 해당되는 이들은 나의 부족한 모습 혹은 못난 모습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보여도 괜찮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 나다운 나는 결핍을 머금도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나이고 싶지 않은, 나인 것이다. 전자나 후자나 하나를 택하는 것은..
복잡하게 좋은 나?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132페이지)-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133페이지)비수가 되어 깊숙한 곳을 찌르는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듯이 나는 저 문장을 읽은 뒤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산소가 희박한 것도 아닌데 숨이 찼다. 문장을 만나고 이제야 현실을 자각한 사람처럼, 나는 또다시 나를 잃고 살고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미련함이 또 한 번 드러난 순간이었다. 타자에게 무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타자를 쉽게 생각한다는 것..
지혜한계를 명확히 인지하는 것은 포기나 체념이 아닌 지혜다. 회피가 아닌 도전이다. 뒤로 물러섬이 아닌 앞으로 나아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언젠가부터 불확실성이라는 단어가 좋아졌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 단어가 주는 불안이 두려웠다. 내 삶에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를 포함시키고 싶지도 허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내 삶을 내어준다는 건 비겁하고 무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무의식 중에 불확실성으로부터 내 삶을 사수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이 잘 사는 삶, 성공하는 삶의 모습 같았다. 인생의 전반전을 이루던 나의 은밀한 가치관이었다.막연하고 유치하고 진부한 바람일 뿐이었다. 인생의 후반전을 막 시작할 무렵, 고통이라 할 수 있을 경험을 하고 난 이후 나는 인생은..

정갈함과 고요함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고독과 외로움한정원 저,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을 읽고두 번째로 만나는 한정원의 에세이다. 정갈한 문장들이 다시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긴다. 시끄러웠던 내 마음도 마침내 고요다. 몸도 마음도 분주한 일정이었다. 부산을 오가는 열차 안에서 가쁜 숨을 돌리기 위해, 벌써 반년간 가방 속에 잠자고 있던 이 책을 꺼내 들었다. 8월 1일을 여는 첫 에세이부터 할 말을 잃었다. 시인의 낯선 문장들은 그림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고, 그 그림에선 오래 묵은 향이 났다. 몸은 낯설지만 마음은 익숙하고 편안한, 오래된 숲의 향이었다. 나는 시인과 함께 숲 속에서 죽비 소리와 시시오도시 소리를 들었다. 사찰에서는 종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소리들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던,..

정착과 떠남의 경계헤르만 헤세 저, '크눌프'를 다시 읽고7년 전 크눌프는 산소, 천사, 혹은 닮고 싶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달랐다. 내가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회한 크눌프는 한없이 애처로워 보였다. '자유'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난 그의 삶보다, 드러나지 않은, 혹은 드러낼 수 없었던 그의 삶의 여집합이, 그 여백이 훨씬 크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가 애써 채워 온 삶이 아닌 그가 끝내 채우지 못했던 삶에서 나는 깊고 깊은 외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크눌프에게 동경이 아닌 강한 연민을 느꼈다. 인간은 정착과 떠남의 무한반복을 살아간다. 정착은 안정을 선사하지만 그 안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올무로 바뀌곤 한다. 떠남은 불안을 야기하지만 그 불안은 종종 삶을 ..
무례하지 않기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정작 소소한 것들에 기뻐하고 슬퍼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거리를 두고 싶어 진다. 어른스러움을 바라지만 아이 같은 순수함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자라지 못한 어른을 원하는 건 아니다.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줄 아는 어른이 나는 좋다. 많은 것을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두루뭉술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점점 더 까탈스러워지는 부분도 있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할 줄도 알지만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를 고를 줄도 알아야 한다. 그 보이지 않는 선은 조금씩 변화를 거친다. 잡음이 나지 않을 수 없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여 후회 없도록, 조금은 털털하게 또 조금은 이기적으로 그 선을..
가치천 페이지 안팎의 장편소설을 진득하게 읽어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쾌감은 중독성이 강해 반복을 유도한다. 물리적인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그 부름에 응하기 어려울 뿐 나는 항상, 특히 곤고한 날에, 그것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벽돌 깨기는 독서의 맛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벽돌을 깨기 위해서는 수십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한 시간에 50-100페이지 정도 읽어나간다고 가정할 때, 1,000페이지 분량의 벽돌이라면 집중해서 책을 읽는 시간만 따져도 적어도 10-20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적어도'이다. 직장을 가진 사람이 일상에서 그 정도의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만 해도 평일엔 기껏해야 1-2시간 독서에 할애할 수 있다..

카라마조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다시 읽고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대작을 다시 읽게 되어 영광이라는 말을 꼭 남기고 싶다. 읽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결코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거니와 물리적인 시간이 허락된다고 해서 읽어낼 수 있는 작품도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읽고 나누는 독서모임 가족들이 없었다면 삼독은 불가능했으리라.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 한동안 가만히 눈을 감고 고요 속에서 내게 홍수처럼 밀려든 감동과 긴 여운이 내 안에 가능한 오래 머물기를 나는 기도했다. 고전문학 중에서도 천 페이지를 육박하거나 가뿐히 넘기는 작품들을 읽어낼 때마다 느끼게 되는 공통된 정서는, 놀랍게도, 경건함이다. 이는 내가 현대문학보다 고전문학을 더 사랑..

찰나의 아름다움때아닌 눈이 내린 아침, 차 위에 수북이 덮인 눈을 치우다가 아파트 뒷산에 눈이 갔다. 아름다웠다. 불평이 사라졌다. 무거웠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움츠렸던 몸을 펴고 차가운 대기 속에서 큰 숨을 들이쉬었다. 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자유와 해방을 느낀 순간이었다. 아름다움은 불만은 상쇄시킨다. 내 안에 고여있던 어두움을 따스한 미풍으로 말려버린다. 인간이라서 의지와 상관없이 불만에 가득해지고, 인간이라서 의지와 상관없이 구원을 경험한다. 점점 인간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계속 몰랐으면 싶다. 모르니까 맛보는 기쁨의 순간들을 잃고 싶지 않다.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 하지만 그 무슨 수를 써도 보장받지 못하고, 미래를 알고 싶어 하지만 어떤 방..

자연의 힘헤르만 헤세 저, '페터 카멘친트'를 다시 읽고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땐 주인공 페터 카멘친트의 성장에 눈이 갔다. 깊은 산골에서 천연의 자연과 동화되어 투박하나 순수하게 자란 한 청년의 내면에 시가 깃들고, 그 시가 사람과 사랑, 삶과 죽음을 경험하며 조금씩 성숙해져 가는 과정에 주목했었다. 특히 글 쓰는 사람, 즉 작가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여서 그랬는지 나는 페터로부터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나의 외부세계는 물론 내부세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글쓰기모임과 함께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자연의 힘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반면, 페터의 성장 이야기는 예전보다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나 역시 성장하고 성숙했다고 여겼건만, 실은 그저 허무..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작년 상반기에 브릭에서 연재했던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을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총 101군데 출판사에 투고를 했습니다. 두 군데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고, 그 중 한 군데로부터 오늘 아침 출간 계약을 진행하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올해 하반기에 출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기쁩니다. 지금까지 책을 네 권 쓰고 한 권 번역했지만 모두 요청받은 글로 이뤄졌습니다. 제가 직접 출판사에 투고해서 출간 계약을 얻어낸 건 처음인 거죠. 출판계가 그 어느 때보다 불황인 이 시기에 저에게 이런 복이 떨어져서 저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입니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요.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은 저의 대학, 대학원 시절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허구를 가미하여 쓴 팩션입니다. 저는 일인칭 ..

기억기억이란 신비한 녀석이다. 과거에 스쳐 들었던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느닷없이 찾아와 선명한 사진처럼 눈앞에 펼쳐지고 떠나간 그 사람까지 소환한다. 정작 중요하게 여겼던 말들은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렸는데 유독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이 얼룩진 커피 자국처럼 남아 오래도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 현상, 신비가 아니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오늘도 길을 걷다가 버스가 지나가고 신호등이 바뀌었는데 누군가가 건너지도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아니 어쩌면 미래를 봤던 건지도 모를 그 장면은 내게 어떤 상념을 불러일으켜 한동안 넋을 놓고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 기시감이었을지도 모르는 순간들은 현재라는 시간의 흐름 가운데 드문드문 박혀 있는 웜홀일지도 모른다. 과..
음악의 힘같은 풍경도 음악을 입는 순간 다르게 보인다. 볼품없이 황량한 들판도, 아무렇게나 방치된 시골의 모습도 음악은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순식간에 시간을 달리고 공간을 뛰어넘어 다른 세상을 여행한다. 공감각적인 체험은 초월의 힘이 있다. 높디높은 빌딩 위에 서서 저 아래를 내려다볼 때처럼 나의 아등바등 대던 삶도 관조하게 된다. 자연스레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얻는 깨달음. 나는 또 나를 돌아보지 않고 나를 잃어버린 채 삶을 허투루 소비하고 있었구나...음악의 힘을 체험한다. 몽상일지도 모르지만 내게 덥석 주어진 이 여유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처럼 LP가 주는 투박한 선율 앞에서 그저 멍을 때리고 있다. 한동안은 이렇게 그냥 나를 내버려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하루하루는 저항하되, 노화의 전체 여정은 받아들이기’2025년 현재의 과학 지식과 기술로는 인간의 노화를 멈출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최근 들어 노화가 질병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참고로 내 책에 추천사를 써 주신 이정모 선생님도 노화는 질병이라는 입장이시다. 사실 추천사에서 노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시면서 또 질병이라고 정의하시고, 그러면서도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고 하시는데, 나로선 모순을 느꼈다). 나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물론 그런 주장에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객관적으로 신뢰할 만한 증거를 기반으로 이뤄진 주장이라기보다는 노화를 극복해 내고 영생을 원하는 인간의 소망이 듬뿍 담긴 주장이지 않을까 싶다. 생물학 박사인 나는 아직까..
자유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삶의 모토다. 이 문장의 매력은 ’되는 대로‘에 있다. 일견 함부로 살라는 주문처럼 읽힐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표현을 인생에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 즉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자세로 읽었다. 흔히 생각하는 운명론자의 독법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니체의 ‘아모르 파티’와 같은 맥락으로 읽어야 하지 않나 싶다. 주어진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체념 섞인 허무주의적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필연적인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말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성공도 실패도, 또는 행복도 불행도, 나아가 죽음까지도 삶의 필연성을 긍정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자세가 바로 ‘되는 대로’의 바른 독법이 아닐까 싶다. 사실..
답답한 하루이성으로 어떤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어떤 초월을 경험하고 직관적인 통찰을 얻는다고 해서 인격이 나아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깊은 골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부단히 읽고 쓰며 관찰, 성찰, 통찰의 삶을 살아도 그 깊은 골을 넘어서지 못하면 끝내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이성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지만, 대개 인간의 이성은 언제나 감정적이라 할 수 있는 어떤 본능적인 행동보다 한 발 늦게 작동하곤 한다. 사건 수습용이라고나 할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른 직후, 혹은 해야만 하는 일을 못했을 때 이성은 가장 빠른 속도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 이성적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상..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또 다른 출판사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이 왔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먼저 재미있는 원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편집부 직원들과 함께 원고를 검토 중인데요, 다들 매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기존에 내곤 했던 과학이론을 다루는 책과는 다르게 과학도의 삶을 담고 있어서인지, 더구나 실존하는 인물들이 캐릭터로 등장해서인지 더 생동감이 넘치고 흥미롭습니다. 어떤 직원은 장면장면이 드라마처럼 떠오른다는 감상을 주었습니다 ㅎㅎ다만 아직 충분한 검토와 회의를 거치진 못해서, 출간 여부에 대한 답변을 바로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저희가 조금 더 회의를 거친 후 3월 초에 다시 연락을 드려도 괜찮을까요?”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지만 두 군데에서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서 기분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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