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천 페이지 안팎의 장편소설을 진득하게 읽어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쾌감은 중독성이 강해 반복을 유도한다. 물리적인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그 부름에 응하기 어려울 뿐 나는 항상, 특히 곤고한 날에, 그것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벽돌 깨기는 독서의 맛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벽돌을 깨기 위해서는 수십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한 시간에 50-100페이지 정도 읽어나간다고 가정할 때, 1,000페이지 분량의 벽돌이라면 집중해서 책을 읽는 시간만 따져도 적어도 10-20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적어도'이다. 직장을 가진 사람이 일상에서 그 정도의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만 해도 평일엔 기껏해야 1-2시간 독서에 할애할 수 있다..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작년 상반기에 브릭에서 연재했던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을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총 101군데 출판사에 투고를 했습니다. 두 군데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고, 그 중 한 군데로부터 오늘 아침 출간 계약을 진행하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올해 하반기에 출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기쁩니다. 지금까지 책을 네 권 쓰고 한 권 번역했지만 모두 요청받은 글로 이뤄졌습니다. 제가 직접 출판사에 투고해서 출간 계약을 얻어낸 건 처음인 거죠. 출판계가 그 어느 때보다 불황인 이 시기에 저에게 이런 복이 떨어져서 저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입니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요.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은 저의 대학, 대학원 시절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허구를 가미하여 쓴 팩션입니다. 저는 일인칭 ..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또 다른 출판사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이 왔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먼저 재미있는 원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편집부 직원들과 함께 원고를 검토 중인데요, 다들 매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기존에 내곤 했던 과학이론을 다루는 책과는 다르게 과학도의 삶을 담고 있어서인지, 더구나 실존하는 인물들이 캐릭터로 등장해서인지 더 생동감이 넘치고 흥미롭습니다. 어떤 직원은 장면장면이 드라마처럼 떠오른다는 감상을 주었습니다 ㅎㅎ다만 아직 충분한 검토와 회의를 거치진 못해서, 출간 여부에 대한 답변을 바로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저희가 조금 더 회의를 거친 후 3월 초에 다시 연락을 드려도 괜찮을까요?”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지만 두 군데에서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서 기분이 좋..
삼찰: 받은 것을 돌려주는 글매일 가던 길을 가면 보이지 않는다. 내적이든 외적이든 어떤 변화가 주어지면 그제야 그 차이를 기점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누군가에겐 그 차이만 보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그것조차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 익숙한 것들은 가려지는 법이다. 낯섦이 눈을 연다.성찰의 글은 보고서나 논문 같은 실용적인 글쓰기를 제외한 모든 글쓰기의 기본에 해당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성찰이 글쓰기의 시작은 아니다. 성찰은 뇌에서 일어나는 프로세싱에 해당될 뿐 입력 행위는 관찰이기 때문이다. 모든 성찰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관찰은 성찰에 우선한다. 나는 글쓰기의 좋은 시작은 관찰이라고 믿는다. 또한 나는 좋은 관찰은 좋은 성찰로 이어지기 쉬우며 좋은 글로 연결될 확률도 높..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가제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은 팩션입니다. 원고는 A4지 80매 분량이며, 팩트 40 + 픽션 60 정도로 저의 대학/대학원 시절의 경험담과 허구적인 상상력을 잘 버무려 쓴 글입니다. 작년에 BRIC ( https://www.ibric.org/bric/trend/bio-series.do?mode=series_list&articleNo=9887945 )에서 21주 동안 성황리에 연재했던 글이기도 합니다. 프롤로그에서 밝히듯 이공계 기피 현상이 기정 사실이 되고 우수 인재들이 해외로 다 빠져나가고 있으며 나라에선 기초과학에 대한 예산 마저 축소시키는 이 판국에 순수한 이공계 대학/대학원생의 일상을 소개하는 일은 의미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기초과학에 대한 국가적 관심만이 아니라 국..

Thanks, God!이게 무슨 일인가요? 작년에 출간한 저의 세 번째 저서 '생물학자의 신앙고백'이 세종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네 번째 저서가 출간되자마자 이런 경사가 겹치네요. 탄핵선물로 적격인 것 같습니다. 예기치 못한 기쁨이네요. 첫 번째 저서인 '과학자의 신앙공부'에 이어 벌써 두 번째로 세종도서 리스트에 들었습니다. 목회자 혹은 신학자가 아닌 전문직을 가진 일반 성도가 쓴 신앙서적이라는 점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아직 안 읽으신 분은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종교부문 총평에서 제 책에 대해 직접 언급한 부분이 있어 캡처했습니다. 두 번째 사진입니다. 정말 책 잘 썼다는 생각입니다. 기쁘네요.

출판사 서평: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이정모(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찬란한 멸종》 저자) 강력 추천★“세포에게 노년은 가장 성숙한 시기입니다”저속 노화 시대, 나이 듦을 예찬하는 특별한 안목내 몸이 선생님이 되는 새로운 과학 수업이 시작된다자신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조혈모세포,손가락을 꽃 피우기 위해 희생하는 피부 조직,정상 발달을 위해 스스로 죽는 세포자멸사,인간과 달리 차별도, 혐오도 하지 않는 염색체,저속 노화 시대에 울리는 경고, 단백질 돌연변이,철학하는 생물학자가 현미경 속에서 발견한 인생의 지혜들“조혈모세포는 자신의 때를 기다릴 줄 압니다”사람처럼 치열하지만 사람보다 현명한 세포의 세계희생하고 인내하는 세포들에서 발견한 나이 듦의 미덕김영웅 박사는 세포가 인생과 절묘하게 닮았다고 말..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이 출간되었습니다. ‘탄생, 노화, 다양성을 이해하는 발생생물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과학대중서입니다. 교양 수준의 과학 지식이 담겨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썼습니다. 특히 역노화, 안티에이징, 저속노화가 유행인 시대에, 안 늙으려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니라 잘 나이 드는 법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알아보고 철학적으로 사유해 보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또한 여러 선천성 기형을 가지고 계신 우리의 이웃들을 발생생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덕분에 비로소 다양성이라는 아름다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인식론적 개혁이 일어나게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 가능합니다.알라딘: https:..

과학대중서: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시기가 흉흉하나 일상의 시계는 오늘도 돌아갑니다. 생각의힘 출판사에서 또 하나의 과학대중서가 곧 출간됩니다. 탄생, 노화, 다양성을 이해하는 발생생물학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입니다. 저의 네 번째 저서이기도 합니다. 인쇄와 제본을 모두 마치고 다음주 중에 서점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제안에 따른 띠지에 들어간 사진이나 철학하는 과학자라는 표현이 아직 저에겐 부끄럽게 느껴지지만, 책은 신뢰성과 상품성이 중요하다는 말에 출판사의 제안을 따랐습니다. 잘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 구매 가능하게 되면 조금 더 상세한 정보와 함께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스토옙스키와 헤세마흔이 다 되어 갈 무렵 다시 시작된 나의 독서 여정의 출발점은 헤세였다. 유리알 유희를 마지막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한 헤세 선집을 모두 읽었을 때 느꼈던 감격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이후 나는 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어 내려가는 방식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이 되었고, 헤세 다음으로 읽을 작가를 선별했었다. 그러다가 걸린 작가가 도스토옙스키였다. 나는 그 당시 도스토옙스키가 헤세보다 더 어렵고 두꺼운 작품들을 많이 썼다는 사실을 대충 들어 알고 있었는데 바로 그 점이 어떤 도전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대표작이라 부르는 5대 장편만이라도 먼저 읽어 보자고 다짐했었다. '죄와 벌'로 시작해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로 5대 장편을 마쳤을 때 느꼈던 감격 또한 지금도 생생하다. 나..
읽기와 쓰기 업데이트1.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 - 발생과 노화, 다양성을 이해하는 발생생물학 수업‘이라는 과학대중서가 생각의힘 출판사에서 12월 10일 즈음 출간될 예정이다. 네 번째 저서다. 요즘 핫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셀러, ‘찬란한 멸종’의 저자 이정모 관장님이 추천사를 써주신다고 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정말 영광이다. 어제 표지 시안을 받았다. 맘에 들었다. 내 사진이 띠지에 조그맣게 들어간다는 점만 빼면. 그러나 책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다고 해서 사진을 싣자는 편집자의 제안에 동의하고 말았다. 책은 상품의 정체성도 분명히 띠기 때문이다. 부디 많이 읽히고 많이 팔리면 좋겠다. 2. 나의 대학/대학원생 시절의 이야기에 허구를 넣어 각색한 팩션, 기초과학자가 어떻게 길러지는지 대한..

다시 헤세: 헤세 다시 읽기마흔 무렵 재개된 나의 문학 읽기의 출발은 헤세였다. 중학생 시절에도 그랬다. 추리소설만 탐닉하다가 순수문학으로 전향한 출발점이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같은 작품을 시기를 달리 하여 읽는 맛은 오직 경험한 자만이 아는 은밀한 유희다.작년 9월부터 쉬지 않고 매달 모이고 있는 독서모임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덕분에 미국에서 혼자 끙끙대며 읽었던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을 재독 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한 번 읽기도 쉽지 않은 도스토옙스키라는 거대한 산을 두 번이나 넘는 이 과업은 정말 인생에서 길이 남을 멋진 추억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이 독서모임은 나 혼자선 감히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김관장님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연으로 찾아왔..
병렬독서 vs. 한권독서나는 '한 우물 파기'의 신화를 믿지 않는다. 만약 그 말이 다양성을 배제하는 뜻으로 쓰인다면 말이다. 오히려 나는 한 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여러 우물을 파는 시도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들보다 높고 빠른 삶이 아닌 풍성한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다.나는 '한 우물 파기'를 이렇게 받아들인다. 자신이 선택한 한 우물을 팔 땐 선택하지 않은 다른 우물을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고 집중해서 그 우물을 파야 한다고. 전체가 아닌 부분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건 우리가 유한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어차피 몸이 하나이자 손이 두 개인 우리는 여러 우물을 동시에 팔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내게 '한 우물 파기'는 여러 우물을 파는 시도를 하면서 그중 어느 한..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으로 인해 여전히 가슴이 뜁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소설가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예전에 썼던 한강 작가와 정유정 작가를 비교대조한 글을 소환합니다. 묘사와 서사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글입니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분들이 읽으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정유정과 한강: 서사와 묘사 서사가 강한 소설이 있는가 하면, 묘사가 강한 소설이 있다. 한국 현대 작가 중엔 정유정이 전자에 해당하고, 한강이 후자에 해당한다. 두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는 건 흥미롭다. 개인의 취향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후자의 작품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묘사의 미학은 어떤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꼭 필요한 속성이라는 생각도 한다. 정유정 작가의 작품은 ‘진이, 지니’를 빼고는 ..
창조의 시작, Something: 작가 노트글쓰기는 창조 활동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는 아니다. 글쓰기의 시작은 일반적으로 무가 아닌 유다. Nothing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something에서 시작한다는 말이다. 어떤 단어나 문장, 혹은 어떤 그림이나 자연 풍경 등이 발단이 되어 연쇄적인 텍스트들이 작가 내면에서 쏟아져 나올 때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위해서는, 혹은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깊고 풍성한, 그리고 지속적인 읽기가 수반되어야 한다.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처럼, 단조로운 읽기는 단조로운 쓰기를, 얕은 읽기는 얕은 쓰기를 제조해 낸다. 단조롭고 얕은 글쓰기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본인이 쓴 문장을 어떻게든 아름답게..
작가: 읽고 쓰는 삶을 사는 자편집자로부터 어제 바로 피드백을 받았다. 낯선 시선은 언제나 내가 쓴 글에 잠겨 무감각해졌던 나를 깨워 일으키고 객관적인 눈을 회복시킨다. 애정을 가진 첫 독자의 입김은 저자가 가장 귀 기울여야 하는 소리다. 편집자의 제안을 경청하니 나만의 텍스트로 엉성하게 구축되었던 숲의 윤곽이 비로소 체계적으로 보였다. 저자는 프로토타입의 몸을 창조해 내고 편집자는 그것을 개량해서 옷을 입힌다. 그렇게 글은 책이 된다.요청받은 글, 마감이 정해진 글을 학창 시절 숙제처럼 여겼던 나는 과거의 나다. 한때 부담으로 여기던 글쓰기 숙제가 이젠 기다려지고 즐기게 된다. 노예라고 불려도 상관없다. 충실한 노예, 즐기는 노예가 되리라. 읽고 쓰는 삶이 일상 깊숙한 곳으로 자리 잡아 그것을 하지 않..
글쓰기에서 '무거운 것'글쓰기에 남다른 뜻이 있어 글쓰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이들 중 다음과 같이 막연한 믿음을 갖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을 때 쓰면서 쓰는 만큼 필력도 빠른 속도로 향상될 거라 믿는 믿음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만, 당신이 타고난 글쟁이가 아닌 한 그 나이브한 믿음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물론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한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총알이 다 떨어진 총을 들고 제자리에 서 있는 사람처럼 허탈함으로 가득 찬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해 보지도 않고 글쓰기는 어렵다는 둥, 내가 뭐라고 글쓰기에 도전했냐는 둥,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며 글쓰기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을 것이다. 글쓰기 ..
**그동안 제가 쓴 감상문으로 단 한 번이라도 도움을 받으셨던 분들은 기념으로 댓글 하나 남겨주세요~** 365: #김영웅의책과일상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좋아한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이것 저것 따지는 것보다 현장에 나가 직접 발로 뛰는 걸 좋아한다. 그래야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언젠가부터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읽고 쓰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나타날 정도의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티 안 내고 가만히 읽고 가만히 쓸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읽은 것을 글로 써 내는 것이었다. 독후감상문을 지속해서 썼고, 페북과 브런치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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